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찍 2찍’ 양극화 발작 버튼은 뇌에…그것을 누르는 건 악성정치 [이형석 칼럼]


#1 가장 최근의 여론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9명은 우리 정치가 양극화돼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8명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 간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고 봤다. 최근 10년으로 기간을 넓혀도 보수와 진보 간 이념·정치 갈등이 빈부, 노사, 지역, 성별 등을 제치고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집단 간 갈등으로 꼽혔다.
더불어민주당(1번)과 국민의힘(2번)의 대통령·국회의원 등 선거 기호 순번을 따라 각 당 지지자들을 통속적으로 칭하는 ‘1찍’(1번 후보 찍은 유권자)과 ‘2찍’의 분열과 대립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자 날이 갈수록 증상이 악화되는 난치병이라는 사실이 국민 인식 속에도 확실히 자리잡은 것이다. 역대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통합’을 최우선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정책의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 지난 2011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카나이 료타와 저레인트 리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90명의 청년 남녀를 모아 각자의 정치적 성향을 보수에서 진보까지 5단계로 평가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스캔했다. 그 결과 보수주의자들은 오른쪽 편도체가 진보주의자들보다 두꺼운 경향을 나타냈다. 진보주의자들은 전대상피질의 부피가 상대적으로 컸다. 편도체는 공포, 분노, 혐오 등 외부 자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처리를 담당한다. 반면 전대상피질은 오류 탐지, 동기 부여, 정서 조절, 의사 결정, 갈등 해결 등 다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정치적 분열과 양극화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로 원인을 규명하려는 다양한 모색이 이뤄져 왔다. 과거엔 주로 빈부 격차 확대, 계층구조 양극화, 노동시장 변화, 불평등 심화 등 주로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이유와 해법을 찾는 경향이 많았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제나 의회·정당·선거제도에서 답을 구하려는 노력도 계속돼 왔다. 특정 정당에 지지가 고착되거나, 특정 정치 성향을 갖게 되는 유권자들의 심리나 정치적 태도를 분석하려는 ‘정치심리학’도 발전했다.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정치 성향과 정치적 선택 및 정치적 행동과 뇌 구조 및 유전자와의 연관성을 찾는 이른바 정치 신경과학(political neuroscience)이나 유전자 정치학(genopolitics)이다.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영상촬영기술과 유전자를 발굴하고 역할을 규명하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새롭게 떠오른 학문분야다. 사람들의 정치적 사고와 행태의 비밀을 뇌와 유전자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과연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뇌 구조와 유전자 속에 각인돼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치 양극화와 극단화에 대한 해법은 ‘뇌수술’이나 ‘호르몬 투여’ 같은 방법 밖에는 없다는 말일까.
▶2025년, 1찍과 2찍은 더 갈라졌다=한국갤럽이 국민일보 의뢰로 지난 4~5일 실시한 여론조사(이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에서 ‘우리 정치가 양극화돼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6%가 ‘그렇다’고 답했다. ‘비상계엄 이후 국가가 정상화됐다고 보는지’에 대한 답은 긍정·부정 답변이 각각 48%로 같았는데, 그 비율도 정당 지지에 따라 반전을 이뤘다. 긍·부정 비율이 민주당 지지자는 63%대 34%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는 24%대 70%였다.
한국갤럽이 중앙일보 의뢰로 지난달 28~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계엄 이후 정치적으로 더 양극화가 됐다’고 답한 비율이 77%로 ‘그렇지 않다’의 18%보다 훨씬 많았다. 정치적 양극화의 책임이 어디에 주로 있는지에 관한 답은 윤석열 전 대통령(25%)-국민의힘(18%)-언론(16%)-민주당(12%)-정치 유튜버(10%)-이재명 대통령(10%) 순이었는데, 역시 지지정당에 따라 갈렸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윤 전 대통령(38%)과 국민의힘(29%)을 가장 많이 꼽았으나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민주당(32%)과 이 대통령(26%) 책임이라는 답변이 더 우세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간(2013~2024년) 우리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을 가장 심각한 사회 갈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기준으로는 보수-진보(3.1) 뒤를 이어 빈곤층-중상층(2.9), 근로자-고용주(2.8), 수도권-지방(2.7), 개발-환경보존(2.7), 고령층-젊은층(2.7), 남자-여자(2.6), 내국인-외국인(2.6), 종교(2.5) 순이었다.
정치적 양극화는 대체로 두 가지 의미가 혼용돼 쓰인다. 먼저 중도층도 제3의 선택지도 없이 국민 여론이 흔히 두 개의 정당이나 이념으로 쪼개진 현상을 가리킨다. 국론이 흔히 보수-진보로 양분되고, 두 이념을 대표하는 정당·지지자들 간 이해나 심리·정서적 괴리가 커지는 추세를 뜻한다. 한국갤럽이 별도로 실시한 두 여론조사에서 ‘정치적 양극화 책임’과 ‘비상계엄 후 국가정상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한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자 비율은 극히 적고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상반된 분포를 보였는데, 이것이 정치적 양극화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극좌’나 ‘극우’ 등 이념의 스펙트럼에서도 양쪽 끝에 있는 극단 성향의 정당·유권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거나 이들에 의한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을 정치적 양극화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극단화’가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한국 사회 극우 6~21%=최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 집단은 극단주의세력 중에서도 극우다. 우리 사회에서 극우는 얼마나 될까.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가 지난 3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21%가 극우 성향으로 분류됐다. 20대(18~29세)가 28%로 가장 많았고, 70대 이상(29%), 60대(24%), 50대(20%), 30대(16%), 40대(12%) 순이었다. 남녀까지 고려하면 20대 남성과 70대 남성이 각각 33%로 가장 높았다.
지난 6월(4~5일) 시사인과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 포인트)중에는 한국의 극우에 대한 조사와 분석도 있었다. 2000명에게 총 239개의 질문을 던지고 이 중 극우와 관련된 지표를 모아 분석하는 식이었는데, 여기에 참여한 최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체의 6.3%를 극우로 추정했다. 두 조사 간 차이가 크지만 서로 다르게 극우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극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미국이 19%, 프랑스는 17%, 영국 10%, 독일 7%였다. 0(가장 좌파)~10점(가장 우파) 척도로 스스로를 평가한 조사로 극우는 자신의 이념 성향에 10점을 매긴 사람이다. 이를 보면 한국의 극우 비율도 서구 못지 않다고 추정할 수 있다.
▶뇌와 유전자에 숨겨진 보수-진보의 표식과 극단주의의 신호=뇌와 유전자 속에서 보수와 진보의 징후와 극단주의의 신호를 찾으려는 정치신경과학과 유전자정치학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2018년 현 남 스토니브룩대 교수 등 뉴욕의 연구진들이 ‘네이처 행동과학’에 발표한 논문 ‘편도체 구조와 사회 체제 정당화·이상화 경향’에 따르면 편도체의 크기는 개인이 체제를 얼마나 정당화하는지를 예측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기성 사회 시스템의 불평등한 계층구조를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좌우 편도체 부피가 클 가능성이 높다. 편도체 부피가 큰 개인은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시위나 운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적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편도체의 크기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사회체제 정당화 경향 모두에 연관돼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경전달물질이자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은 편도체의 활성에 모두 관여한다. 세로토닌은 충동조절과 정서안정, 도파민은 보상과 쾌감, 흥분을 주도한다. 또 세로토닌은 위험 회피, 질서 선호, 불확실성 혐오 등과, 도파민은 새로움 탐색, 모험 추구, 변화 수용 등의 성향과 주로 관련된다. 제임스 파울러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2008년 ‘정치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 ‘당파성, 투표, 도파민 D2 수용체 유전자’에서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DRD4)의 특정 변이(7R)가 더 많은 사람이 보통 사람보다 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며 청소년 시절에 친구가 많으면 성인이 된 후 진보 성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레오르 즈미그로드는 저서 ‘이데올로기 브레인’에서 인지·이념적 경직성과 도파민 및 뇌의 해부학 구조 간 연관성에 대한 자신의 실험 결과를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전전두엽 도파민 수치가 낮고 선조체 도파민 수치는 높은 사람들이 인지적·이념적인 유연성이 가장 떨어지고 경직돼 있다. 전전두엽은 충동을 조절하고 복잡한 추론을 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뇌의 부위로, 의사결정의 허브이자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다. 중뇌에 있는 선조체는 운동 제어, 습관 형성, 반복 행동 등에 관여한다.
즈미그로드의 실험은 전전두엽에 도파민이 오래 머무는 사람은 목표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의사결정을 유연하게 바꾸는 반면, 선조체에 도파민 수치가 높은 사람은 학습과 훈련에 의해 강화된 행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도파민이 전전두엽에서 적고 선조체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교조주의자, 강경파, 행동파, 극단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양극화와 극단화의 버튼은 뇌에, 그것을 누르는 것은 악성 정치=최근의 신경과학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뇌 구조와 유전자가 사람의 정치 성향이나 정치적 행동의 양태를 예측하는데 유력한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한 사람의 보수-진보 성향이 태어나면서 이미 결정된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은 물론이고 정치신경학이나 유전자정치학에서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뇌 특정 부위의 활성화와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결정짓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성장환경과 교육, 학습과 훈련, 경제·정치 제도 등 사회 환경이다.
뇌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 자극과 경험, 학습 등에 의해 구조적·기능적으로 변화한다. 이를 뇌가소성이라고 한다. 후성유전학은 DNA의 염기서열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매커니즘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 유전자 자체가 변하지 않고도 환경과 경험에 의해 특정 유전자의 발현 여부가 결정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 뇌에 보수와 진보의 표지가 새겨진 뇌 부위가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모두가 생존 경쟁과 진화에서 역사적 생물학적 역할을 해왔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뇌가소성과 후성유전학은 인간이 진화와 유전자의 산물이되, 학습과 환경의 영향을 강력히 받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요컨대, 정치 양극화와 극단화의 발작 버튼은 우리 뇌에 있되, 그것을 누르는 것은 악성 정치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수술이 필요한 건 뇌가 아니라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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