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는 70대가 있습니다. 평일에는 외출할 일이 거의 없어도 예배나 법회, 미사가 있는 날만큼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뜹니다. 가족은 신앙심이 깊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천국과 극락을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믿음은 종교생활을 이어 가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종교 모임에 나가는 노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집에 혼자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다”, “내가 안 가면 찾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 가야 사람답게 사는 기분이 든다”는 말입니다. 요즘 70대가 종교생활을 놓지 못하는 숨은 이유는 구원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닙니다. 바로 사라져 가는 소속감과 자신의 자리를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70대가 되면 사회에서 불러 주는 이름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직장에서는 이미 퇴직했고, 자녀는 각자의 가정을 꾸렸으며, 손주도 자라면 예전만큼 자주 찾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과장님과 사장님, 엄마와 아빠, 동네 회장님처럼 역할을 나타내는 호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누구의 부모나 병원 환자, 복지관 이용자라는 이름만 남기도 합니다. 이때 종교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집사님과 보살님, 교우님처럼 자신을 불러 줍니다. 생일을 기억해 주고, 며칠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묻습니다. 작은 봉사라도 맡으면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생깁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어 합니다. 종교생활은 그 마음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종교 모임은 흐트러진 하루에 일정한 박자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퇴직하고 배우자까지 먼저 떠난 뒤에는 오늘이 월요일인지 목요일인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고, 식사를 마쳐도 기다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요일에 예배와 법회, 성경 공부나 봉사활동이 있으면 생활이 달라집니다. 전날 옷을 준비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씻고, 대중교통을 타고 밖으로 나갑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반복은 수면과 식사, 외출 리듬을 붙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내 노인 연구에서도 사회적 지지와 사회활동, 종교활동 참여가 노년기 우울감과 관련된 요인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 종교 자체가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람과 연결되고 정기적으로 움직이는 생활이 마음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 깊은 이유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는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면 부담을 줄까 봐 참습니다. 친구에게 생활비 걱정을 털어놓으면 초라해 보일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한 종교 공동체에서는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와 배우자를 잃은 슬픔, 자녀와의 갈등을 조금 더 편하게 꺼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없이 들어 주고, 누군가는 반찬을 가져오며, 아픈 날에는 함께 기도해 줍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혼자 감당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70대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정답이 아닙니다. “당신이 보이지 않아 걱정했다”는 말 한마디일 때가 많습니다. 종교생활은 바로 그 말을 들을 가능성이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종교생활이 언제나 따뜻한 울타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금과 기부를 형편 이상으로 요구하거나, 아픈 사람에게 치료 대신 기도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곳은 경계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말을 의심하지 못하게 하고 가족과의 관계를 끊도록 유도하거나, 봉사라는 이름으로 노인의 시간과 돈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로울수록 자신을 반겨 주는 공동체에 쉽게 의존할 수 있으므로 더 조심해야 합니다. 건강한 종교 모임은 개인의 형편을 존중하고, 병원 치료와 가족관계를 방해하지 않으며, 참여하지 못한 날에도 죄책감을 주지 않습니다. 종교생활을 이어 가더라도 통장과 신분증, 부동산과 관련된 결정은 누구에게도 서둘러 맡겨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마음을 지지해야지, 판단할 권리까지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요즘 70대가 종교생활을 이어 가는 숨은 이유는 결국 죽은 뒤의 구원만큼이나 살아 있는 오늘의 자리를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날에 갈 곳이 있고,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있으며, 내가 맡은 작은 역할이 있다는 사실은 노년을 단단하게 붙잡아 줍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이 원리는 같습니다. 복지관과 도서관, 산책 모임이나 자원봉사처럼 정기적으로 나가고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고 느껴진다면 사람을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내가 꾸준히 나갈 수 있는 곳 하나를 만들어 보십시오. 지금 이어 놓은 작은 인연과 일정 하나가 10년 뒤에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내 이름과 역할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