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비계’ 타고 옆 건물로 불 옮겨 붙었다
26일(현지 시각)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 고층 아파트 단지 왕푹 코트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9시 기준 소방관을 포함해 최소 13명이 숨지고 16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여덟 개 동 중 일곱 개 동에 불길이 번진 데다 밤늦게까지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어 대규모 인명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불은 영국령 시절인 1996년 11월 갈레이 빌딩에서 41명의 사망자를 낸 화재 이후 근 30년 만의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날 오후 2시쯤 발생한 불은 1년 넘게 진행 중이던 아파트 외벽 보수 공사용 대나무 비계(飛階)와 안전망을 타고 빠른 속도로 번졌다. 홍콩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4시간여 만인 6시 22분, 화재 등급을 최고 단계인 5급으로 격상했다. 홍콩에서 5급 화재가 발생한 것은 2008년 몽콕 나이트클럽 화재(4명 사망) 이후 17년 만이다.
소방관 767명과 경찰 400여 명이 현장에 투입됐으나 진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31층 높이의 아파트 상층부에는 대피하지 못한 주민 다수가 고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공사를 위해 설치한 대나무 비계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아파트는 완공된 지 42년 된 서민 아파트로 2000가구에 약 4800명이 살고 있다. 여덟 동 중 한 곳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에 옮겨붙은 불이 건조한 공기와 강한 바람을 타고 주변 세 동으로 번졌다.

빌딩 숲이 빽빽하고 도로가 좁은 홍콩에서는 건물 공사를 할 때 철제보다 유연하고 가벼우면서도 비용도 저렴한 대나무 비계를 많이 쓴다. 하지만 인화성이 강한 목재라는 점에서 화재에 취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1996년 갈레이 빌딩 화재도 엘리베이터 용접 중 불이 났는데, 대나무 비계 때문에 대형 화재로 번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홍콩 정부는 올해 초부터 공공 사업에서 대나무 비계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화재 발생 후 현장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재 초기 경보기가 먹통이었다는 대피 주민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한 80대 주민은 “경보음이 전혀 들리지 않아 타는 냄새를 맡거나 경비원이 문을 두드려 불이 난 줄 알았다”며 “자고 있었다면 꼼짝없이 변을 당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홍콩 특유의 ‘닭장 아파트’ 구조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의 아파트 대다수가 동 간 간격이 좁아 화재 발생 시 옆 건물로 불이 옮겨붙기 쉽고, 연기가 빠져나갈 공간이 부족해 참사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일부 주민은 평소 외벽 공사 인부들이 비계 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해 관리사무소에 항의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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