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의 전력 문제, 원전만이 답인가
챗GPT에 질문 하나를 던지는 데 드는 전력은 구글 검색의 10배에 달한다. 인공지능(AI)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전기는 더 이상 산업의 연료가 아니라 문명의 산소가 됐다. 글로벌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이 한국에 데이터센터 투자를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수도권 전력 수요는 이미 공급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 이재명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확정한 명분도 바로 이것이었다.

수요를 줄이는 것도 공급을 늘리는 것만큼 효과적이다.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비효율적 데이터센터에는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아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미 이를 법제화했다. 데이터센터를 수도권에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서남해안과 남부 지방으로 분산 유치하는 것도 전력 수급과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다.
중기적으로는 전력 직접구매계약(PPA)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은 모두 재생에너지 100% 조달을 선언한 기업들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직접 조달하지 못하는 것은 제도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PPA 제도가 갖춰지면 정부 예산 없이도 민간 투자가 재생에너지 시장으로 쏟아진다.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근본적 해법이다. 몽골 고비 사막의 방대한 재생에너지를 한국·일본·중국과 연결하면 특정 지역의 날씨 변수를 서로 보완해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 에너지 외교를 국가 전략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
정부가 신규 원전에 쏟으려는 수십조 원을 이 단계적 해법에 투자한다면, 15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AI 시대의 전력 위기는 실재한다. 그러나 위기를 핑계로 가장 위험한 선택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하고, 더 분산된 에너지 체계로 가는 길은 이미 열려 있다. 열려 있지 않은 것은 정치적 의지뿐이다.
에너지는 권력이 아니다. AI 시대의 에너지는 특정 지역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자원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술 진보를 위한, 정의로운 분배의 대상이어야 한다. 지역의 자연과 상생하는 분산형 순환 구조가 정착될 때, 기술은 독점의 수단이 아니라 공동 번영의 기반이 된다. 그것이 미래 문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다.
복진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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