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형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주어진 시간에 많은 문제를 푸는
선행학습이 중요한 한국형 영재들
새로운 개념을 착안할 기회가 없다
학문적 영감을 주는 스승도 드물고
문제 제기에도 변하지 않는 공교육
창의적 천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국계 미국인 허준이 교수가 지난주 전 세계 수학계의 가장 큰 상인 필즈메달을 수상했다. 한국계 사람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이라 많은 국민들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했다. 필즈메달은 4년에 한 번 시상하는 데다 40세 이하라는 나이제한까지 있어 노벨상보다 더 수상이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허 교수는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등 수학계의 난제를 11개나 해결했다. 특히 조합론을 대수기하와 연결해 난제를 해결한 그의 접근법은 조합대수기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합론은 간단히 말해 경우의 수를 세는 분야이고 대수기하는 대수적인 방법으로 기하학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지도에서 인접한 나라에는 서로 다른 색을 써서 칠할 때 4가지 색으로 모든 나라를 구분해서 칠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이를 4색 문제라 한다. 1852년 영국의 프랜시스 구드리가 처음 제안한 질문으로, 4가지 색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은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1976년이었다. 지도 위의 국가를 점으로 표현하고 국경을 맞댄 국가를 선으로 연결하면 4색 문제는 점과 선으로 구성된 그래프에서 꼭짓점을 색칠하는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이를 일반화시켜 임의의 그래프에 대해 주어진 가짓수 이하의 색으로 꼭짓점을 칠할 수 있는 (인접한 꼭짓점은 서로 다르게 칠한다는 조건으로) 경우의 수를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채색다항식이라 한다. 리드 추측이란 채색다항식의 계수의 절댓값이 점점 커지다가 한 번 정점을 찍고 작아질 수는 있으나 작아지다가 커질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허준이 교수는 대수기하학의 근본적인 성질과 방법론을 동원해 이를 증명했다. 로타 추측은 리드 추측이 보다 확장된 형태이다.
전혀 다른 두 분야를 연결해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천재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사실 평소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형 천재’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한국형 천재, 또는 영재는 대체로 계산과 암산, 선행학습을 잘하는 학생을 일컫는다. 정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그 문제라는 것도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수능 킬러문항’은 서너 단원의 요소를 서너 번 비틀어서 한데 묶어 기계적인 풀이 테크닉의 최고봉을 이룬다. 한국에서 천재 소리를 들으려면 정해진 시간 안에 킬러문항 정도는 풀 수 있어야 한다. 선행학습을 잘하는 능력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해진 과정을 잘 따라가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내용을 조금 빨리 잘하는 능력일 뿐이다. 나이든 사람이 배우는 내용을 좀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훌륭한 능력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한국형 천재의 맹점은 나이든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로 물려받는다는 점이다. 진정한 천재는 나이에 상관없이 인류가 여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선행학습이 중요한 한국형 천재들은 선배들의 패러다임을 빠른 시간에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고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필즈메달과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허준이 교수는 확실히 한국형 천재가 아니다. 허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쉽게 외지 못한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저조한 점수로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게다가 허 교수는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한국의 자랑인 사교육의 힘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D와 F 학점만 받은 학기도 있었고 학부 과정을 6년에야 끝냈다. 지극히 한국적인 기준으로 ‘서울대 입학’이라는 결과만 놓고서 누군가는 허 교수의 청소년 시절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학창 시절은 전형적인 한국형 천재의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를 과외 수업했던 분의 증언에 따르면 허 교수는 “주어진 시간 내에 많이 푸는” 그런 입시에 최적화된 “그 기준에 비춰서는 인상적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허준이 교수의 독특한 이력은 우리를 다소 당혹스럽게 한다. 국적이 미국인 것이야 하필 태어난 곳이 미국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양친이 한국인인 데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한국에서 마쳤으니 한국인이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는 분명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다. 그러나 허 교수가 한국 교육시스템이 만들어낸 걸작인가라고 자문해보면 선뜻 그렇다는 답을 하기가 망설여진다. 만약 지금 한국 땅 어딘가에서 제2, 제3의 허준이가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대학 졸업도 늦게 하면서 성적표에 F가 많다면, 과연 누가 그런 학생을 ‘미래의 허준이’가 될 잠재력을 갖춘 인재라 평가하며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려 할까? 안타깝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허준이 교수의 학문 이력에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일본의 필즈메달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였다. 그가 석학 초빙 프로그램으로 서울대에 머물러 있었고 허 교수가 그의 수업을 듣고 함께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큰 행운이었다. 허 교수가 석사 과정으로 수학과를 선택한 것도 히로나카 교수의 권유였다. 석사 논문도 히로나카 교수의 특이점 이론을 응용한 것이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리드 추측 등을 증명하는 데에도 그 특이점 이론이 기반을 이루었다고 한다. 허 교수가 조합론을 처음 배운 것은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였다. 다소 지나친 감이 있지만, 한국의 공교육 체계가 허 교수에게 도움을 줬던 유일한 공로는 히로나카 교수를 초빙한 것이라는 세간의 우스갯소리를 마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한국에는 왜 공적 교육체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잠재적인 인재들에게 학문적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스승이 없었던 것일까? 둘째, 왜 허준이 같은 천재가 적응하지 못하는 공적 교육체계를 바꾸지 못했을까?
첫째 문제는 그동안 많은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가 극복하지 못한 한계적 상황일 것이다. 사실 한국 수학계는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2007년 국제수학연맹에서 2그룹 국가에서 단숨에 4그룹 국가로 두 단계를 뛰어넘기도 했다. 이는 국제수학연맹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게다가 올해에는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발전했으나 세계를 선도하고 젊은 학도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킬 학문적 거인이 배출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아마도 그 기다림의 끝에 허준이 같은 인물이 이제 제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
둘째 문제는 우리의 한계라기보다 오류에 가깝다.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는 30여년 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듣던 소리이다. 작년에는 2022학년도 수능에서 출제오류로 법정까지 가서 시비를 가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내적 정합성과 풀이 과정보다 정답 찾기 변별력을 더 강조했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태도는 수많은 학생과 교육자들을 실망시켰다. 수능 영어 지문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조차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글로 채워져 있다. 왜 우리의 청춘들이 이런 데에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야 하나?
창의는 투입시간에 비례하진 않아
허씨는 ‘하루 4시간’ 연구에 몰두
남은 20시간은 4시간을 위해 쓴다
우리의 청춘들은 입시란 지옥에서
취업의 준비학교가 된 대학에서
너무나 많은 공력을 낭비하고 있다
또한 대학은 이미 취업을 위한 준비학교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금 한국 대학의 존재 이유가 자유로운 진리 탐구가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정부와 교육부가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공적 영역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한다. 산업과 경제의 논리가 캠퍼스를 휘젓고 다닐 때 그런 논리로 치환되지 않는 수많은 다른 분야들을 정부가 나서서 지켜야 한다. 그게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는 대통령이 앞장서서 교육부의 첫째 의무가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말해 더욱 우려가 크다. 전국 200여 대학에 물리학과가 없는 대학이 무려 75%에 달한다. 지방 사립대학에서는 수학과의 존립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2의 허준이가 탄생할 수 있을까? 노벨상은? 너무 염치없는 바람이다.
“하루 4시간만 연구에 몰두한다.”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하루 일과를 묻는 질문에 허준이 교수가 답한 말이다. 지옥 같은 입시 과정을 지내본 사람이라면, 오래 자리를 보전한다고 해서 공부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는 더욱 그렇다. 하루 24시간 중에 정말로 집중해 뭔가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라도 아마 4시간 정도가 최대일 듯싶다. 나머지 시간은 그 4시간을 위한 준비와 재충전의 시간이다. 시야를 넓혀보자면 노동집약적인 사회에서 기술집약적인 사회로 전환한다는 것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주당 노동시간을 92시간으로 늘린다고 해서 창의적인 결과가 나오거나 필즈메달이 쏟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배우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로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의 주 52시간 노동이 좋은 영화를 찍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인간의 창의성이야말로 허준이 교수가 증명한 리드 추측처럼 노동시간에 따라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다시 감소하지만, 노동시간이 더 증가한다고 해서 다시 커지지는 않는다. 그 정점에 이르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 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허준이 교수의 존재 자체가 이런 나의 ‘이종필 추측’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이지 않을까?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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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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