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 양상문의 진단
조선의 4번 타자였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이대호[RE:DAEHO]’가 얼마 전에 스승을 모셨다. 자이언츠 시절의 사제 관계다. 양상문 이글스 코치와의 장면이다.
이대호 “김서현도 작년에 코치님 오고 나서, 제구가 안 됐던 친구인데, 어떤 변화를 줘서 제구가 되게 만드셨어요?”
양상문 “제구는 아직도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
이 “그렇죠.” (끄덕끄덕)
양 “근데, 서현이 볼 정도면, 볼넷 하나 주고 삼진 잡고(1사 1루), 그런 식으로 볼넷-삼진(2사 1, 2루), 볼넷-삼진(2사 만루) 하면 이닝이 끝나. ‘그렇게 야구하자’라고 했지.”
이 “씩씩하게 던져라.”
양 “어, 그냥 가운데만 보고 던져라. 왜냐하면 서현이가 팔이 좀 낮으니까. 가운데만 던져도 이게 자연스러운 싱킹 패스트볼이 되잖아.”
이 “맞아요.”
양 “이게 너의 주 무기가 된다. 제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별로 안 줬어. 그냥 막 던져라.”
이 “그런데 마지막에 막 던져 가지고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양 “그게 아니고, 막 안 던져서 그런 거지.”
이 “아, 이제 좀 더 잘 되니까.”
양 “서현이의 투구 분포도가 만약에 1mX1m였다면 90cmX90cm로 들어온 거야.”
이 “다 중간에 몰렸다는 얘기네요. 날려야 되는데.”
양 “그래야 서현이의 특징이 살 수 있는 공인데, 그게 좁혀졌어. 그러니까 이게 좀 제구가 좋아졌다고도 할 수 있지. 그러다 보니까 홈런도 좀 맞고 어려움도 겪었다고 봐야지.”

류현진이 버럭 한 이유
이율예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게임이 있다. ‘그다음 날’이다(10월 3일). 다시 출근이다. 투수조가 줄줄이 (수원 구장) 외야 쪽으로 간다. 경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해서다.
그때였다. 누군가 김서현을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뭔가 손짓으로 얘기한다. “저기 놓고 가.” 그런 말인 것 같다.
“???.” 무슨 뜻인지? 당사자는 머뭇거린다. ‘아니, 그냥 괜찮아요’. 그런 눈빛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자 상대 목소리가 더 커진다. 강한 어조의 명령이 된다. 마치 야단치는 것 같다.
“저기 놔. 빨리 저기 놓고 와, 빨리.” 그래도 쭈뼛쭈뼛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지시로 바뀐다. 덕아웃을 가리키며 타이른다. “글러브랑 스파이크 집어넣고 와.” 그러자 마지못해 움직인다.
당사자의 설명이다.
“사실 저는 그냥 너무 답답하니까, 뭐라도 해서 빨리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자. 그런 생각을 했는데….” (김서현)
하지만 버럭의 주인공은 다른 마음이다. 하늘 같은 선배 류현진(38)이다.
“끝내기 홈런을 맞고, 본인이 더 힘들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오늘 등판도 안 하는데, 또 야구공을 던지려고 하길래. 그래도 하루 동안은 야구 생각 안 하고, 그냥 편안하게 컨디션 관리하는 게 좋겠다(하는 말이었죠).”
와중에 언성이 약간 높았다.
“어떻게 보면 좀 강하게 얘기했죠. 서현이가 정말 캐치볼을 계속하고 싶어 했거든요.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계속했는데, 강하게 ‘오늘은 쉬어도 된다’라고, ‘너 여태까지 많이 던졌고, 오늘 하루 공을 안 던진다고 야구 못하지 않는다’라고 그렇게 얘기해 줬어요.” (류현진, 이글스 TV)

연말 술자리의 단골 안주
시간이 꽤 지났다. 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다. 누구에게는 그만큼 큰 상처다.
한쪽에서는 여전하다. 연말 술자리의 단골 안주가 되기도 한다. SNS, 온라인 커뮤니티는 아직도 부글거린다. 원망, 한숨…. 그런 진한 감정들이다.
대략 두 갈래다.
우선은 당사자에 대한 질책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한두 번도 아니다. 반복에 또 반복이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경기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타를 맞았다.
한결같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그걸 막판에 망쳤다. 그래서 더 충격이 크다. 그래서 더 아프고, 안타깝다.
혹자는 20년 전을 떠올린다. 마운드에 주저앉은 BK의 모습 말이다. 홀연히 등장한 영웅이다.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 시즌을 평정했다. 그런데 월드시리즈에서는 정반대였다. 연거푸 무너졌다. 참담한 역전극에 떠내려 갔다.
누구는 화살을 감독에게 돌린다. 그렇게 만든 원인 제공자라는 뜻이다. 경험도 별로 없는 어린 투수를, 그렇게 극한 상황에 매번 내몰았다는 논리다.
또 있다. 처음 해보는 마무리에, 처음 겪는 풀 시즌이다. 그런데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막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런 분석이다. 나름대로 틀린 말은 아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지긋지긋하다. 뭐, 좋은 얘기라고.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 이제 좀 그만하자. 그런 목소리도 많다.

프로는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어디 류현진뿐이겠나. 챙기는 선배들이 많다. 우선 주장 채은성(35)이 한 마디 한다.
“(SSG전 패배로 2위 확정은) 저 한 경기 때문이 아니거든요. 우리가 1위 싸움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서현이가 정말 잘해줬어요. 말도 안 되게…. 저는 매를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매도 맞아봐야, 의연하게 또 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외국인도 거든다. 이제는 휴스턴 주민이다. 라이언 와이스(29)의 얘기가 인상적이다.
“살면서 굉장히 쉬운 일이 있어요. 잘하고 있는 선수에게 나이스하게 대하는 것이죠. 반대로 잘 안 풀리는 동료에게 잘하는 건 무척 어렵죠. 속에 아픈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죠.”
고생이라면 누구 못지않다. 파란만장한 자신의 이력이 떠올리는 것 같다.
“서현이가 그 게임에서 홈런 10개를 맞았으면 어때요. 아직 22살인 선수예요. 너무나 젊은 투수죠. 올해 33세이브를 올렸고, 올스타에도 뽑혔어요. 그 친구 덕분에 우리가 한국시리즈도 갔고요. 시즌 막판에 있었던 일 때문에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잠깐 빛난 적이 있다. 한국시리즈 3차전이다. 8회 1사에 등판해 1.2이닝을 지켰다. 7-3 게임의 승리투수가 된 것이다.
경기 직후다. 그라운드 인터뷰가 예정됐다. 잠깐의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덕아웃에서 갑자기 눈물을 쏟는다. 그냥 흘리는 정도가 아니다. 모자로 얼굴을 덮는다. 어깨가 들썩거린다.
“그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야구장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랜더스 구장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머릿속에 자꾸 그때가 생각나고, 계속 안 좋다 보니까. 좀 너무 힘들고 해서.”
괴로움은 끝나지 않는다. 자책도 크다.
“솔직히, 미워하셔도 됩니다. 솔직히.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 많이 못 보여드렸으니까.”
맞다. 틀린 말 아니다.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다. 욕먹어도 마땅하다. 다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게 끝이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어리다고, 처음이라고…. 그런 따위는 변명이 될 수 없다. 누굴 탓하는 것도 못난 일이다.
프로다. 마운드에서 결과로 입증해야 한다. 그게 팬들에 대한 대답이 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