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세대갈등 기폭제’될까…2030 “청년 목소리 왜 안 듣나”
청년들, 연금개혁 취지엔 공감했지만 “중·노년층에만 이익되는 개혁” 비판
“대통령 공백 상태서 급하게 합의…저소득층 보험료 감면도 불공평” 지적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18년 만의 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2030 세대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합의를 이끈 여야 정치인들은 "더 내고, 더 받는 것"이라며 수습 진화에 나섰지만, 청년 세대들은 "내가 더 내고, 중·노년층이 더 받는 기형적 개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연금 개혁안이 20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많이 더 내고 조금 더 받는' 방식에 반발한 3040 세대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집단 보이콧을 선언했고, 여권 주요 대선주자들은 재의요구권(거부권)까지 거론하며 반기를 든 상황이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0%에서 43%로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4%포인 더 내고, 3%포인트 더 받는 셈이다. 하지만 보험료율 인상 방식을 모든 세대가 향후 8년 동안 0.5%포인트씩 일괄적으로 인상하기로 하면서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지게 됐다. 반면 50대 이상은 상대적으로 혜택이 많아지는 구조다.
본회의 표결 과정에서 재석 의원 세 명 중 한 명(재석 277명 중 반대 40명 기권 44명)꼴로 이탈하며 균열을 드러냈다. 특히 30대 이하 의원 12명 중 10명이 반대·기권을 택하며 세대 간 온도 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중·노년층-청년층 동등한 보험료율, 조세 형평 어긋나"
대다수 2030 청년들은 국민연금 고갈 시점에 다다른 만큼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개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청년층이 당장 혜택을 입게 될 중·노년층과 같은 보험료율로 납입하는 것은 조세형평에 어긋난다고 입을 모았다. 여야정 합의가 아닌, 행정부 수장의 공백 상태에서 여야 합의로 성급히 결론을 낸 것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곧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힌 김효숙(33·여)씨는 "연금이 곧 고갈될 예정이었기에 일정 부분 개혁을 하고자 했던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청년들의 부담이 증가한 것에 대해 2030 세대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 역시 청년들의 비중이 낮다 보니, 중·노년층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혁안이 만들어진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청년들이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진 않더라도, 보험료율 인상이 시작돼 급여에 반영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반발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당층이라고 밝힌 박종일(34)씨는 "결론적으로 이번 졸속 합의 결론을 도출해낸 여당과 야당 모두 잘못했다. 저를 포함한 청년들 입장에선 4% 증가한 연금액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며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도 감면해준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도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맞지 않다. 행정부 수장의 공백 상태에서 여야가 급하게 합의를 하다 보니, 개혁안 자체에 허술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청년 세대에 짐 떠넘긴다면 저출산 기조 확산할 것"
청년들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만큼, 단순히 보험료율 인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보다는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 등 현실적 대책이 포함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치권이 청년 세대 혹은 미래 세대에 짐을 부과한다면, 장기적으론 신혼부부들이 신생아 출산을 포기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취업 준비생인 안준후(30)씨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여야가 합의해 도출했지만, 이 역시도 미봉책이라고 생각한다. 보험료율 인상으로 고갈 시점을 몇 년 늦춘 것일 뿐이지,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높일 현실적 해결책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2030 세대야 지금 일을 하거나, 곧 일할 예정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앞으로 몇 년 뒤에 또 있을 국민연금 재개혁 논의 때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들이 짊어져야 할 빚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최용종(30)씨는 "국민연금 제도를 없애지 않는 이상 지금 개혁안처럼 돈을 더 거두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이대별로 차등해서 돈을 거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이번 개혁안 합의를 주도한 정치인들 입장에선, 적극 투표를 하는 유권자 비중이 중·노년층이 높다 보니 이들의 입장을 반영한 결론을 도출한 것 같다. 그러나 2030 세대 입장에선, '우리 세대도 먹고살기 힘든데, 국가에서 거두는 돈이 더 많아지면 차라리 아기를 안 낳는 것이 맞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기업에 재직 중인 김수정(29·여)씨는 "주변 대부분 친구가 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전세사기를 당해 고통을 겪고 있는 동료들도 많이 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높은 임금 차이에 국민연금에 납부할 금액까지 높아진다면 출산율이 떨어지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연금개혁으로 누군가는 특혜를 보고, 누군가는 희생을 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저출생이 심각한 상황에 노인 인구만 많아지면 연금 고갈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며 "모두가 수혜를 볼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국민연금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모수개혁 일단락됐으나, 구조개혁 남았다
이같은 청년들의 반발이 세대 간 갈등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정치권 원로들과 야당 중진 의원들은 급히 수습에 나섰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금개혁 합의 및 특위 활동을 앞두고 '미래세대 부담'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연금개혁은 세대별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닌 우리 공동체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방식이 돼야 한다"며 "고령화 인구증가와 경제상황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했을 때 연금제도는 계속 손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논의해 가야 하는 현재진행형 사안"이라고 했다.
3선 중진인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22일 SNS에 "국민의힘 일각과 개혁신당 등이 이번 국민연금 개혁이 청년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비난한다. 거짓 선동을 멈추라"며 "노령 세대의 연금이 줄어들면 그들의 생계와 생활을 다른 방식으로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금액을 줄이면 장차 연금을 받게 될 청년의 연금액 자체도 줄어든다. 청년도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고 했다.
모수개혁에 대한 합의는 일단락됐으나, 그보다 더 복잡한 구조개혁이 남은 상황이기에 국민연금 개혁 완성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향후 진행될 구조개혁 합의 땐, 청년 세대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연금특위에 3040 의원 비율을 늘리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연금특위는 국민의힘 6명·민주당 6명·비교섭단체 1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으며 올해 연말까지를 활동 시한으로 하되 필요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특위에서는 연금재정 안정과 노후소득 보장을 목표로 재정 안정화 조치 및 기초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국민연금과 연계된 연금 개혁 방안 등도 논의할 예정이다. 특위에는 법안 심사권을 부여하되, 안건은 여야 합의로 처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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