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과수, ‘시청역 사고’에 인력 3배 투입…‘그날의 기록들’ 공개

강윤서 기자 2024. 10.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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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우정 교통과장·김종혁 실장이 밝힌 급발진 ‘오해와 진실’
“시청역 사고 차량, 제동 페달·제동등·EDR 신뢰성 등 전혀 이상 없어”
“급발진 인정은 0건…고령 운전자 오조작 관련 사회적 합의 필요”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10월14일 오후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전경 ⓒ시사저널 박정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딱딱했다"(시청역 사고 운전자)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시청역 사고. 운전자(68)는 재판에서 또다시 급발진을 주장했다. 제동 페달을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아 시속 107km까지 가속, 인도로 돌진했다는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발표한 '가속 페달 오조작' 감정 결과를 전면 부인하는 주장이다. 이에 재판부는 다음달 국과수 직원을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운전자 과실'에 대한 국과수의 과학적 근거는 무엇일까. 국과수는 사고 당시 처음으로 기존 급발진 감정관 인력의 3배를 투입하며 총력 대응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30~60일이 소요된 감정기간도 10일로 대폭 단축됐다. 김종혁 국과수 차량안전실장은 시사저널에 "시청역 사건의 감정 과정은 전무후무하다"면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감정관들이 영혼을 갈아 넣었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렇게 분석해 얻은 데이터 모두 '페달 오조작'을 가리켰다고 한다. 사고 당시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제동 페달로 착각해 계속 밟았다는 결론이다. 전우정 국과수 교통과장은 "고령 운전자일수록 내가 밟고 있는 게 브레이크라고 믿는 확증 편향적 사고를 하기 쉽다"며 "한 번 그렇게 믿으면 발을 못 뗀다"고 강조했다.

최근 자동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운전자들이 하나같이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면서 '내 차도 제멋대로 질주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심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제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없다. 국과수가 지난 5년간(2020~24년 9월) 감정한 급발진 주장 사고 368건이다. 이 가운데 83.7%(306건)은 '페달 오조작'이 원인이었다. 과연 급발진은 존재할까.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제동 페달로 착각했더라도 사고 당시 바로 잡는 게 정말 어려울까. 시사저널은 10월14일 강원 원주시 국과수 본원을 찾아 급발진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전 과장, 김 실장과의 일문일답이다.

10월14일 오후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교통과에서 전우정 국과수 교통과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지난 7월 시청역 사고를 들여다보자. 당시 국과수의 감정 과정이 '전무후무'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

(김 실장) "시청역 사고 감정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다. 기존 급발진 주장 사고를 감정하는 매뉴얼대로라면 1명의 감정관이 10단계의 감정 시스템을 혼자 진행하는 식이다. 하지만 시청역 건은 10단계를 세 부분으로 나눠 3명의 감정관이 각각 동시에 작업했다. 감정기간도 통상 30일 소요되는데 약 10일 만에 끝났다."

각 감정관들이 사고 차량을 어떻게 분석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김) "사고 발생 다음날 사고 차량이 입고됐다. 감정관 A는 사고 차량의 리콜, 수리 이력 등과 사고 관련 모든 영상들을 검사했다. 감정관 B는 외관 손상 검사부터 전자제어장치 진단, 제동·가속 계동 검사를 진행했다. 감정관 C는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했다. 또 EDR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블랙박스 영상에 담긴 음향을 토대로 스펙트로그램 분석을 했다. 여기에 서울중앙지검 검사들 입회하에 EDR 데이터를 활용한 사고 재연실험도 진행했다. (영상을 보여주며) 좌측이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우측이 EDR 데이터로 재연한 영상인데 두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의문점을 하나씩 짚어보자. 운전자는 "사고 당시 제동 페달이 딱딱해 눌리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이와 관련해 국과수가 분석한 내용과 결과가 궁금하다.

(김) "만약 제동 페달 뒷단에 있는 '진공 배력 장치' 기능이 작동되지 않을 경우 제동 페달이 좀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운전자 주장을 확인해보기 위해) 사고 차량으로 해당 상황을 만들어놓고 실험해봤다. 하지만 이때도 (사고 차량의) 제동 페달에 살짝 힘을 줬더니 눌렸다. 심지어 페달을 1cm만 밟아도 제동등이 매우 잘 들어왔다. 제동력 시험을 했을 때도 아무런 문제없이 정상으로 판정됐다. 즉 '제동 페달이 눌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동등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주장이 잘못됐음을 확인했다."

사고 당시 운전자 차량에 제동등은 어떻게 들어왔었나.

(김) "사고 현장 CCTV 영상과 목격 차량 블랙박스 영상 모두 확보해서 프레임 단위로 분석했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여주며) 처음 지하주차장을 나갈 때 미등이 들어와 있고, 곧바로 제동등, 보조 제동등도 들어온다. 하지만 조선호텔 앞쪽에서 빠져나가고 역주행하는 상황, 갑자기 가속돼 (인도로) 쭉 돌진하는 상황 모두 (제동등이) 전혀 안 들어온다. 그러다가 차량이 보행자용 가드레일을 치고 올라갈 때가 돼서야 보조 제동등이 살짝 들어오는데, 보통 이렇게 충돌이 일어나면 제동 페달 관성에 의해 불이 들어온다."

10월14일 오후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교통과에서 김종혁 국과수 법공학부 교통과 차량안정실장이 급발진 사고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운전자의 신발에서 발견된 가속 페달 자국은 주로 급발진 주장 사고의 근거로 쓰이나.

(전 과장) "운전자의 신발에서 슈마크(Shoe Mark)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나왔다. 신발 바닥 부분에 희미한 문양이 집결됐는데, 페달과 비교해보니 가속 페달 문양과 일치했다. 대부분 사고에서 이런 흔적이 남긴 힘들다. 운전자의 발이 페달에 강하게 눌리는 엄청난 접지력, 그것도 정면에 가까운 충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꽉 눌린 상황에서 순간적인 마찰열이 발생할 때 신발 밑창에 열 변형을 유발하는데, 그 변형이 신발에 흔적으로 남는다."

EDR 결과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일각에선 EDR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김) "EDR 데이터를 뽑으면 사고 이전부터 사고 시점까지의 정보가 전부 보고서 형식으로 나온다. 사고 차량의 보고서를 보면 사고 당시 자동차 속도가 시속 66km에서 107km까지 증가했다. 가속 페달 밟음량 또한 펌프질을 하듯 페달을 밟았다 뗐다를 반복한 형태로 기록돼 있다. 또한 EDR 신뢰성에 대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EDR 분석 외에도)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음향 스펙트로그램 분석도 진행했다. 이는 음향 주파수에서 얻은 엔진음을 엔진 회전수로 바꾼 뒤, 그 결과를 EDR 데이터와 비교하는 작업이다. 두 데이터 역시 상당히 유사하게 나타났다. 사실 이런 분석은 우리나라만 하고 있다. 외국의 국과수나 교통사고 분석 기관들은 EDR 데이터를 100% 신뢰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안 한다."

7월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에서 발생한 역주행 차량 인도 돌진사고 현장에 고인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세지 등이 놓여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국과수 감정 결과 급발진 사례는 0건이라고 했다. 그래도 급발진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전) "전 세계적으로 급발진이 검증된 경우가 없다. 과학(수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급발진은 100% 없다'고 할 수 없지만 확률이 극히 낮다. (차량에) 수많은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ECU(엔진제어장치)가 페달 신호를 잘못 인지할 확률도 천문학적으로 낮은데, 하필 그때 브레이크가 오작동할 확률, 국과수 감정 때는 브레이크가 다시 정상이 될 확률 등을 모두 곱할 순 있다. 하지만 이런 확률을 다 조합해도 급발진 주장 사고 원인은 대부분 '휴먼 에러'다."

급발진 주장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전) "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가운데 페달 오조작 사건은 주로 고령층에 집중됐다(급발진 주장사고 평균 연령 △2020년 61.2세 △2021년 63세 △2022년 62.2세 △2023년 67세 △2024년 63.8세) 이런 점에서 '휴먼 에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제조사들은 오조작 방지 기술을 개발해 차량에 적용하고, 고령 운전자들은 면허 갱신 등을 통해 각각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으로도 '급발진' 이슈보다는 고령층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오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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