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에 황강이 있다. 합천 읍내를 가로지르는 강인데, 강을 따라가며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져 있다. 강바람을 맞으며 강가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살피며 걷다 보면 사는 것이 저 강처럼 다만 흘러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을 보고 있으면 좋다. 왜 좋은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좋다. 솜씨 좋은 투수가 던지는 낙차 큰 커브처럼 둥글고 부드럽게 휘어지는 강의 곡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희미해지면서 마침내 한 점으로 없어지는 강의 소실점을 응시하고 있으면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어떤 미련이나 후회 같은 감정이 스르륵 사라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유 없는 삶의 허망함이 느껴작약이 가득한 황강변지는 날이면 나는 강자락으로 달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황강가를 걷다
20대, 그러니까 맹렬하게 시를 쓰던 대학 시절, 나는 무던히도 강을 찾아다녔다. 살던 곳에서 가까운 낙동강 자락의 명지며, 삼랑진 부근의 밀양강, 하동과 구례 사이를 흐르던 섬진강, 합천 황강 등을 돌아다녔다. 강가에 텐트를 치고 알루미늄 코펠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밤에는 강물 소리가 텐트까지 밀려서는 잠결까지 귓전을 어지럽혔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참 신비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일인 것이다. 살다 보면 오직 아름답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쓸모가 있는 일들이 있다. 시며 음악, 노을, 파도 소리, 종소리 같은 것들이 그렇다.
삶의 터전을 파주로 옮긴 후 여행작가로 동가식서가숙하고 삶을 꾸려나가면서부터는 한강이며 임진강, 여강, 동강 등을 찾아다녔다. 코펠에 라면을 끓이던 시절의 치기 같은 건 진작에 사라졌지만, 그래도 어지럽고 막막한 심사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해서, 오후의 윤슬에 눈부셔하며 강자락을 따라 걷거나 물새가 날아간 자리의 물무늬를 바라보며 기우뚱한 자세로 망연히 서 있는 건 똑같았다. 모래톱을 따라가던 그 갈팡질팡의 발자국들이, 혹은 같은 자리를 맴돌던 망설임의 어지러운 흔적들이 어쩌면 내가 쓴 시며 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나는 강자락을 따라 삐뚤빼뚤 걸으며 무엇을 찾으려고 했을까. 새빨간 노을 속 산그림자를 거느리며 유연하게 내려오던 종소리, 커다랗게 퍼져나가던 종소리의 동심원 속에서 삶의 비애와 그것을 극복하는 시의 아름다운 유용성을 생각하던 그 시절에서 나는 참 멀리도 왔구나 싶다. 그리고 지금, 삶에서 이룩하고 싶은 것들의 대부분은 어쩌면 대부분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회의와 의심으로 가득한 중년이 된 어느 여름날, 나는 다시 황강으로 가고 있다. 마치 거기에 두고 온 뭔가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합천 황강’이라는 이름은 생소한 분들이 많으시리라. 내가 태어나고 생활하던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강이었지만, 이 강의 정체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박태일이라는 시인의 시를 읽고 나서부터다(그는 내 시의 스승이기도 하다). 합천에서 태어난 그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말이 간직한 특유의 소리와 리듬을 잘 살린 시를 썼다. 나는 그의 ‘황강’ 연작시를 읽으며 황강이라는 강의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됐고, 그가 직조한 때로는 맑고 때로는 영롱한 물소리 같은 시어들의 발성에 이끌려 황강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벌써 이십 년이 훨씬 지난 때의 일이다. 그리고 몇 달 전 황강으로 향했다. 고령을 지날 무렵,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그날따라 하늘은 스위치를 내린 듯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우당탕탕 굵은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자동차 천장에서는 북소리가 나는 듯했다. 이젠 소나기가 아니라 스콜이라 불러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구름은 물러가고 하늘이 열렸다. 구름 뒤에서 햇빛들이 기다렸다는 듯 찬란한 모습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햇빛을 받으며 합천에 들어섰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들판과 가로수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읍내를 지나 황강 가에 차를 세운 나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 속 깊이 맑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희미하게 오이 향이 나는 듯했다. 아마도 바람에 실려 오는 강의 흔적일 것이다.
걷기 좋은 황강마실길
황강은 합천 읍내를 가로지르는 강이다.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다. 약 111㎞ 정도다. 발원지는 경남 거창 삼봉산(1,254m)이다. 산자락과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황강은 합천 읍내를 지나 낙동강 본류에 합류한다. 합천 읍내에는 강이 지나는 구간을 따라 ‘황강마실길’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져 있다. 모두 4코스가 있다고 하는데, 가장 짧은 구간은 25분, 긴 구간도 1시간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1구간을 걷기로 했다. 합천문화예술회관에서 시작해 함벽루를 지나 공설운동장에서 끝난다. 총길이 2.78㎞. 산책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황강이 빚어내는 느긋하고 다정한 풍경을 옆에 두고 내내 걸을 수 있다. 길은 들판과 습지, 숲길, 꽃밭 등을 지나며 소박한 삶의 장면을 보여준다. 마실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듯, 길의 품새는 느긋하고 편안해서 운동화에 반바지 차림이면 충분하다.
주머니에 손수건이 있나 확인하고 손에는 500㎖짜리 생수 하나를 들었다.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한 셈이다. 길을 걷는다. 바람이 등을 지그시 밀어준다. 자전거를 타고 선글라스를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황강 마실길은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이십 년 전의 황강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때는 곳곳에 갈대밭이 있었고 새하얀 모래톱이 펼쳐져 있었다. 강물 속에 종아리를 담그고 천렵을 하던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걸으며 박태일 시인의 시 ‘황강’을 읽었다. 가끔 멈춰 서서 시와 강의 풍경을 대조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를 읽고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의 시에는 황강의 예전 풍경이 화석처럼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구불구불 흐르는 고운 모래밭, 그 모래밭에서 이모와 고모가 어울려 놀며 살며 늙어가는 풍경. 황강은 합천 사람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안고 오늘도 흐르고 있다. 실제로 황강을 따라가다 보면 합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황강변에는 황강레포츠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제는 캠핑장도 만들어져 있어 드넓게 펼쳐진 모래톱에는 텐트가 쳐져 있다. 아이들은 얕은 강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논다. 여름은 어른에게는 무덥고 지치는 계절이지만 아이에게는 신나는 물놀이의 계절일 뿐이다.
‘황강 물 굴불굴불 황강 옥이와 귀엣말 즐겁습니다 황강 모래 엄지 검지 발가락 새 물꽃 되어 흐르듯이 간지러운 옛말이 들리는 봄 재첩 볼우물이 고운 옥이 마을 이모와 고모가 한 동기를 이루며 늙어간 버들골로 물안개는 디딜 데 없이 아득하였습니다 호르르르 물잠자리 홀로 물수제비 띄우고…’ (‘황강9’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함벽루다. 합천 8경 중 하나다. 1321년 고려 충숙왕 8년에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 등 조선의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들의 글이 누각 현판에 걸려 있는데, 이것만 봐도 이곳에서 마주하는 황강의 풍경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누각에는 할머니 두 분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식 이야기며 시장 물가 이야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 등일 것이다. 젊은이는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지금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각 한 귀퉁이에 걸터앉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배경 삼아 생수를 마셨다. 강바람은 이런 이야기를 실어서 강에 떠내려 보낸다.
누각 뒤로는 연호사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해인사보다 무려 150년 앞서 창건된 고찰이다. 이곳에 서면 함벽루와 어우러진 황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아침 무렵 은은한 물안개가 필 때도 좋고 저물 무렵의 노을이 산그림자와 함께 슬금슬금 내려올 때도 그때만의 운치가 있다.
함벽루에 앉아서
중년의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곳은 합천영상테마파크다. 1920~80년대 서울 길거리를 충실히 재연한 오픈 세트장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평양 시가지 전투 장면을 촬영한 세트장이 인기를 끌자, 좀 더 다양한 세트를 만들어 테마파크로 조성했다. 세트장의 규모가 무려 8만 3,000㎡(약 2만 5,000평)에 달한다. 넓은 부지에 150여 채 건물과 거리가 조성되어 전체를 둘러보려면 족히 2~3시간이 걸린다.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평양도 재현해 놓았다. 2004년 개장한 이후 영화 ‘써니’, ‘암살’, ‘전우치’, ‘모던보이’, 드라마 ‘각시탈’, ‘에덴의 동쪽’ 등 50편이 넘는 영화와 80편 이상의 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전주한옥마을이나 서울의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게 유행인데, 이곳에선 교복과 교련복을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나 중년이 많다.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둘 이상 모이자 그곳이 곧 동네 사랑방이 된다.
여기는 다시 함벽루다. 할머니가 떠난 자리, 나는 누각 기둥에 등을 기대어 앉아 황강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 왜가리 한 마리가 서 있다. 왜가리를 보면 가끔 기다림의 자세만으로 삶이 이루어진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가리는 생을 무엇으로 채우려 저토록 고독한 자세로 용맹정진하는 것일까. 나도 저 왜가리의 포즈로 보낸 시절이 있었지, 먼 산 너머 뭉게구름이 어떤 부질없는 생각처럼, 헛된 추억처럼 피어 오르고 있다.
이렇게 정자에 등을 기대고 강바람이나 맞으며 앉아 있다 보면 사는 게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목표나 원대한 꿈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바람에 실어 보내면 그만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어쩌면 그게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합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충주를 지났을 무렵이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빼놓고 왔다는 생각이 들어 목덜미가 서늘했다. 옛날 같으면 차를 돌려 다시 돌아가 찾으려 했겠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는 작은 것에 연연하기엔 나이가 들었다. 가스레인지 밸브를 잠그고 나서는 꼭 소리 내 말한다. “가스레인지를 잠갔어.” 사랑도 이념도 중요하지만 가스 중간밸브를 잠그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 되어 버린 나이, 조금씩 포기해야 하는 것이 늘어나고, 그것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 굳이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동서울 톨게이트에 들어서자 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4시간 전에 보았던 황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며 클래식 FM을 틀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흘러나온다. 푸른하늘 아래 햇빛을 찬란하게 튕겨내며 천천히 흘러가던 어느 시절의 강이 떠오른다. 모래톱은 눈부시게 빛나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야 했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강, 그 강가에 내 맹렬한 한 시절이 있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 강가의 저녁까지 서서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많은 자락을 따라가며 수없는 저녁 속에 섰고, 어지러운 발걸음을 모래톱에 새기며 뭔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찾지는 못했다. 다만 많은 일들과 수없는 인연과 미련을 떠나 보냈을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어떤 노력과 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합천 여행 정보
가야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곳으로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로 손꼽힌다. 해인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으로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무려 16년에 걸쳐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제작했다. 장경각은 소금과 숯을 흙에 같이 버무려 바닥을 다져 무균 상태를 유지하고 숯으로 공기와 습도를 조절해 대장경을 보존한다. 장경각은 1995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고려대장경판은 해인사 다른 경판과 같이 2007년 6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대장경테마파크는 팔만대장경의 제작 동기와 과정, 보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쉽고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 도와준다.
+합천 맛집 정보
합천은 돼지국밥이 맛있다. 국물은 잡내가 전혀 없고, 고기는 쫄깃하고 부드럽다. 읍내 왕후시장 입구의 ‘중앙식육식장’은 합천군민이 즐겨 찾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