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인텔, 파운드리 강화 성공할까?

주하은 기자 2024. 5. 9.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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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인텔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 강세를 보이던 서버 CPU 시장에서도 CSP의 자체 반도체 설계 움직임이 강화됐다. 인텔은 파운드리 강화를 해법으로 내놨다.
4월9일 토머스 쿠리안 구글 클라우드 CEO가 자체 설계한 서버 CPU 악시온을 공개하고 있다. ⓒ구글 제공

4월9일 구글이 자체 설계한 중앙처리장치(CPU) 악시온(Axion)을 공개했다. 인공지능 학습에 특화된 TPU, 동영상 변환에 특화된 VCU에 이어 구글이 세 번째로 설계한 반도체다. 악시온은 구글 클라우드가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에 설치될 예정이며, 2024년 말부터 구글 클라우드 고객에게 제공된다.

흔히 CPU는 컴퓨터의 뇌에 비유된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특정 데이터를 가져오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등 모든 연산이 CPU에 의존한다. 사용처에 따라 CPU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데스크톱·노트북에 들어가는 PC용 CPU,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용 CPU,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AP(CPU와 그래픽 칩셋 등을 통합한 모바일용 반도체)다.

구글이 이번에 발표한 악시온은 서버용 CPU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Cloud Service Provider)들은 데이터센터를 구비해두고, 고객들이 원격 접속을 통해 데이터센터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 CSP가 제공하는 ‘가상 컴퓨터’의 기능을 빌려서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비록 서비스 이용자에게는 ‘가상 컴퓨터’이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연산과 데이터 저장을 실행하기 위한 물리적 기반인 데이터센터를 갖춰야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큰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다. 그만큼 CSP들은 엄청난 양의 반도체를 소비하는데, 최근에는 각 CSP가 자사 서버에 탑재하는 CPU를 자체 설계하는 추세다. 3대 CSP 기업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모두 자체 설계 CPU를 사용한다.

그동안 서버용 CPU 분야에서 절대 강자는 인텔이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인텔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9년 무렵 경쟁업체인 AMD가 서버 CPU 시장으로 확장을 선언한 이후 조금씩 시장점유율이 하락했다. 이에 더해 서버 CPU 시장의 ‘큰손’인 CSP 업체들이 자체 CPU를 설계하기 시작하면서 인텔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인텔의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은 2021년 약 80%에서 2022년 약 70%로 하락했다.

4월9일 구글이 공개한 자체 CPU 악시온의 이미지. ⓒ구글 제공

인텔이 시장점유율을 놓치고 있는 것은 비단 서버용 CPU뿐만이 아니다. 데스크톱·노트북 CPU 시장에서도 2010년대 중반에 비해 낮은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모바일 AP는 훨씬 더 심각하다.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되던 시기 인텔은 모바일 AP 시장 진출에 완전히 실패했다. 시장지배력을 유지하던 서버용 CPU 시장에서마저 점유율이 하락하며 반도체 설계 기업으로서 인텔의 입지는 점차 줄어드는 형국이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도 인텔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 산업의 성장으로 많은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지만, 인텔은 이 흐름에서 소외됐다. 투자회사 로젠블라트시큐리티 애널리스트 한스 모세스만은 〈로이터〉에 “인텔을 제외한 모든 곳에 AI가 존재하는 것 같다”라는 혹평을 남기기도 했다. 4월9일 인텔은 인공지능 개발에 특화된 반도체 ‘가우디3’을 내놓으며 엔비디아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엔비디아가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유지하는 데다, 빅테크 기업들이 이미 자체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팹리스와 파운드리 회계 분리한 인텔

집토끼는 놓치고, 산토끼는 멀어지는 상황에서 인텔이 꺼내든 카드는 파운드리 강화다. 반도체 기업은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설계를 하는 ‘팹리스(Fabless)’ 분야와 생산만 담당하는 ‘파운드리(Foundry)’ 분야다. 인텔과 삼성전자는 이 두 개를 함께하는 몇 안 되는 종합반도체업체(IDM)로 분류된다. 설계 분야에서 입지가 약화되고 있는 인텔은 파운드리 강화로 사업전략을 수정했다. 그동안 인텔의 파운드리 부문은 주로 내부 물량만 생산해왔지만, 앞으로는 외부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위탁생산하는 비율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2023년 기준 9억 달러에 불과한 외부 위탁 연 매출을 2030년 150억 달러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4월9일 ‘인텔 비전 2024’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가우디3을 공개하고 있다. ⓒ인텔 제공

파운드리 강화를 위해 인텔은 팹리스 분야와 파운드리 분야의 회계를 분리하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가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설계 부문과 생산 부문을 분리해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파운드리 부문이 높은 성과를 기록하기 위해선 인텔 내부 제품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외부 위탁생산도 적극적으로 수주해야 한다.

인텔의 파운드리 강화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타이완 TSMC에 밀려 파운드리 부문 만년 2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2위 자리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혁재 서울대학교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이전에는 인텔이 삼성전자를 따라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인텔의 기술개발 로드맵을 보면 빠른 속도로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오고 있다. 이 로드맵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 육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삼성전자에 더욱 불리한 요소다. 최근 미국은 인텔에 최대 85억 달러, 삼성전자에 최대 64억 달러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확정했다. 인텔에는 110억 달러의 대출도 제공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등 조력이 반도체 경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진 못하리라고 예측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 정부 보조금의 중요성이 과장돼 있다. 보조금 액수보다는 반도체 산업에 얼마나 많은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는 TSMC, 인텔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라고 분석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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