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올빼미' 유해진 "연기 인생 첫 왕…'왜 나야?' 물었죠"

조은애 기자 2022. 11. 20.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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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해진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NEW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11월 극장가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다. 인조실록에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 같았다'고 기록된 소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 미스터리에, 밤에만 볼 수 있는 맹인 침술사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는 영화적 설정을 더해 신선한 '팩션'(fact+fiction) 사극 스릴러의 탄생을 알렸다. 주연을 맡은 유해진(52)은 25년 필모그래피 사상 첫 왕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마침내 '올빼미'를 날아오르게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 만난 배우 유해진은 안 감독의 출연 제안을 받은 후 첫 질문이 "왜 나야?"였다고 말했다. "'왜 나를 캐스팅하려고 했을까'가 가장 궁금했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기존에 본 적 없는 왕을 그리고 싶다, 유해진이 연기하는 왕은 다를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저 역시도 '내가 하면 어떤 왕이 나올까' 궁금하고 기대됐죠."

유해진이 연기한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는 병자호란 이후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아들 소현세자(김성철)가 8년 만에 돌아오자 반가운 마음도 잠시, 이유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후 명나라를 따라 자신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하지만, 청나라를 벗으로 삼고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아들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던 중, 건강이 악화된 소현세자가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되고 인조의 불안감은 광기로 변해간다.

"역사 속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극 중의 인조는 독립적인 캐릭터로 생각했어요. '올빼미'는 역사를 그린다기보다 사건을 다룬 스릴러물이니까요. 인조를 연기할 때는 욕망 하나만 보고 갔어요. 그 사람이 가진 권력욕, 이기심 같은 것들인데 인조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움직이거든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지만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관객들은 더 이해하지 못하니까 최대한 제 내면에 인물화하려고 했어요."

광기에 휩싸이는 인조처럼 선 굵은 연기를 앞두고 걱정한 건 평소 이미지와의 괴리 때문이었다. 최근 tvN '삼시세끼' 시리즈, '스페인 하숙'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뽐낸 소탈하고 친근한 매력이 관객들의 몰입을 깰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이에 유해진은 첫 등장 신의 연출까지 바꿔가며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제가 해온 게 게임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아니었지만 코미디 연기를 해왔던 터라 '이런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고민은 있었어요. 왕이라고 나왔는데 웃음이 터지면 어떡해요. 그래서 첫 등장을 바꿨어요. 원래 느닷없이 '짠'하고 등장하기로 했는데 그럼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천천히 관객들에게 스며들 듯 나타나기로 했죠. 그래서 멀찌감치 그림자만 보이다가 카메라가 쑥 들어오는 방식으로 처음 등장했어요."

유해진은 널뛰듯 폭주하는 인조의 감정을 밀도 있는 연기로 풀어냈다. 과거 연극 무대에 섰던 시절의 기억은 인조의 얼굴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올빼미'는 전체적인 이야기도 굵고 배역도 무겁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연극 무대가 생각났어요. 특히 어의 이형익(최무성)과 대화하는 장면을 촬영할 땐 진짜 연극하는 느낌이었어요. 연극적인 에너지로 연기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 안 되는 짧은 거리를 걷더라도 공기의 질감, 걸음걸이마저 달라지죠. 촬영 현장이 마치 무대처럼 느껴진 순간들이 많았고 그런 무게감이 연기에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특히 유해진의 디테일한 열연은 '올빼미'를 보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그는 인조의 날카로운 심리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까지 조절했다. 여기에 눈빛, 목소리, 손끝 하나에도 인조의 감정을 담아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특수 분장은 안 했어요. 주변에서 권유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하는 데 영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요. 저는 원래 사극 아니고서는 분장 잘 안 해요. 왜냐하면 '지금 내 얼굴에 뭘 붙였지, 분장했지' 이런 걸 생각하다보면 미세하게 제약이 생기거든요. 안 그래도 수염을 붙였는데 특수 분장까지 하면 표현을 못할 것 같아서 분장 없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죠. 수염도 원래 더 길게 '얌생이'처럼 하려다가 중간 정도의 길이로 바꿨고요, 혼자 자꾸 한쪽 얼굴 근육만 움직여보고 어눌한 말투를 연습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이번 작품이 유해진에게 남다른 의미인 건, 1997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도전한 왕 역할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달밤'의 넙치, '왕의 남자'의 육갑이, '전우치'의 초랭이, '승리호'의 업동이 등 주로 맡는 배역 이름부터 남달랐던 그가 '올빼미'에선 웃음기를 쏙 뺐다. '유해진의 왕은 다를 것'이라는 안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듯, 유해진은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탄탄한 연기로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왕을 탄생시켰다. 그의 또 다른 인생 캐릭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확실히 왕 역할은 상징적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대통령이랑도 좀 다르죠. 콕 짚어 표현하기 힘든 특별함이 있어요. 촬영할 때도 색다른 기분이 들었어요. 곤룡포 안에 옷을 굉장히 여러 겹 껴입어야 하거든요. 궁중의상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이 오셔서 입혀주시는데 그 사이에 약간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그걸 입고 촐싹거릴 수 없으니까 쉬는 시간에 싱거운 소리도 안 하고 혼자 걷다 들어가곤 했어요. 솔직히 데뷔 때부터 '내가 왕 연기를 해볼 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올까' 혼자 생각한 적은 있는데 이렇게 실제로 올 줄은 몰랐죠. 진선규 씨가 '형이 왕 역할을 해서 좋다, 나도 나중에 형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주변에서도 좋은 반응이 많아 정말 좋고요, 관객들에게 듣고 싶은 얘기는 단순해요. '이 영화 재밌다' 그 말 한 마디죠. 저도 이야기에 잘 섞여있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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