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같은 친구, 토요타 캠리 [시승기]

조회 5382025. 1. 22.

가족과 즐기는 패밀리 세단, 상사를 모실 비즈니스 라운지, 친구와 즐기는 와인딩 머신…. 캠리는 슈퍼맨처럼 모든 역할을 소화한다

12월. 평범한 사회인들과 마찬가지로, 연말은 내게 1년 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업무는 산더미처럼 쌓였고, 바쁜 일상을 사느라 만남을 미룬 친구들과 약속 자리도 수두룩하다. 매년 반복하는 일상이지만 나름 보람차다. 밀린 업무를 술술 해치울 때면 짜릿한 쾌감이 솟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수다 떨기 일쑤다.

다만, 내 체력이 문제다. 해마다 연말이면 체력이 부친다. 잠까지 줄여가며 일한 탓인지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약속 자리에선 피로한 모습만 비출까 마음이 편치 않다. 이때는 한결같던 내 취향도 바뀐다. 힘세고 잘 빠진 스포츠카와 우람한 SUV 같은 극적인 자동차를 좋아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는 아무런 고민 없이 편히 탈 수 있는 세단을 원한다. 때마침 9세대로 거듭나 얼마 전 한국 땅을 밟은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를 만났다. 우주가 나섰나? 많고 많은 시승 중에, 마침 캠리가 나타나다니. 이 친구와 편안한 하루를 함께 해보자.

#1 출근길 히어로

오늘도 바쁜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오후 외부 미팅에 앞서 우선 서울 시내에 있는 사무실을 들러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러시아워를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캠리에 올랐다. 친근한 인테리어와 편안한 천연가죽 시트가 나를 맞이한다. 날이 추워 얼른 히터를 틀고 싶다. 캠리의 장점 중 하나는 모든 버튼이 가장 보편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시동 버튼은 스티어링휠 오른쪽, 공조장치는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밑에 도열했다. 조작도 직관적이다. 처음 탔는데도 어떤 기능을 어떻게 만져야 할지 고민할 필요 없다. 얼마나 편리한지, 과도한 디지털로 인한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

5세대로 거듭난 ‘토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THS)’은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 배터리 셀 크기는 줄었는데, 셀 자체 밀도를 개선해 쓸 수 있는 용량은 늘었다. 즉, 가볍고 효율 좋은 배터리다. EV 모드를 넣고 전기차처럼 달렸다. 복잡한 서울 시내를 조용하고 매끄럽게 나아간다. 전기모터는 전 모델보다 출력을 20마력 높여 130마력에 육박한다. 웬만한 소형 전기차보다 센 출력(현대 캐스퍼 일렉트릭이 113마력이다)으로 1.6t 덩치를 부드럽게 이끈다. 강력한 토크로 초반에 치고 나가는 느낌이 사뭇 경쾌하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만큼 EV 모드 가용 시간이 길진 않지만, 엔진으로 역할을 넘기는 과정이 상당히 매끄럽다. 음악을 듣고 있다면 엔진이 깨어났는지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교통체증이 유독 심하다. 이럴 땐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누릴 차례다. 고민 없이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을 켰다. 앞차와 간격을 매끄럽게 조절하고, 차로 가운데를 유지하는 모습이 마치 수행 기사가 나를 모시는 듯하다. 캠리와 같은 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보기 드문 신기한 기능이 있다. 앞차와 가까워지면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데,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회생제동을 걸어 에너지를 모은다. 틈만 나면 어떻게든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려 연비를 개선하려는 모습이 기특하다. 잠시 기능을 꺼봤는데, 스스로 속도를 줄이지 않자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든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하루 시작부터 피로를 절반 이상 줄인 듯해 상쾌하다. 계기판을 확인하니 평균 연비는 1L에 22.4km를 기록했다. 언제나 이처럼 경제적이면서 편하게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로한 연말, 나만의 출근길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2 비즈니스 파트너

오후 1시 미팅 장소로 향하는 길. 업무 처리가 바빠 직접 운전하긴 곤란하다. 동료에게 운전을 맡긴 채 뒷좌석으로 넘어가 업무에 집중했다. 2열은 머리, 무릎, 발 공간 모두 넉넉하다. 편히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보니 문득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신을 차리고 뒷좌석을 살폈다. 2열 팔걸이에 위치한 전원 단추를 누르면 버튼 조명이 은은히 켜진다. 제법 고급스러운 기교다. 9세대 캠리의 핵심은 뒷좌석인데, 무려 전동으로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럭셔리 대형 세단에나 있던 기능을 이제는 중형 패밀리 세단에서 누릴 수 있다. 조절 범위가 넓진 않지만 제법 편하다. 크고 아늑한 시트에 파묻혀 몸을 기대니 눈이 스르륵 감긴다. 파노라마 선루프와 옆, 뒤 창문 햇빛가리개를 모두 닫으면 아늑한 개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 정도면 비즈니스 세단으로도 손색없다. 전동 기능이 들어가면서 폴딩 기능이 빠졌지만(시승차인 XLE 프리미엄 트림과 달리 XLE 트림은 2열 전동 시트 대신 폴딩 기능을 넣는다), 트렁크 크기는 이미 충분히 크다. 업무를 위한 골프가방 세트 정도는 거뜬히 들어간다.

업무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엔 직접 스티어링휠을 잡았다. 출퇴근 시간대가 아닌 서울 시내는 비교적 한산하다. 뻥 뚫린 강변북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도중 요철 지대를 만났다. 최근 급격한 온도차와 폭설 때문에 도로 상태가 말이 아니다. 그런데 웬걸, 눈에 보이는 노면 상태와 달리 내 몸은 편안하다. 운전자에겐 최소한 정보만 전할 뿐, 나머지 불쾌한 진동은 타이어와 서스펜션, 시트가 나눠 먹는다. 전작에서 약점으로 꼽던 엔진 진동도 덜었다. 4포인트 엔진 마운트 배치를 개선하고, 경량화 타이밍 체인을 사용해 차 안으로 들이치는 엔진 소음과 진동을 줄였다. 또, 전기모터 역할을 늘려 가속에 필요한 엔진회전수를 낮췄다. 성능과 연비를 동시에 높인 비결이다.

#3 와인딩 머신

업무를 마치니 오후 5시다.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애매하다. 캠리의 달리기 실력도 확인할 겸 스포츠 모드를 넣고 서울 인근 구불구불한 산길로 겁 없이 뛰어들었다. 앞바퀴에 실린 무게를 느끼며 코너 중심으로 거세게 몰았다. 그런데 웬걸,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속도를 높여봐도 차체 앞코가 날카롭게 방향을 틀며 돌아나간다. 태생적으로 앞머리가 무거운 앞바퀴굴림 세단이지만 마치 잘 조율한 사륜구동 스포츠 세단을 타는 기분이다. 도로 이음매를 지날 땐 차가 붕 뜨는데, 착지할 때 자세를 되찾는 안정감은 정녕 5000만원대 패밀리 세단이 맞나 싶다. 플랫폼은 전 세대와 같은 TGNA를 썼지만, 차체 중간(정확히는 1열과 2열 사이 하부)에 브래킷을 추가해 안정성을 높인 덕분이다. 캠리를 재밌게 탈 수 있다니!

고성능 자동차라고 부를 만한 힘은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서 알뜰살뜰 힘을 낸다. 186마력 2.5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엔진회전수가 6000rpm까지 치솟는다. 순수 엔진 힘으로만 달렸다면 실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캠리 하이브리드는 엔진과 전기모터, 그리고 변속기 사이 궁합이 좋다. 토요타 e-CVT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가속 페달에 힘을 주는 만큼 실시간으로 파워 게이지가 바뀐다. 발을 떼면 엔진회전수가 뚝 떨어지고, 다시 밟으면 순식간에 치솟는다. ‘철컥철컥’ 단 수를 쌓아 올리는 정통적인 다단화 변속기와는 또 다른 재미다. 심지어 스티어링휠 뒤편에는 패들시프트도 있다. 가상으로 단수를 나눠 엔진회전수를 조절한다. 구성이 자연스럽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e-CVT 특유의 반응 속도와 패들시프트를 조작하는 손맛 덕분에 운전하는 재미가 살아난다.

브레이크 반응도 썩 마음에 든다. 예전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꿀렁거리는 불쾌한 감각이 있었다. 회생제동 시스템과 실제 브레이크 제동 사이 감각이 달라 발생한 현상이다. 그러나 요즘은 걱정 없다. 자동차 제조사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다. 9세대 캠리는 브레이크 시스템에 ‘액티브 하이드롤릭 부스터-G(AHB-G)’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충분한 제동력을 위해 별도로 고성능 펌프를 달아 회생제동과 유압 제동력을 적절히 나눈다. 속도에 상관없이 부드럽게 멈추고, 회생제동까지 알뜰하게 챙긴다. 긴 굽잇길을 내려오는 동안 배터리가 가득 찼다. 그런데, 구태여 드라이브 모드를 다시 에코로 바꾸고 싶지 않다. 스포츠 모드로 산길을 누볐는데도 연비는 두 자릿수에서 떨어질 기미가 없었으니까.

#4 데이트 드라이브

오후 7시. 업무를 마친 연인을 태우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오늘의 마지막 장소는 휘황찬란한 여의도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한강공원이다. “오늘은 또 무슨 차에요? 캠리? 미국에선 국민차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고급스럽네요!” 차알못인데도 누구보다 다양한 차를 접한 그녀의 첫 마디다. 푹신하고 보드라운 하얀 시트가 여간 마음에 들었나 보다. “가죽이 부드러워요. 시트도 몸을 꼭 감싸는 느낌이 포근하네요. 캠리 좋네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무선 애플 카플레이로 목적지를 설정한 뒤, 브루노 마스와 로제가 함께 부른 를 들으며 서울의 야경이 둘러싼 강변북로를 달렸다. 피로를 잊고 신나게 노래 부르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나의 하루, 아니 1년 피로가 싹 가신다.

목적지에 도착해 주차장을 나서다, 문득 뒤를 돌아섰다. LED 가로등 아래 금빛 캠리가 서울의 야경을 머금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위해 달려준 자동차를 이제야 바라봤다. 어쩌면 캠리는 우리에게 이런 존재일지 모른다. 화려하거나 탐나는 존재는 아니지만, 늘 내 곁에 있는 자동차. 당연히 그 자리에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동차. 북미 시장에서 캠리는 ‘한번 사면 10년은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하다. 무난한 만큼 불편함이 없고 품질에 정평이 난 토요타이기 때문이다. 9세대로 진화한 캠리는 내 소중한 가족의 이동 수단에 더해 비즈니스 세단과 펀카다운 면모까지 챙겼다. 캠리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이 차올랐다.

권지용 사진 이영석

이 콘텐츠가 마음에 드셨다면?
이런 콘텐츠는 어때요?

최근에 본 콘텐츠와 구독한
채널을 분석하여 관련있는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더 많은 콘텐츠를 보려면?

채널탭에서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