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새얼 국악의밤이 일깨워 준 난국 속 '우리의 정신'
공연 서두에 꺼낸 故 손창근 이야기
추사 김정희 '세한도' 등 기증하며 뿌리 잊지 않아
활기차고 기개 있는 국악관현악 연주로 시작
국악 협연 국민가수 김수희 열창으로 마무리
어떤 공연은 그 공연이 주는 메시지에 더 주목하게 된다. 지난 18일 저녁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제31회 새얼 국악의 밤’이 열렸다. 공연의 막을 올리기에 앞서 주최 측인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지난 11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문화유산 소장가 손창근 옹의 이야기를 인사말로 꺼냈다.
생전 손창근 옹은 국보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1447년 편찬된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을 비롯한 유물 3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또 경기도 용인 일대 임야 662ha(약 200만평)를 산림청에, 50억원 상당의 건물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각각 기부했다. 그가 별세한 사실도 유가족이 장례를 치르고 난 뒤인 지난 17일에야 뒤늦게 알려졌다. 유가족은 ‘세상에 알리지 말라’는 손창근 옹의 유지에 따랐다고 한다.
“근래 우리나라가 큰 나라들 틈에 끼어 더 힘들게 지내고 있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신세지만, (손창근 옹의) 이러한 정신이 우리 바보 같은 백성들, 시민들, 국민들 속에 뿌리가 깊이 내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새 정말 어려운 시절이죠. 시민이 깨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부터 결심해주길 바랍니다.”
관객들이 왜 국악 공연을 앞두고 지용택 이사장이 이러한 메시지를 전할까 생각하던 찰나, 이용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이 지휘하는 ‘아, 홉 국악오케스트라’가 몽골의 광대한 평원을 표현한 ‘깨어난 초원’을 연주했다. 고유한 우리 기상을 연상하게 하는 활기차고 기개가 넘치는 곡 ‘말발굽 소리’가 이어졌다.
해금앙상블 ‘아띠’의 3중주 ‘삼인행’에 이어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벽면을 사방으로 때려대는 대북 소리가 인상적인 ‘아트팩토리그룹 현’의 웅장한 모듬북 합주 ‘대해(大海) - 북의 울림’으로 객석의 분위기가 고조됐다.
공연은 무겁지 않았다. 인천 대표로 이날 공연에 나선 소리꾼 김경아 명창이 단가 ‘사철가’와 판소리 ‘춘향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가’를 부르자 관객들이 어깨를 들썩였다. 아카펠라 그룹 ‘라클라쎄’와 ‘아, 홉 오케스트라’가 함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신중현의 ‘미인’,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연주하자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소리꾼 한단영과 박현영이 판소리 ‘흥부가’의 ‘박타는 대목’을 맛깔스럽고 익살스럽게 부르는 순간에는 객석이 웃음바다로 변하기도 했다.
국민가수 김수희와 국악오케스트라가 만나 무대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광야’ ‘애모’ ‘너무합니다’ 같은 국민 애창곡이 우리 가락과 우리 장단으로 어우러지는 특별함은 서두에 이야기된 ‘우리 정신’의 표현인 듯 했다. 이와 관련해 더 강한 공감대를 만든 건 공연의 모든 출연진과 관객들이 함께 부른 앙코르 곡 ‘고향의 봄’이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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