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노상현의 케미가 살린 2024년식 청춘물, '대도시의 사랑법'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2024. 9. 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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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10월에 찾아온다. 같은 원작을 가진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에 몇 년 혹은 몇십 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져 나오는 것과 다르게 '대도시의 사랑법'은 한 달이 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공개해 이목을 끈다. 형식의 차이는 있으나 같은 인물을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동 시기에 관람하게 되는 셈이다. 10월 1일에 개봉하는 영화가 먼저 베일을 벗었고, 모처럼 주목할 만한 한국 청춘 영화의 등장이어서 반갑다.  
 
원작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은 2019 젊은 작가 대상, 2021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화제작이다. 네 개의 중단편을 연작 소설 형태로 엮어 게이 남성인 주인공이 겪는 사랑과 이별을 청춘 세대의 이야기로 확장했다. 한국 사회의 소수자 이야기를 특유의 유머 감각과 솔직담백한 문체로 풀어내 퀴어 문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네 개의 연작 소설 중에서 첫 번째 단편 '재희'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게이 남성인 주인공 '나'가 대학 동기 재희와 함께 보낸 20대 시절을 추억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나'에게 흥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흥수와 재희의 만남과 동거, 그들의 우정과 각자의 연애를 유쾌한 터치로 보여준다. 임수정, 김래원 주연의 청춘 영화 '…ing'(2003)로 데뷔해 미스터리 스릴러 '미씽: 사라진 여자'(2016), 범죄 코미디 '탐정: 리턴즈'(2018) 등 다양한 장르를 연출한 이언희 감독의 노련한 연출이 빛을 발한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화의 관건은 단편 소설 원작을 장편 영화로 어떻게 옮기느냐였을 것이다. 촘촘한 서사로 꾸려진 원작이긴 해도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끌어가려면 분량이든 이야기든 추가해야 하는 부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새로운 이야기를 무리하게 붙이는 모험 대신에 두 주인공의 서사를 꼼꼼하게 채우는 세공법을 택한다. 이언희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과 감각적인 영상, 여기에 '웃기는' 상황과 대사가 어우러져 영화 보는 재미를 유발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 세대에 맞춤한 청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근래에 한국 대중 영화에서 청춘, 로맨스 영화의 존재감은 미약하기 그지없다. 강하늘, 정소민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30일'(2023)이 유일하게 200만 명을 동원하며 체면을 세웠다. 관객 변화의 흐름에 따라 로맨틱 코미디를 포함한 청춘 로맨스 장르는 열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애니메이션이 강세인 일본도 작가주의 감독인 미야케 쇼의 영화들과 '썸머 필름을 타고!'(2022) 등 눈에 띄는 청춘 영화 계보가 꾸준히 이어지고, 대만 청춘 영화는 리메이크 등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청춘 로맨스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영화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 넣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면서 사회적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를 담는데 주의를 기울이고, 요동치는 청춘의 일상과 성장을 유쾌하게 그러나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낸다. 청춘 시기를 통과한 이들이라면 젊은 시절 흑역사가 마냥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그 시절의 무수한 관계들이 지금의 나를 성장시키고 단련시켰음을 이 영화가 확인해 줄 것이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원작을 충실하게 옮긴 점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이언희 감독은 산부인과 에피소드를 비롯해 '나'와 재희의 관계가 틀어지는 결정적 순간과 결혼식 장면 등 원작의 주요 장면을 영화적으로 임팩트 있게 풀었다.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폭력을 전면에 드러내고, 재희의 연애사를 수정해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겪는 문제를 끌어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중 영화라는 점을 인식한 탓인지 교과서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도 하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급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나 신파로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고 유쾌한 톤 앤 매너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영화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연애 커플보다 더 진한 감정을 나누는 동거 커플을 연기한 김고은과 노상현은 청춘 영화의 남녀 주인공다운 매력을 유감없이 펼친다. 이 영화에선 나날이 연기력이 진화하는 12년 차 배우 김고은의 매력이 장면마다 폭발한다. 김고은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된 원작에서 드러날 수 없었던 자유분방한 재희의 내면까지 속 시원히 끄집어내 보여준다. 데뷔작 '은교'의 은교,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 '유미의 세포들'의 유미, '파묘'의 이화림에 이어 '대도시의 사랑법'의 재희도 김고은의 인생 캐릭터로 꼽기에 손색없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애플TV+드라마 '파친코'로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노상현은 이번 영화 데뷔작에서 자신의 매력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배우가 캐릭터를 위해 열정을 쏟아붓고, 매 순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노상현의 매력을 큰 스크린에서 제대로 확인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밖에도 오동민, 이상이, 곽동연, 주종혁, 이유진 등 남자 배우들이 적재적소에 등장해 영화의 호감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이들이 놀람과 설렘을 주는 타이밍이 기막히다. 

10월 극장가와 연예계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술렁일 조짐이다. 영화 개봉에 이어 21일에는 남윤수 주연의 8부작 드라마가 티빙에서 공개 예정이다. 본격적인 가을을 맞아 청춘 로맨스를 찾는 이들에게 영화와 드라마로 연이어 찾아오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여러 감독이 원작 소설과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영상으로 빚어냈는지 즐겁게 지켜볼 일만 남았다. 일단 영화는 완성도와 재미를 갖추고 관객의 사랑을 받을 채비를 마쳤다. 이제 관객이 이 영화를 사랑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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