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과 단둘이 조촐하게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끓여둔 국 하나에 밑반찬 몇 가지면 충분하겠다 싶었는데, 며느리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들이 친구들 만나러 나갔다며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왔다는 말이었다. 미리 연락을 주지 그랬냐고 하니, 괜찮다며 숟가락 하나만 더 놓아 달라고 했다.

끓여둔 국을 데워 상에 올리고 셋이 저녁을 먹었다. 며느리는 별말 없이 잘 먹고 돌아갔다. 다음 날 며느리에게서 저녁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런 초대는 처음이라 이제 며느리와 좀 편해진 건가 싶어 기분 좋게 갔다.

찌개 한 그릇으로 시작된 일
며느리네 집에 도착해 식탁에 앉으니, 며느리가 냉장고에서 찌개 냄비를 꺼내 데우지도 않고 그대로 국그릇에 퍼서 내 앞에 놓았다. 찌개 표면에는 기름이 허옇게 굳어 있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며느리는 곧이어 가스레인지 위에서 갓 끓인 미역국을 자기 그릇에 따로 담았다.
황당했지만 평소에도 웬만한 건 참고 넘기는 성격이라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식은 기름이 입천장에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결국 몇 술 뜨다 숟가락을 내려놓자 며느리가 다 드셔야지 왜 남기시느냐고 물었다. 입맛이 없다고만 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딸에게 털어놓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집에 와서 표정이 어두운 나를 보고 딸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야기했더니 딸이 화를 참지 못하고 며느리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따졌다. 며느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저번에 어머님이 저한테 식은 국 줬잖아요. 요즘 세상에 며느리한테 그렇게 대접해요? 그래서 저도 그대로 돌려드린 거예요."
무슨 소리인지 한참을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일이었다. 옆에서 듣던 아들은 엄마도 잘한 거 없지 않느냐며, 그냥 사과하고 조용히 넘어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아파트 명의를 돌려받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아들 내외를 향한 마음이 그 식은 찌개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평생 싫은 소리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살아온 게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구나 싶었다. 다음 날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해준 아파트는 다시 가져갈 테니 따로 집을 구해 나가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아들과 며느리가 급히 찾아와 싹싹 빌었다. 나는 짧게 한마디만 했다. 늦었다고, 사람 마음도 국처럼 한번 식으면 다시 데우기 어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