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마시기 좋은 샴페인
샴페인은 축배의 상징이다. ‘축하를 위한 와인’으로 각인된 것은 서기 508년, 서로마제국 멸망 후 프랑크족을 통합한 클로비스 1세가 샹파뉴 지역의 랭스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품질 좋은 지역 와인을 축하 만찬에 쓰면서부터다. 이후 프랑스 왕들은 랭스 대성당에서 즉위식을 거행하며 축하주로 샴페인을 마셨고,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1세 대관식 때도 빠지지 않았다. 연말에 샴페인을 마시는 것은 좀 더 특별한 의미다. 어려운 순간을 지나온 스스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북돋기 위해. 이준혁 크리스탈와인그룹 대표가 각 하우스에서 좀 더 공들여 만든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을 추천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샴페인 하우스가 된 자크 셀로스의 서브스탕스는 이 브랜드의 시그너처입니다. 삼각형 오크통에 리저브 와인을 채워 넣은 후 일정량을 빼낸 뒤 새 빈티지 넣기를 반복하며 양조하는 솔레라 방식을 가장 잘 표현한 와인이죠. 마치 종갓집의 50년 넘은 씨간장처럼 가장 오래된 빈티지와 새 빈티지를 섞어 만듭니다.” 한국 시장에서 유독 사랑받는 샴페인인 크루그와 앙리 지로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크루그 컬렉션은 돔 페리뇽으로 치면 외노테크급입니다. 특히 1988년은 레전드 빈티지 샴페인 중 하나로, 유독 더웠던 해라 풍미가 파워풀하죠. 지금이 마시기에 적기고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앙리 지로는 피노 누아 베이스에 오크 터치를 강하게 쓰는 생산자이기에 풀 보디라 한식과 잘 어울립니다. 프레스티지 퀴베로 2002년에 처음 선보인 아르곤은 샹파뉴 동쪽 아르곤 숲에서 생산된 오크를 사용해 샹파뉴의 테루아를 최대한 담아내고자 한 하우스의 진심이 엿보이는 샴페인이죠. 농밀하고 힘이 있지만 매끈하게 잘빠진 맛을 선사합니다.” 반면 글로벌 샴페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샴페인도 있다. 라망디에 베르니에다. “자크 셀로스에 이어 주목받고 있는 하우스입니다. 오롯이 샤르도네만의 느낌을 극대화한 라망디에 베르니에 레 슈맹 다비즈 블랑 드 블랑은 굉장히 순수하고 하늘하늘해요. 앞으로 출시될 와인도 매우 기대됩니다.” 이준혁 대표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샴페인은 대중적이지 않은 피노 뮈니에 품종으로, 훌륭한 로제 샴페인을 생산하는 제롬 프레보의 라 끌로즈리 팩시밀리 로제 블랑 드 누아다. “제롬 프레보는 피노 뮈니에라는 품종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어요. 자신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포도밭이 피노 뮈니에뿐이라 그 품종을 사용했다지만, 볼륨감 있으면서 여운이 오래가는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현재 생산되는 로제 샴페인 중 출시 가격도 가장 높고요.”
에디터 이정윤(julie@noblesse.com)
사진 박지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