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보험사 '단기납 종신' 숫자게임...130% 안되고 110%는 된다?
지난달 단기납 종신보험 상품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생명보험사들은 7년납 상품의 경우 10년까지 거치 시 (해약)환급률이 130%를 넘어 135%까지 이르는 상품을 선보이며 지난해 8~9월 이후 다시 한 번 종신보험 판매의 활황기를 맞이했다. 가족 구성의 변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건강보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며 상대적으로 종신보험에 대한 니즈가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활황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이 주요 생보사에 현장 점검을 나선데 이어 단기납 종신보험 상품 설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판매 과열 현상을 억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하고자 생보사들은 선제적으로 장기유지보너스 등을 조정, 120%대의 환급률 상품을 시장에 출시하며 명맥을 이었다.
문제는 금감원이 이 환급률도 여전히 높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상품 환급률의 조정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올해 초 7년납 10년시점 환급률을 123.9%로 조정한 '더행복종신'을 내놓았으나 5일만에 판매를 중지, 조정 기간을 거쳐 지난 16일부터 재판매하기 시작했다. 교보생명은 3월부터 환급률을 110%대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감원의 모호한 지적으로 환급률의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환급률이 120% 미만인 KB라이프생명(116.9%)과 미래에셋생명(115.0%) 외에 단기납 종신보험을 취급하는 대부분의 생보사다.
이처럼 금감원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1년 전인 지난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새로 도입한 IFRS17에서 중요 지표로 자리잡은 보험계약마진(CSM) 증대를 위한 대책으로 단기납 종신보험의 판매를 늘리던 시기였다.
이에 비례해 금감원에 접수되는 종신보험 관련 불완전판매 민원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생보사 종신보험 판매에 대해 미스터리 쇼핑을 실시했는데 대부분의 생보사가 설명의무 이행 등에 매우 저조했다"며 "민원 유발소지가 큰 해약환급금, 보험금 지급 제한사유 등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금감원에 따르면 전체 종신보험에서 단기납 종신보험의 비중은 2019년 10% 미만이었다. 그러나 2020년 26.3%에 이어 2021년 30.4%, 2022년 41.9%까지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 기간동안 금감원에 접수된 불완전판매 민원 중 종신보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2년에는 55.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생보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눈높이에 맞춰 상품을 출시했기 때문에 시장의 호응이 좋았던 것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불완전판매에만 초점을 맞춰 과하게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넓게 보면 보험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규제에만 치중한 정책에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생보업계 관계자는 "상품을 출시할 때 충분히 손해나 대량해지 상황에 발생할 대비책을 마련했음에도 이 점을 묵과한 점은 아쉽다"며 "CSM 증대에 도움이 되는 상품군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기납 종신보험을 규제한다면 건강보험에서 '제2의 단기납 종신보험 상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영업현장에서도 불평이 가득하다. 종신보험의 상품개정이 수시로 이뤄지면서 환급률만 더욱 부각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돼서다. 보험대리점(GA) 지사장은 "상품개정이 장기유지보너스나 완납보너스 등 환급률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결국 고객이 저축성보험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환급률이 자주 변경되면 높은 환급률 상품이 출시될 때까지 보험가입을 미루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등 환급률에 따라 생보 상품의 영업실적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해 5, 7년납 완납시점 환급금 규제 때 납입기간과 거치기간을 달리한 변형상품인 10년 거치 시점의 환급률을 높인 조정상품이 출시된 만큼, 10년 거치 환급률 제재 시 12년, 15년 환급률 조정 등 또 다른 변형 상품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금감원도 "당장 추가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과열 경쟁이 수 개월 이어지며 시장이 혼탁해진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는 것 중 하나의 준비"라고 설명했다.
박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