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MB맨..'일제고사·자사고 설계자' 이주호 교육장관 재활용
전교조 "줄세우기 교육 장본인"..뉴라이트 역사관도 논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가 내정됐다. 이 교수는 이명박(MB)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장차관을 지내며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설계·추진한 인물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주 안에 후보자 지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는 ‘고교 서열화, 일반고 황폐화’ 문제를 야기한 장본인을 다시 교육 수장에 앉히는 것은 대한민국 교육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28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주호 전 장관을 포함해 복수로 인사를 검증하다 경험 등을 고려해 이 전 장관이 최종 후보로 낙점됐다. 국정감사 기간 교육부 조직의 안정을 위해 이번 주 중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장관 자리는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학제 개편 논란으로 취임 34일만에 물러난 뒤 50여 일째 공석인 상태다.
이 교수는 MB정부에서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비서관, 교과부 차관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교과부 장관을 역임했다. 자사고 설립을 뼈대로 하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학업성취도평가 전수실시(일제고사) 및 평가결과 공개 등 이명박 정부의 굵직한 교육정책을 주도해 ‘MB표 교육정책 설계자’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교육계에서는 이 교수의 귀환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엠비(MB) 교육의 부활’로 보고 있다. 정소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자사고는 물론 일제고사를 도입해 학생들을 줄 세우고 경쟁교육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라며 “무한경쟁과 교육 양극화를 부추긴 당시 교육정책의 폐해가 아직도 교육 현장에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계에서는 자사고 도입으로 일반고 교실이 붕괴됐다고 평가한다. 이 교수는 사교육 흡수를 이유로 자사고를 만들었지만, 자사고 학생들의 사교육 비용이 일반고 학생들보다 더 많고, 자사고 입시 준비 탓에 선행학습 시점도 더욱 빨라졌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20년 고2 재학생 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월평균 100만원 이상의 고액 사교육비 지출 비율은 일반고는 13.3%인데 견줘 광역단위 자사고 43.9%, 전국단위 자사고 17.7%이었다. 특히 광역 자사고가 밀집된 서울에서는 자사고들이 성적 우수 학생들을 선발해 가면서, 일반고 학생들의 자신감 하락과 교실 붕괴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런데도 이 교수는 올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예비후보로 나섰을 당시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을 위해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학령인구 급감 시기에 우수 학생만 끌고 가겠다는 수월성 교육은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이 교수가 장관 임명 뒤 과거처럼 자사고 확대 등 수월성 교육을 강조한다면 학생 개개인 맞춤형 교육으로 변화할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수 진영이 ‘2022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을 두고 이념 공세를 퍼붓고 있는 가운데, 보수 편향 역사관을 가진 이 교수의 취임에 대한 우려도 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공개한 정책공약집을 보면 이 교수는 “상해 임시정부는 건국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국민의 대표성을 충족하지 않은 채 구성된 임시기구임을 분명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뉴라이트의 ‘1948년 건국론’ 주장과 빼닮았다.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이 교수는 이미 2011년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역사교육과정 각론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역사교육 퇴행을 가져왔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며 “박근혜 정부 ‘친일·독재 미화’ 역사 국정교과서 주역인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이 교수까지 장관에 오른다면 윤석열 정부가 역사 교육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는 의도를 명확히 하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 교수는 같은 정책공약집에서 ‘성평등’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 이유로 “성평등 사회가 되면 동성애도 자연스럽게 합법적인 개념이 되어버린다”며 성소수자를 불법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듯한 주장을 해 이 역시 논란을 비켜가기 어려워 보인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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