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에 묻은 흙까지 닦아서…세상에 저런 유격수는 없다” 중계팀도 감탄한 김하성의 수비력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공식 SNS

중계석을 빵 터지게 만든 장면

이틀 전이다. 그러니까 우리 시간 17일 경기다. 애틀랜타가 워싱턴과 (원정) 더블헤더를 치렀다.

어썸 킴은 1차전에서 9이닝을 다 뛰었다. 6번 타자(유격수)로 나가 2안타 1볼넷으로 득점 2개를 올렸다. (ATL 6-3 승리)

덕분에 2차전에는 ‘반차’가 주어졌다. 선발에서 빠져 벤치에서 쉴 수 있었다. 하지만 휴식은 길지 않았다. 0-0이던 7회에 다시 감독이 찾는다. 얼떨결에 대타로 나가, 3구 삼진을 당했다.

돌아선 수비에는 글러브를 껴야 했다. 다시 유격수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도 똑같다. 옛말 틀리는 법 없다. ‘바뀐 수비수에게 공 간다.’

선발 크리스 세일의 초구는 체인지업이다. 86마일(138㎞) 짜리가 먼 쪽으로 휘어진다. 타자 조시 벨이 여기에 걸렸다. 어정쩡한 스윙이지만, 타구는 제법 날카롭다. 출구 속도 79마일(127㎞), 발사각도가 10도의 라인드라이브다.

잘하면 내야를 빠져나갈 것 같다. 하지만 방향을 잘못 택했다. 하필이면 방금 출근한 유격수 정면으로 향한다. 짧은 바운드로 잡힌다. 그리고 1루로 정확한 배송이 이뤄진다. 간단히 아웃 1개가 완성된다.

그런데 애틀랜타 측의 중계석이 빵 터진다. 느린 화면 속에서 뭔가를 찾아낸 것이다.

“보셨어요? 저 장면? 하성 킴이 공을 잡더니, 쓱~ 한번 살펴보는군요. 아마 방금 땅에 튀면서 흙이 묻었겠죠? 그걸 유니폼에 슬쩍 닦아낸 다음에 1루수에게 던지네요. 이런 건, 정말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캐스터도 맞장구친다.

“세상에, 믿기 힘든 마음 씀씀이군요. 혹시나 맷 올슨(1루수)의 골드 글러브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 같아요.” (올슨은 오클랜드 시절인 2018년과 2019년에 아메리칸 리그 1루수 부문 골글 2회 수상자다.)

타구를 잡은 뒤 공에 묻은 흙을 확인하는 장면. MLB-TV 중계화면

ESPN 톱 10에도 뽑힌 맨손 수비

사실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1차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역시 7회였고, 선두 타자였다. 제이콥 영의 타구는 난이도 최상급이다. 강하고 빨라서가 아니다. 느리고, 애매해서다.

배트에 맞은 공의 속도는 겨우 42마일(67㎞)이다. 그러나 행선지가 오묘하다. 투수를 살짝 비껴간다. 그리고 유격수 쪽으로 데굴데굴 구른다. 보통이라면 내야 안타가 마땅한 상황이다.

그런데 수비가 누군가. 역시 골드 글러브 수상자다. 번개 같이 달려들더니, 맨손으로 공을 낚아챈다. 이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강력한 송구는 1루수 맷 올슨에게 스트라이크로 꽂힌다.

진정한 평가를 위해 타자(주자)의 능력치를 감안해야 한다. 제이콥 영은 상당한 스프린터다. 초당 29.3피트의 달리기 실력을 가졌다. 100미터를 11.19초에 끊는 주력이다. 메이저리그 상위 5%에 해당한다. 그런 타자를 딱 한 발 차이로 잡아낸 수비였다.

역시 현지 중계석의 감탄이 터진다.

“맨손으로 잡지 않으면 절대 아웃시킬 수 없는 타구였어요. 게다가 위치가 잔디와 흙의 경계 부분이었거든요. 바운드 예측이 정말 어려웠는데, 완벽한 안정감으로 처리했네요.”

얼마나 고마울까. 투수(호세 수아레스)가 냉큼 다가선다. 그리고 어깨를 감싸며 활짝 웃는다. 특별한 감사함+친한 척이다.

최고의 찬사는 이날 밤에 이뤄졌다. ESPN이 간판 프로그램 ‘스포츠 센터’가 인증했다. 이날 가장 멋진 순간을 꼽는 ‘톱 10’ 장면 중 5위에 선정됐다.

ESPN 스포츠센터 ‘톱 10’ 장면

스니커 감독의 흐뭇함

애틀랜타와 너무 잘 맞는다. 15게임에서 안타 17개를 쳤다. 0.327-0.404-0.794(타율-출루율-장타율)의 기록이다. 홈런과 2루타도 1개씩 포함됐다.

탬파베이 때와 차이가 상당하다. 거기서는 24게임에 0.214-0.321-0.612(타-출-장)에 그쳤다. 현재 시즌 타율은 0.257이다.

흐름도 좋다. 멀티 히트(2안타 이상)를 5차례나 해냈다. 9월 15일(한국시간) 휴스턴 전에서는 3안타를 몰아치기도 했다. 4출루 경기였다. 찬스에 강한 면모도 되찾았다. 타점도 8개나 기록했다.

자연히 승리기여도(fWAR) 면에서도 달라졌다. 레이스 시절은 0.1에 불과했다. 지금은 0.4나 된다. 기간 차이를 감안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수치다.

현재 상태로 풀 시즌을 뛴다고 치자. 그럼 4.0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그의 베스트 시즌은 2022년과 2023년이다. 각각 fWAR 5.0과 5.4를 찍었다.

브레이브스는 이미 가을 야구에서 탈락했다. 70승 83패(0.458)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4위에 처진 상태다. 그러나 그의 가세로 팀이 달라졌다. 최근 5연승이다. 벌써부터 내년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든다.

브라이언 스니커 감독이 누구보다 반긴다.

“그가 온 뒤로 매일 뭔가를 보여주고 있어요. 경기 때마다 좋은 인상을 줍니다. 집중력이 아주 좋고, 장점이 많아요. (타격, 수비, 주루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잘 해내고 있죠. 정말 탄탄한 플레이어죠.”

칭찬이 멈추지 않는다.

“샌디에이고 시절부터 눈여겨봤었죠. 그때도 우리 팀을 상대로 굉장한 경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 선수가 여기, 우리에게로 온 것이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공식 SNS

주류 미디어의 호평

미디어의 반응도 180도 달라졌다. 탬파베이 때는 들락날락이 일상이었다. 걸핏하면 아프고, 걸핏하면 부진했다. 그런 날의 반복이었다. 혹평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적 후에는 호평이 쏟아진다. 대표적으로 MLB.com이 이런 얘기를 한다.

“브레이브스는 이제 센터 라인의 물음표에 명확한 답을 얻었다. 2루수 오지 앨비스와 새로 영입한 김하성이 그 해답이다. 특히 Kim은 좋은 타격감으로 타석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도 비슷하다.

“이 팀의 유격수 자리는 침체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6명의 선수가 이 포지션을 소화했는데,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Kim이 합류 2경기 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면서 곧바로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공격력이 중요하다. 외부적으로 과시할 요소가 분명하다. 그러나 수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그의 경우는 더 그렇다. 핵심을 이루는 센터라인(유격수, 2루수)을 지키기 때문이다.

두 기능은 지극히 유기적이다. 수비가 안 되면, 타석에 영향을 미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한 작업이다.

무척 다행이다. 이사 후에는 일이 술술 풀린다. 배트를 들면 무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글러브를 끼고도 편안하다. 안정감이 넘친다. (원래 잘하는 일이지만.)

그냥 잡는 정도가 아니다. 던지기 전에 공에 묻은 흙까지 털어낼 정도다. 그 정도로 여유롭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하다.

이제 2주 남았다. 마무리만 하면 된다. 그럼 밝은 내년이 보인다. 연장 계약, 플레이어 옵션, FA 결행…. 그런 설레는 단어와 마주 서게 될 것이다.

김하성의 홈 데뷔전에 NFL(풋볼) 애틀랜타 팰컨스의 한국인 키커 구영회가 시구자로 초청됐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공식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