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노란·초록·보라색 없는 이유

이 사진을 보라. 우리가 평소에 보는 달력인데, 휴일은 죄다 빨간색이다. 언론뿐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는 쉬는 날을 당연하듯 ‘빨간날’이라고 부른다. “이번 주 목요일, 빨간날이니까 어디 놀러 가자” 이런 식으로.

파란날, 노란날, 검은날이 아닌 왜 하필 빨간날인지 문득 궁금해 지는데, 마침 유튜브 댓글로 “휴일을 왜 빨간날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요 빨간날, 찾아보니 국어사전이나 에 명시돼 있을 정도로 상당히 공식적인 명칭이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빨간날을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날이라는 뜻으로, 공휴일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적으로도 휴일은 빨간날로 적도록 규정돼 있다. 정부는 매년 6월 말쯤 되면 달력 제작의 기준이 되는 ‘월력요항’이라는 걸 발표한다.

그런데 월력요항의 근거가 되는 천문법 5조3항을 보면 ‘관공서의 공휴일을 적색으로 표기하고, 지방공휴일을 구분하여 표기하는 등 국민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공휴일은 아주 옛날부터 달력에 빨간색이었지만, 이게 법적으로 규정된지는 채 10년이 안 된다.

[한국천문연구원 관계자]

2017년에 처음 신설이 된 걸로 돼있는데 그 앞에는 이제 혼용돼서 예를 들면 공휴일을 오렌지색으로 표현한다든지 표기는 각 달력 제작업체들이 임의로 하다 보니까 좀 국민들이 보기에는 혼동을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국민들이 좀 더 명확하게 인식을 하려면 색상으로 봤을 때는 적색이 가장 눈에 띄니까 적색으로 하지 않았을까라고...

사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어권 국가나 일부 유럽 국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휴일은 red-letter day, 즉 빨간날로 불린다. 그만큼 ‘휴일=빨간날’ 공식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셈.

우선 빨간색이 인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중세시대 서적이나 로마시대 기록물을 보면 빨간색을 중요한 문장을 표시하는 데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왕의 옷은 빨간색, 도장 색으로도 빨간색을 썼다.

[문은배 한국색채학회 논문편집위원장]

색 이름 발달사를 보더라도 무슨 색부터 알아듣냐 그냥 사람이 빨간색부터 먼저 알더라. 에너지 전달력이 세요 확실히 기억도 잘 되고, 빨리 보이고 시인성도 높은 거죠.

빨간색을 향한 인류의 본능은 ‘인쇄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달력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기에는 두 가지 색을 이용해 인쇄하는 ‘2도 인쇄’가 주를 이뤘는데, 일단 가장 많은 기본 글자는 검은색을 이용하고 특별한 날을 표기하는 색상은 빨간색으로 정했다는 것.

과거부터 내려온 교회의 달력인 전례력을 봐도 교회의 중요한 날들은 모두 빨간 글씨로 표기했다.

근데 같은 휴일인데도 토요일은 왜 파란색으로 표기할까?사실 토요일이 휴일이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주5일 근무 제도 도입 이전에 토요일은 오전만 근무하고 오후부터는 쉬는 사실상 반휴무일로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달력 제작 업체들이 인쇄 과정에서 평일도 공휴일도 아닌 토요일을 검은색이나 빨간색과 구분해 표기하려고 파란색을 쓰던 관행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이슬람권의 공휴일은 좀 독특하다. 이슬람 국가들은 통상 일요일에서 목요일까지 근무를 하고, 금요일과 토요일에 쉰다.

이슬람교에서 금요일은 주기도일로, 매우 중요한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날이기 때문. 사실 원래는 목금을 쉬었는데,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위해 타협한 게 금토 휴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 달력을 보면 보통 이렇게 표기돼 있다.

다만 이같은 전통도 점점 바뀌는 추세. 일부 이슬람 국가들은 주말을 서구 사회와 맞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2022년 주말을 금토에서 토일로 바꾼 아랍에미리트(UAE)가 대표적.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다른 나라하고 무역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아예 토요일 일요일로 바꾼 나라가 이제 UAE에요. 세계가 기독교 중심으로 가니까 그렇게 되지 만약에 이슬람이 중심이었으면 금요일이 쉬는 날이었겠지.

매년 빨간날이 총 며칠인지는 온 국민의 관심사이자, 민감한 이슈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공휴일 가운데 이틀을 폐지하자고 제안했는데, 무려 국민의 84%가 반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약 이런 제안이 나오면 국민들의 뭇매를 맞았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아무튼 빨간날인 주말 혹은 다가올 10월 추석 연휴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직장인들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