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지원비 걷어가는 건 ‘관행’?…1,500만 원 왜 다시 줬나 [취재후]
지난 7월,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예술대학의 한 학과 학생들이 제주도로 학술 답사를 가기 위해 청주공항에 모였습니다.
일부 학생들의 손에는 현금 40여만 원씩 든 봉투가 들려 있었는데요. 이 봉투들은 이 학과의 학과장인 A 교수에게 건네졌습니다.
이 돈은 무슨 돈이었을까요? 학생들은 어떤 이유에서 현금을 봉투에 담아 교수에게 건넸을까요?
■ 학생이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창작 사례비'…다시 걷은 이유는?
올해 상명대 천안캠퍼스 예술대학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비예술인 현장 연계지원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학부생들에게 전시회 등 현장 경험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사업에 선정되면 1년에 걸쳐 최대 1억 5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고, 비용은 두 차례에 걸쳐 교내 산학협력단으로 지급됩니다.
사업비는 운영비와 식비 등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창작 사례비로 구성됩니다. 이 창작사례비는 학생의 계좌로 입금돼 개인적으로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30여 명의 학생들이 이날 A 교수에게 건넨 돈 봉투엔 이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지급받은 창작 사례비를 다시 인출한 현금이 담겨 있던 겁니다.
■ "공금으로 쓰려고"…그런데 왜 계좌이체는 안 되나요?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개인적으로 써야 하는 '창작 사례비'를 다시 A 교수에게 건넸을까요?
돈이 입금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A 교수가 공금으로 식비 등에 지출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다시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받은 돈이 약 1,500만 원입니다.
창작사례비를 지원한 문예위에 따르면, 창작 사례비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인건비 성격이라 개인 계좌로 입금되고 공금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돈입니다.
KBS가 A 교수와 학생들 간 대화 내용을 확인해 보니, A 교수는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계좌 이체도 되느냐'는 한 학생의 질의에 따지며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A 교수: 계좌 이체를 받으려고 하면 대포통장 만들어서 받는 수 밖에 없거든. 어떻게 해야 돼?
B 학생: 너무 너무 그거는...
A 교수: 어떻게 해야 돼.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통장으로 받아야 되잖아. 나도 위험해지면 내가 이걸 왜 해야 돼.
-지난 7월 5일 A 교수-B 학생 간 통화 내용 중
이 같은 사실이 문예위 측에 알려지자, 교수와 학생 간에 수상한 대화도 오갔습니다.
A 교수: 제주도 학술대회도 갔다 왔잖아. 그때도 아침, 점심, 저녁 밥을 먹어야 됐었고. (중략) 그런 밥값을 하기 위해 걷었다…
C 학생: 아... 그렇게 제가 걷었다고 하고 관리는 교수님이 맡으셨다.
A 교수: 응. 교수님께 일단 돈을 맡겨드리고, 돈이 금액이 커서 교수님한테 맡겨놓고 너희가 정산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돼.
C 학생: 제가 정산했다고 하면 되나요?
A 교수: 응. 네가 정산했다고. 알려줄게, 내가. 영수증이 다 있어서…
-지난 4일 A 교수-C 학생 간 통화 내용 중
돈의 사용처를 묻는 학생들에겐 정확한 답을 피했다고 합니다.
"돈의 행방을 물어봤을 때 전시가 끝나고 돌려주겠다고 하시면서,
몇몇 친구들이 영수증 볼 수 있냐고 하면 너무 화를 내셔서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어요."
-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예술대학 소속 D 학생
A 교수는 사업을 신청할 때부터 학생들에게 "해당 사업에는 재학생과 수료생이 함께 참여한다"며 "수료생의 경우 개인 계좌로 들어오는 창작 사례비를 받지 못해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해당 사업은 식비가 지원되지 않으니 돈을 걷어 수료생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공동 경비로 사용할 것"이라고 공지했다고 합니다.
A 교수는 모든 학생의 동의를 얻어 진행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번달 초 문예위에 관련 제보가 들어가면서 사건은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 "졸업 전시회 탈락한 학생들의 모의"?..학부 졸업 예정자들 '성명'
A 교수는 졸업 전시회에 탈락한 일부 학생들이 졸업을 위해 교수를 '압박하려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현금을 걷어간 사실이 교수의 일방적 요구였음을 인정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학부생 성명서는 졸업 예정자 전체의 이름으로 올라갔습니다.
학생들은 오히려 A 교수가 학과장으로서 졸업을 빌미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강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 교수는 학생들이 주장하는 강요와 협박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교수님의 사상 자체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닌 개인적인 행동들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세요.
(그렇지 않은) 졸업 예정자에 대해 '그런 애는 졸업시키면 안 돼. 그런 애는 졸업하기 싫은 것 같다'라는 말씀 자주 하셨고… 또 학과에 이의제기한 학생에게 '이런 식이면 졸업을 못하는 게 아니라 자퇴하게 될 거다'이런 식으로 얘기하셨습니다."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예술대학 소속 E 학생
■ "공금 없이는 사업 집행 어려워…관행이라고 들었다"
A 교수는 지원비를 왜 걷었는지 묻는 취재진에게 "사업비로 집행할 수 없는 항목이 너무 많아서, 공동 경비 없이는 사업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학생 모두의 동의를 얻어 진행한 일이고 사적으로 편취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어디에 얼마가 쓰였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A 교수는 또 "중간 답사를 나오는 문예위 담당자에게 사업비 집행의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예산을 학생들의 인건비로 돌려서 집행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 사례비로 (예산을) 받은 뒤 공동 경비로 걷어서 쓰는 걸 관행인 것처럼 얘기하길래 그렇게 이해하고 걷은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문예위는 "(사업 운영의) 어려움은 알지만 학생들이 사례비로 알아서 쓰도록 하라고 안내했다"고 답했습니다.
또, "사업 선정 초반부터 교수에게 수료생도 참여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A 교수에게 수료생도 재학생과 동일하게 사례비를 받을 수 있다고 충분히 안내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관계 파악을 마친 문예위는 조만간 A 교수를 횡령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관련 조사를 시작한 상명대는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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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연 기자 (ye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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