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자라서 한국 대표격의 명배우가 됩니다

이병헌의 과거 사진
이병헌 32년째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 (인터뷰)

대표작만 수십 편이다. 폭넓은 연기력으로 멜로, 사극, 액션, 드라마, 조폭물 심지어 코믹 장르까지 소화한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그 자체로 보이게 만드는 연기력의 소유자, 바로 배우 이병헌이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를 통해서 이병헌이 이번에도 '역시 이병헌'을 외치게 한다.

이병헌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영탁을 연기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이병헌은 새로운 입주민 대표로 선출된 영탁 역을 맡았다. 그는 어수룩한 주민부터 영향력을 넓혀가며 폭주하는 리더로 변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 설정부터 흥미 생겨"

'콘크리트 유토피아' 개봉을 앞두고 지난 1일 이병헌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사회 다음날 진행된 인터뷰인 만큼, 이병헌은 영화와 연기에 대한 호평에 안도하면서도 제작 과정에서 불안했던 부분들을 솔직하게 꺼냈다.

"극단적인 감정을 연기할 때 관객들이 동화되고 이해하면 그에 대해 안도하지만, 그걸 선보이기 직전까지는 계속 불안해요. 아직 영화가 개봉한 것은 아니지만, 블라인드 시사회나 언론시사회 등을 통해 '괜찮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대지진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붕괴된 가운데 유일하게 솟아 있는 영화 속 황궁 아파트는 재난의 참담함을 보여주는 공간인 동시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생존과 희망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병헌은 시나리오를 보기 전 영화의 설정만 듣고도 큰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황궁 아파트에 많은 얘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나리오를 봤는데 여러 인간 군상과 거기서 벌어지는 갈등과 감정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좋았다. 설정은 만화적이나 내용은 현실적이었다"며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병헌은 "모니터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고 털어놨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모니터 속 내 얼굴 보고 놀라"

이병헌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영탁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실제 영화에는 이병헌의 아이디어가 곳곳에 녹아있다. 이병헌은 "나는 촬영장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는 스타일이다. 그걸 좋아하는 분도 있고, 힘들어하는 분도 있지만 엄태화 감독은 좋아했다"며 미소 지었다.

극 중 이병헌은 깊게 파인 볼과 거친 피부, 'M자'처럼 보이는 헤어스타일 등 파격적인 비주얼로 영탁을 연기한다.

그뿐만 아니다. 영탁 그 자체로 보이는 이병헌의 연기력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엄지를 들게 된다. 이병헌은 본인조차 "모니터를 보고 놀랐다. 나도 몰랐고, 못 봤던 얼굴이 나왔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병헌은 최대한 영탁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캐릭터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철저한 노력은 연기 인생 32년차에게도 새로운 얼굴을 선사했다.

"4~5개월 동안 최대한 영탁의 감정에 젖어 들려고 애를 썼습니다. 끊임없이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몇 개월 동안 발버둥을 쳤죠. 그 인물이 되고 싶어서요."

다만 이병헌은 본인이 영탁 그 자체로 보일 만큼 영화가 완성도를 갖춘 공을 자신의 실력으로만 돌리지 않았다. 그는 "영화가 괜히 종합예술이 아닌 것 같다"며 "사전 회의를 통해서 가장 영탁다운 게 무엇인지 논의한 뒤 분장, 의상, 조명팀이 함께 신경 썼다. 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인물처럼 보이는데 한두 사람이 노력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영탁이 되기 위해 "발버둥쳤다"고 표현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연기에 대한 불안감, 어떻게 극복하냐고요?"

1991년 데뷔해 배우로만 32년을 보냈지만, 이병헌은 지금도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통해 새로움을 안긴다. 하지만 그는 주관적인 본인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될지, 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병헌은 "보편적인 감정들을 누구보다 더 빠르게 이해하고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내가 그린 정서가 의도한 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될지, 안될지에 대해 걱정한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에 대한 믿음, 내가 하는 연기가 맞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를 극복한다고 고백했다.

"불안감만 가지고 연기를 할 수는 없어요. '내가 맞을 거야'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도 있어요. 그래야 다음 연기를 할 수 있거든요. 계속 불안하면 그 캐릭터를 온전히 그려내지 못하잖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의 결과를 봤을 때,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직전까지 안절부절못하다가 반응을 본 뒤 '내 감정이 맞았구나'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쌓이면서 그 믿음이 생긴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병헌이 '콘크리트 유토피아' 개봉을 앞두고 둘째 임신 소식을 전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