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사회'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취임…"빈자·여성 돌볼 것"
재생에너지 전환 등 前정부 정책 계승…'마초문화' 체질 개선 관심사
지지자들, 스페인어 여성명사 '대통령'인 "쁘레시덴따" 외치며 축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멕시코에서 1824년 연방정부 수립을 규정한 헌법 제정 후 200년 만에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2)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취임식을 하고 6년 임기를 시작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이날 오전 멕시코시티에 있는 연방 하원 의사당에서 헌법상 대통령직 이양을 의미하는 어깨띠를 넘겨받는 의식을 진행했다.
이피헤니아 마르티네스 하원 의장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깨띠를 받아 셰인바움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한반도(22만㎢) 9배가량 면적(197만㎢)에 1억 3천만명이 살고 있는 멕시코의 국가수반이 된 그는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가난한 사람을 먼저 돌본다는 우리 인본주의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며 "멕시코는 이제 변화, 여성, 정의를 위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또 "신자유주의 신화는 무너졌고, 우리는 변혁을 통해 더 융성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멕시코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지지자들은 "쁘레시덴따"(Presidenta)를 외치며 셰인바움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스페인어에서 대통령을 뜻하는 남성 명사는 'Presidente'(쁘레시덴떼)이고. 여성 명사 '대통령'은 'Presidenta'로 표기한다.
이날 취임식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브라질)·구스타보 페트로(콜롬비아)·가브리엘 보리치(칠레)·베르나르도 아레발로(과테말라)·미겔 디아스카넬(쿠바) 등 남미 주변국 정상과 미국 퍼스트레이디인 질 바이든 여사 등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축 특사로 자리했다.
멕시코 정부는 별도 보도자료에서 105개국 인사가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입국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대선에서 경쟁자를 제치고 압승을 거둔 셰인바움 대통령은 멕시코시티 시장(2018∼2023년을 지낸 엘리트 좌파 정치인이다.
그의 부모는 리투아니아·불가리아 유대계 혈통으로, 1960년대 노동 및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시티 태생인 셰인바움 대통령은 중남미 최고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멕시코국립자치대(UNAM·우남)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공부했다. 그간 많은 멕시코 대통령과는 달리 모국어인 스페인어 외에 영어에도 능통하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셰인바움은 2000년 멕시코시티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 그를 이 자리에 천거한 건 당시 멕시코시티 시장이었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전날 퇴임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을 '정치적 후견인'으로 여기고 있다. 2011년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좌파 정당인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을 창당할 때도 함께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세계 최대 스페인어권 국가이자 미국 최대 무역 파트너인 멕시코에서 전임자 유산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예컨대 미국과의 외교 쟁점 중 하나인 이민자 문제의 경우 중남미 국가들의 직접 지원을 통한 이주 동인 최소화 및 멕시코 내 일시 취업 비자 확대 등 온건한 정책 추진을 약속했다.
최저임금 지속 인상, 노령연금 지급 연령 하향(65→60세 이상), 공공 의료서비스 확충,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가속, 공기업 역량 강화 등도 주요 공약 중 하나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또 가부장적 '마초 문화권'의 그림자로 꼽히는 여성 상대 폭력 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멕시코 당국은 성인 여성 10명 중 6∼7명이 다양한 형태의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멕시코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보도했다.
그는 이미 당선인 시절 국립여성연구소와 멕시코 과학 기관을 정부 부처로 승격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내놔, 비판자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부처 장관은 남녀 동수로 임명됐다. 대통령실 내 주요 보좌진에도 여성이 대거 진출했다.
여대야소 의회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된 셰인바움 대통령의 과제는, 역설적으로 퇴임 직전 지지율 70%에 육박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의 유산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특히 법조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판사 직선제, 2026년 이행사항 검토를 앞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심화한 카르텔 폭력과 살인 범죄, 농촌 지역 여성들의 남성에 의한 학대 피해 등은 대체로 전 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거나 전 정부 정책에서 직·간접적으로 비롯된 것이어서, 셰인바움 정부에서 어떤 대안을 도출할지 관심사로 꼽힌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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