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추미술관, 왜 땅속에 미술관을 지었을까?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나오시마, 쓰레기 섬에서 예술섬으로
후쿠타케 소이치로와 안도 타다오 '합작'
30년간 8개 미술관 등 건물 지어
지추미술관엔 모네 등 세 명 유명작가 작품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는 뜻의 예술섬, 나오시마(直島)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버려졌던 섬에서 예술섬으로 기적같은 변신에 성공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번 글은 일본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성공한 과정을 소개하고, 이 섬의 대표적인 미술관 몇 곳을 2회에 걸쳐 전해드리겠습니다.

나오시마는 일본 남쪽의 세토 내해[瀬戸内海)에 떠있는 작은 섬입니다. 전체 섬 크기는 7.81㎢, 동서로는 약 2㎞, 남북으로 약 5㎞, 둘레는 16㎞ 정도 됩니다.  세토 내해는일본의 혼슈 서부, 규슈, 시코쿠로 둘러쌓여 있는 일본 최대의 내해입니다.

회색 부분이 일본의 세토 내해다. 나오시마는 오카야마시 아래에 위치해 있다.

오카야마시와 다카마스시 중간쯤에 있는 나오시마 섬은 1917년에 미쓰비시 광업의 구리제련소가 들어섰던 곳이죠. 호황을 누리면서 인구가 7천 명에 이를 정도로 활기를 띄었지만 그럴수록 산업폐기물과 환경오염문제가 심각해졌어요. 게다가 구리가격의 폭락으로 산업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공장 문을 닫았고, 섬은 쓰레기로 뒤덮인 폐허와 같은 상태로 버려지게 됩니다.

이 버려진 섬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 나타났는데요. 일본의 교육업체인 베네세 홀딩스 회장, 후쿠타케 소이치로입니다. 그의 구상으로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죠. 후쿠타케는 1989년 선친이 짓고 싶어했던 아이들을 위한 캠프장을 나오시마에 개장했는데, 당시 캠프장 건축을 준비하면서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후 후쿠타케는 교통도 좋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섬이었던 나오시마를 현대 미술의 요람으로 만들 꿈을 품고,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계획을 세웁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추진해 예술의 섬을 만들어낸 후쿠타케 소이치로.

이렇게 시작된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완성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바르셀로나에는 안토니 가우디의 프로젝트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나오시마 프로젝트’도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안도 타다오는 1992년에 '베네세하우스 미술관'을 세우는 것을 필두로 2020년에 완공되는 '밸리 갤러리'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총 8개의 건물을 완성합니다. 덕분에 인구 3천여 명에 지나지 않던 나오시마 섬에는 한해 방문객 수가 50만 명에 이르는 관광명소가 되었고요.

아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버려지다시피하고, 교통도 좋지 않은 곳에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가게 되었을까요? 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요?

세 가지 정도의 중요한 비결이 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오시마 프로젝트’가 지역 공동체와 자연, 현대 미술을 살리고 연결하려는 희망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책 『예술의 섬 나오시마』(후쿠타케 소이치로, 안도 타다오 외 지음, 마로니에북스, 2013)에서 후쿠타케 회장은 직접 이런 말을 합니다.

“현재 나오시마에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실은 현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활기를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큰 기쁨이다. 이는 현대미술의 힘이며,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후의 극락이나 천국이 아닌 현세의 낙원, 즉 ‘인생의 달인’들인 노인의 웃음이 넘치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난 20년이 넘게 연구개발해온 덕분에 가능했다.”

흔히 어떤 지역을 개발할 때면 기존의 건물과 자연을 파괴하고 거주민들을 내쫓거나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죠. 후쿠타케 회장은 젊은이들이 떠나고 생긴 빈 집을 부수지 않고 개축해 현대 미술 작품으로 바꾸는 ‘이에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제작에 섬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비결은 뭘까요? 안도 타다오를 비롯한 많은 건축가들이 천혜의 자연을 활용해 자연의 풍광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과 예술, 인간이 하나가 되는 체험을 지향한 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지추(地中)미술관을 들 수 있을 텐데요.

지추 미술관. 땅속에 지어 하늘에서 보면 건축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출처=Benesse-Art Site Naoshima

2004년에 완공된 지추미술관은 그 이후의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 됩니다. 지추미술관을 한자로 읽으면 지중미술관입니다. 즉 땅 속에 지은 미술관이죠. 미술관을 땅 속에 짓는다니! 획기적인 발상인데,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짓겠다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철학이 잘 드러난 곳입니다.

미술관은 후쿠타케 회장의 소장품인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 연작과 월터 드 마리아(1935-2013)와 제임스 터렐(1943-)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오로지 세 작가를 위한 공간인 거죠. 그 중에서 월터 드 마리아와 제임스 터렐은 생존 작가였기(월터 드 마리아는 2013년에 작고)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될 공간의 규모나 비율을 놓고 건축가와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갈등과 긴장, 물러서지 않는 대결 속에서 나름의 협조가 이루어지면서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장소가 아니라 사색하고 체험하는 공간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 미술관을 지은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전시된 세 작가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네 번째 작가로 당당히 미술관에 존재하는 셈입니다. 때문에 이 미술관은 건축 공간과 분리해 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추미술관 월터 드 마리아 전시실. 작품명 시간/영원/시간없음(2004). 출처=Benesse-Art Site Naoshima

이곳에 전시된 월터 드 마리아의 <시간/영원/시간없음>(2004)은 한 가운데에 큰 화강암 구가 놓여있고, 사방 벽에 설치된 금색칠을 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넓은 공간과 높은 층고,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게 한 구조, 천장에서 비쳐드는 은은한 자연광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곳이라기보다 고대의 신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지추미술관 제임스 터렐 전시실. 작품평 오픈 필드(2000). 출처=Benesse-Art Site Naoshima

제임스 터렐은 <오픈 필드>(2000)와 <오픈 스카이>(2004)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오픈 필드>는 수십 가지 빛이 계속 바뀌고, 빛이 바뀜에 따라 그 주변 벽 색깔이 보색으로 보이는 경험을 하게 합니다. 벽은 하얀 색 그대로인데 말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가운데 사각 스크린으로 평면처럼 보이는 곳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오픈 필드>는 우리의 시각경험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인지를 몸소 체험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추 미술관의 제임스 터렐관은 규모가 좀 작기도 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차분하게 관람할 수 있는 '뮤지엄 산'(강원도 원주)의 <간츠펠트>(2013)(오픈 필드의 확장버전)와 <스카이 스페이스>(2012), <호라이즌 룸>(2012)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지추미술관의 클로드 모네 전시실. 출처=Benesse-Art Site Naoshima

지추미술관에서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받은 곳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전시한 방입니다. 이 전시실은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하며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이해가 됩니다. 바닥에 직경 2㎝의 대리석을 촘촘하게 깔아놓았기 때문이죠. 실내화를 통해 느껴지는 촉감이 아주 독특합니다. '대리석이 이렇게 부드러운 것이었나' 하는 생각으로 저절로 사뿐사뿐 걷게 되더군요.

게다가 창문이나 인공조명 없이 천장에서 비쳐드는 최소한의 빛이 바닥의 하얀 대리석에 비치고 대리석이 그 빛을 다시 공간 전체에 반사하니 전시실은 마치 뿌연 안개에 휩싸인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모네의 <수련>과 더불어 구름 위 혹은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파리의 마르모탕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이외에도 유럽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았지만 지추미술관에서의 경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클로드 모네가 그린 250여점의 '수련' 작품중 지추미술관에 있는 작품.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