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홉 그릇의 아이[육아에 바나나]

@semo

자정이 지난 늦은 밤, 첫째 뉴뉴가 기침을 하며 잠에 들지 못했다. 코가 막혀 숨쉬기가 어려운 듯도 하고, 잠자리가 불편해 보였다. 울음소리가 꽤 오래 끊이지 않고 뒤척이던 밤. 아이는 구토를 했다. 종종 콧물이 심해져 가래가 끼면 구토를 한 뒤 편안해했다. 이번에도 그런 건 줄 알았다. 새벽 3시, 아이가 끊임없이 울며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직감했다. 남편은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남편의 결정을 기다리면서 나는 병원에 갈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울면서 “속이 까칠까칠해. 불편해. 병원, 병원”을 외쳤고 남편은 그제야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둘째 또민이는 어수선한 새벽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고, 남편과 뉴뉴는 새벽 4시 반에 응급실로 출발했다. 근처에 소아응급실이 있단 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엄마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응급실을 뉴뉴는 27개월에 가보는구나. 나는 5개월 둘째와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 뉴뉴의 기침 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응급실에서 의사는 뉴뉴에게 아토피가 있는지, 비염이 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수액을 맞으며 산소 치료를 3회째 했을 때에야 뉴뉴는 비로소 편안해졌다. 남편도, 뉴뉴도, 나도 모두 그렇게 밤을 꼬박 새었다.

의사는 아이에게서 천식으로 보이는 기침 소리를 들었고, 천식에 사용하는 약이 잘 듣는 걸 보니 천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려서 진단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아토피는 알레르기 비염, 그리고 천식으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질환이었다. 아토피와 비염이 있기 때문에 천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아이는 다행히 아침이 되자 식욕이 도는지 음식을 찾았다. 아빠에게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사오라고 혼자 병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단다. 병원 갈 때 주섬주섬 챙긴 짐 가방에 아이 간식을 넣은 게 있어 편의점 간식을 먹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아이는 아침을 굶고 챙겨준 쌀과자로 대충 요기를 한 뒤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병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퇴원 일정이 결정되는 대로 추가로 짐을 가져가려고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간 응급실에서는 오전에 퇴원하라고 했지만, 그다음 회진 때는 오후 퇴원을, 그다음 회진 때에는 2박3일 입원을 권유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마음은 어려웠고, 병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엄마 여기 심심해요. 배고파요! 먹을 것도 없어! 엄마한테 갈 거야.”라고 말하는 뉴뉴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병원 밥이 입맛에 안 맞았는지 잘 먹지 못하고는 계속 배고파했다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캐리어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복도에서부터 들리는 격앙된 아이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아이는 흥분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하면서 떼를 쓰고 있었다. 평소에 차분하면서도 종알거리는 새소리 같던 아이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나중에 복약지도서를 읽어보니 흥분과 신경과민이 부작용인 약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 듯했다. 보호자도 한 명만 병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엄마조차 아이를 보려면 복도에서 기다려야 했다. 복도로 나온 아이와 남편은 반나절 만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전쟁통에서 나온 것 같았다. 미열이 있어 바지를 벗은 상태로 아빠 품에 안겨 배고프다는 아이를 보니 머리가 복잡했다. 남편은 집에 가서 쉬는 게 회복에 더 좋지 않겠냐고 했고, 나는 함부로 결정하기가 무서웠다.

아이는 챙겨다 준 배숙을 허겁지겁 퍼먹고 나와서는 유아차에 누워 있는 동생에게 챙겨온 자기 옷을 덮어줬다. 병원에서 아빠에게는 동생이 보고 싶다고도 했단다. 몇 시간 전까지는 숨쉬기도 어려워 헐떡였으면서 동생을 만나자마자 손을 꼭 잡고 이마 뽀뽀를 하고 옷을 덮어주다니 기특하고 고마웠다. 오후 회진을 도는 담당 선생님에게 아이 아빠는 이른 퇴원을 물었고, 선생님은 천식이라면 밤에 심해지기 때문에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혹시 흡입 치료가 가능한 네뷸라이저가 집에 있다면 그걸 해주면 괜찮을 거라고 덧붙였다. 남편과 나는 약국에서 바로 네뷸라이저 기계를 살 수 있으면 퇴원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병원에 남기로 했다. 아이는 병원을 무척 답답해했다. 병원 복도로만 나오면 집에 가겠다고 링겔대를 끌고 “도망쳐!”를 외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둘째를 데리고 근처 큰 약국에 갔는데 거기에는 네뷸라이저가 없었다. 네뷸라이저를 약국에서 구매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했다. 가장 빠른 게 쿠팡이나 네이버 정도고, 그렇게 되면 그날 밤에는 기계를 사용할 수 없었다. 병원에 올라와보니 남편은 병실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나는 잠시 주차장에 내려간 김에 다른 약국을 찾아봤다. 먼저 간 약국도 컸지만 그 반대쪽에는 더 큰 약국이 있었다. 비염에 좋다는 약이나 나잘 스프레이, 그리고 네뷸라이저까지 찾던 모든 게 그 약국에 있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 약국엔 다 있네요!”하고 양손 가득 약국 봉투를 들고 나왔다. 집 근처에 소아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있다는 것과 대형 약국이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 될 줄이야. 그리고 아토피와 비염이 이렇게 무서운 병일 줄이야.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모르고 살았을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지루한 퇴원 수속 동안 여전히 흥분 상태인 뉴뉴를 달래면서 남편과 나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만 이틀을 한숨도 못 잔 남편과 둘째 수유 시간이 다가와 초조해진 나, 병원이 답답한 뉴뉴까지 모두가 고생 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만 형아를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혹시 몰라 언제든 새벽에 병원으로 출발할 수 있게 캐리어를 꺼내두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남편과 병원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던 뉴뉴는 침실로 들어가자마자 걱정이 무색하게 열 시간을 미동도 없이 푹 잤다. 아침에 일어나 뉴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메뉴인 아보카도 연어 김밥을 싸서 배불리 먹이고, 병실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소방차 퍼즐에 꿀벌 책까지 읽어주니 아이도 다시 편안한지 예쁘고 반질반질한 아기새 같은 모습이 되었다.

최근에 동생에게 질투를 시작해서 걱정이었는데, 병원에 다녀오더니 동생이 보고 싶었다며 실컷 놀던 중 대뜸 동생에게 뽀뽀를 하고 오는 우리 뉴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다가 잠자고 일어나서는 서로 잠은 좀 잤냐며 묻는 우리 부부. 어쩐지 엎치락뒤치락 하며 떼굴떼굴 뭉쳐지는 게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같다. 아이들이 곁에서 새근새근 숨쉬어 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차분하게 밥을 먹고 책을 읽어주는 하루가 얼마나 바랄 것이 없이 행복한 생활인지 깨닫게 된 천년 같은 하루였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드는 그런 날이기도 했다.

이틀 뒤 검사 결과를 받으니 바이러스가 있긴 했지만 모세 기관지염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었고, 천식의 기미도 더는 안 보인다고 했다. 다만, 첫 번째 천식 이벤트였을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대신 의사는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

“저혈당이 꽤 심했어요.”

케톤 수치가 높았는데, 구토 한 번으로 나올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며 평소에 먹는 양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뉴뉴는 돌부터 밥을 두 그릇씩 먹는 아이였는데 최근에는 혼자 먹기 시작하면서 전처럼 많이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다른 아이들처럼 적당히 먹는 시기인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몸무게가 꽤 오래 늘지 않았던 걸 보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배가 많이 고팠던 게 아닐까 싶다. 더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 밥과 간식을 합쳐 총 아홉 그릇 정도는 먹어줘야 배가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뉴뉴가 좋아하는 간식인 과자와 코코넛워터, 호두, 블루베리를 잔뜩 주문했다. 배고파서 아파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챙겨 먹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부터 나의 미션은 ‘아이 공복 없애기’다. 우리 아이에게 아무래도 공복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100kg에 달하는 아버지의 피를 받았다는 걸 명심하기로 한다. 아이의 적정 섭취량을 응급실에서 알고 싶진 않았다. 그제야 조이던 마음이 풀어졌다.

* 글쓴이 - 보배

에세이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를 쓰고, 공저 프로젝트로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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