'진보가 가짜뉴스 취약하다'는 보도, 오히려 확증편향 조장?
중앙일보 "유튜브 보는 5060 진보, 보수보다 가짜뉴스 쉽게 낚였다" 지적
"조사의 신뢰도 문제도 있지만 그것을 선별하지 않고 보도한 언론사도 문제"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인 사람이 이른바 '가짜뉴스'에 취약하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해당 보도가 오히려 확증편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앙일보는 지난 18일 신문 1면 <진보층이 보수보다 가짜뉴스 잘 믿는다>, 6면 <정보 취득 유튜브 의존도, 확증편향층 22% 비확증편향층 8%> 등 기사로 관련 보도를 했다. 온라인 기사는 <<a href="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3333#home">[단독] 유튜브 보는 5060 진보, 보수보다 가짜뉴스 쉽게 낚였다>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해당 보도는 여론조사 전문업체 에스티아이가 지난 3월 10일~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69세 이하 남녀 1056명 대상 스마트폰 앱조사로 진행한 '미디어를 통한 정보습득 및 의식형성 관련 인식조사'에 기반했다. 응답자의 지지 정당별로 진보성향, 보수성향별 사실·틀린 정보에 대해 참·거짓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조사한 내용이다. 응답률은 10.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0%p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들은 정치성향별 진짜, 가짜 정보에 대해 각각 1점 '완전히 거짓'에서 5점 '완전히 사실'까지 5점 척도로 참·거짓을 평가했다. 5점에 가까울수록 사실로 믿는다는 의미다. 제시된 문항은 아래와 같다.
진보성향 진짜뉴스 “2022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수가 작년에 비해 여덟 단계 하락했다”
진보성향 가짜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
보수성향 진짜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추천에 응하고 있지 않아, 북한 인권재단은 7년째 출범을 못하고 있다”
보수성향 가짜뉴스 “문재인 정부는 비밀리에 6억 달러 규모의 대북 송금을 했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진보성향 문항 중 진짜(3.74)에 비해 가짜(3.75) 정보 신뢰도가 0.01점 높았다. 보수성향 문항은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낮은 2점대로 나타난 가운데 진짜(2.39)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가짜(2.08) 정보에 비해 0.31점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경우 진보성향 진짜(3.08) 정보 신뢰도가 가짜(2.80)보다 0.28점 높았다. 보수성향에 대해선 진짜 정보(3.18)에 비해 가짜 정보(3.65) 신뢰도가 0.47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중앙일보는 “(민주당 지지층은) 진짜뉴스·가짜뉴스 구별 없이 무조건적인 신뢰도”를 보였고, “(국민의힘 지지층은) 민주당 지지층보다 무조건적인 진영 지지성향은 다소 낮았지만, 상대적으로 진짜뉴스보다 가짜뉴스에 대한 믿음이 높았다”고 했다.
특히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 수용하는 '확증편향층'은 민주당 지지층의 36.5%, 국민의힘 지지층의 18%로 나타났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의 확증편향 비중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보다 두 배가량 크다는 의미”라는 해석이었다.
이 보도가 나온 뒤 조사의 방법론 면에서 여러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먼저 정치성향별로 제시된 '진짜' 혹은 '가짜' 항목이 비슷한 수준의 신뢰성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목이다. 예컨대 진보성향 가짜뉴스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비판 받고 있는 대언론 소통문제와 관련한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다”라는 문항이 제시되고, '보수성향 가짜뉴스'로 “문재인 정부는 비밀리에 6억 달러 규모의 대북 송금을 했다”는 문항이 제시된 것을 두고 보수성향 가짜뉴스가 상대적으로 쉽게 거짓으로 판단하기 쉬운 명제라는 것.

응답자의 정치적 성향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로 구분되고, 정치성향별 진짜·가짜뉴스 판단이 별도의 검증 절차 없이 이뤄졌다는 점도 이번 조사의 한계로 거론된다. 정치 성향별 정보 신뢰도를 다룬 국내외 선행 연구들은 '진짜뉴스' '가짜뉴스'를 선정하는 데 활용한 방법과 범위를 밝히고 있다. 일례로 통일연구원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KINU 통일의식조사 2022'는 '북한 관련 가짜뉴스' 식별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문항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와 오픈 플랫폼 팩트체크넷 정보 기반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가짜뉴스' 판단에 영향을 미칠 정치심리 요인에 대해선 응답자가 '진보' 0점에서 '매우 보수' 10점까지 11점 척도로 자신의 이념 성향을 측정하도록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페이크 뉴스'(fake news)를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이후 미국에서도 정치 성향별 '가짜뉴스' 식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켈리 개릿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이 진행, 2021년 6월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된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조사 대상자(미국인 성인 1204명)에게 2019년 1월~6월 2주마다 가장 인기 있는 정치 뉴스 기사 20개(진짜 10개, 거짓 10개)를 제시해 식별하도록 했다. 제시된 문항에 대한 정치적 성향은 45명의 담당자가 각각 5명의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을 배정 받아 평가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에스티아이 조사 및 중앙일보 보도를 두고 “일종의 온라인 실험을 한 셈이다. 실험에는 실험자극(여기서는 가짜뉴스와 진짜뉴스)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 경우 가짜뉴스는 실제로 가짜이며 많은 사람이 그렇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뉴스는 그 반대. 아울러 진보 또는 보수가 좋아할만한 가짜 또는 진짜뉴스가 각각 동일한 신뢰성 점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이번 연구는 이런 사전 검증 없이 자의적으로 실험처치물을 만들어 적용했다. 다른 연구가 그런 식으로 한다면 반대의 결과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조사의 신뢰도 문제도 있지만 그것을 선별하지 않고 보도한 언론사도 문제”라며 “특히 이런 보도가 가뜩이나 절실한 사회통합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예전에 모 방송뉴스에서 '알통 있으면 보수'라고 보도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8일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해당 조사의 가장 큰 문제는 진보와 보수 성향 응답자에게 각기 다른 가짜뉴스를 제시했다는 것”이라며 “진보와 보수 성향 응답자에게 똑같은 가짜뉴스를 제시한 뒤 각각의 신뢰도를 비교 평가한 것이 아니기에 객관성은 떨어지고 결과를 신뢰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가 확증편향과 가짜뉴스를 '가짜뉴스와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면, 객관성이 결여된 여론조사를 신뢰할 만한 여론조사라고 소개하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또한 그런 조사를 근거로 '진보층이 보수보다 가짜뉴스(를) 잘 믿는다'는 무리한 주장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조사를 진행한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는 “조사에 사용된 가짜뉴스는 팩트체크 사이트를 비롯하여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선정했다”며 “뉴스별 신뢰도 편차를 최대한 줄이는 문제는 설계상 어려운 대목의 하나였다. 선행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최신의 주제인 탓이다. 이번 조사의 한계점이면서 향후 방법론적 과제를 던져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뉴스 선정의 문제는 앞으로 더 정교화 시켜가야 할 과제”라고 했다.
세부 조사 결과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아 오해를 불렀다는 입장도 전했다. '진보성향 가짜뉴스'가 '보수성향 가짜뉴스'보다 더 속기 쉬운 명제이므로 '민주당 확증편향층'이 많게 나오도록 설계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신년기자회견 뉴스에 민주당 지지층이 '사실'이라고 한 응답 비율(65.6%)이나 대북송금 뉴스에 국민의힘 지지층이 '사실'이라고 응답한 비율(63.1%)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자신의 지지정당에 유리한 가짜뉴스에 '사실'이라고 응답하는 비율은 양당지지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오히려 자신의 정당에 불리한 진짜 뉴스에 '거짓'이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고 했다.
이준호 대표는 “이번 조사는 이념, 당파성, 주활용 미디어 등이 확증편향에 미치는 영향력을 발견하는데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졌다. 기존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실제 현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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