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신상 공개한 ‘류희림 민원사주 의혹’ 신고자들…“정면 승부하겠다”

이수민 2024. 9. 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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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내부 고발한 직원들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스스로 공개했습니다. 지경규 방심위 지상파방송팀 차장, 탁동삼 방심위 명예훼손분쟁조정팀 연구위원,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입니다.

류 위원장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지 아홉 달 만인데, "더는 권익위와 수사기관도 믿을 수 없어 얼굴을 드러내고 정면 승부를 시작한다"며 직접 나선 겁니다.

■비슷한 내용에 오탈자도 같아…"검색하니,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들"

이들은 오늘(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원 사주 의혹'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계기와 신고 과정 등을 밝혔습니다.

사건은 지난해 9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국회에 출석한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은 허위 의혹이 불거진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보도와 이를 인용한 보도들에 대해 "국기 문란 행위"라며, "방심위 등에서 엄중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방심위에 관련 민원이 빗발치듯 들어온 것도 그 이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내용이 비슷한 건 물론, 오탈자까지 똑같은 민원들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지 차장은 "특정인을 중심으로 다량의 민원 내용이 유사한 구조임을 확인했다"며, 류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역임한 보수단체 '미디어연대'의 공동대표인 박 모 씨가 민원을 넣은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민원인들의 관계를 확인한 건 '구글링', 검색을 통해서였습니다.

지 차장은 "류 위원장의 쌍둥이 동생, 그리고 아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을 동료 직원들로부터 들었다"며, "이메일 정보로 구글링을 해본 결과 '사적 이해관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탁 연구위원도 "키워드 조합 등을 통해 류 위원장의 전 직장 동료와 그의 가족들, 류 위원장 동생이 운영하는 단체 소속 직원 등을 파악할 수 있었고 약 20명, 50여 건에 이르는 직접적인 민원인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내부 자정 기대했지만…"직업적 양심으로 두려움 극복"

이들이 처음부터 권익위 신고를 결심한 건 아닙니다.

지 차장은 지난해 9월 27일 내부 자정 효과를 기대하며 사내 게시판에 '류희림 위원장님, 뉴스타파 인터뷰 인용 보도 안건 심의 왜 회피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지 차장은 류 위원장이 부속실장을 통해 해당 게시물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 차장은 아래 사진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현재 류 위원장은 해당 게시물을 본 적 없고 보고 받은 바도 없다고 우기고 있다"며 "하지만 부속실장을 통해 인사위원회 개최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에서 저는 100% 류 위원장이 해당 게시물을 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민원이 그간의 방송 프로그램 민원과는 다른 양상이었고, 앞서 일부 위원에 대해 권익위에서 이해충돌 방지법 위반으로 해촉 조치를 하는 과정이 있던 만큼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를 방관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신고를 결심하게 됐단 겁니다.

지 차장은 "지금까지의 업무 경험상 보지 못했던 결론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민원 신청의 배후에 조직적인 역할이 없다면 이런 현상은 없다고 당시에 생각했다"면서, "사적 이해관계자의 민원에 근거한 과잉 심의로 훼손된 '심의 공신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신고하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탁 연구위원도 "월급을 받아서 가족을 건사하는 직업인으로서 위원장의 비리를 알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넘을 수 있게 해준 건, 심의 기구의 일원으로서 가진 직업적 양심 그리고 동료와 회사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었다"고 전했습니다.

■ "신고했지만 돌아온 건 '셀프 조사'와 '압수수색'"


하지만 권익위는 지난 7월 류 위원장의 이해충돌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이를 방심위로 돌려보냈고, 개인정보 유출 혐의만을 경찰로 이첩했습니다. 이후 경찰의 압수수색도 이어졌습니다.

이들의 법률대리인인 박은선 변호사는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 공익 신고에 대한 처리에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며 "과거 2019년 판례에 비춰 보아도 그 위법성이 크기 때문에 권익위가 제대로 된 처분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지부장은 "방송 심의 시스템의 붕괴, 공익신고 시스템의 붕괴,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신뢰의 붕괴, 이 모든 부조리를 목격하면서 저희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류 위원장, 억울하면 숨지 말고 함께 조사받아야"

자괴감 속에서도 스스로 신상을 공개하기로 한 건, 이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방심위 자체 조사 기일이 기약 없이 흘러가는 지금, 민의로 구성된 국회의 국정감사를 앞둔 지금, 저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국회와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류 위원장에게도 한 마디 남겼습니다. "본인의 말처럼 억울하다면, 더 이상 경찰 조사를 핑계로 민원인을 가장한 가족과 지인들의 뒤에 숨지 말고 나와서 함께 조사를 받아라"라고요.

하지만, 당분간 이 갈등의 양상은 전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진 않는 상황입니다.

국민의힘 미디어법률단은 어제 신원 유출 의혹을 받는 방심위 직원 등을 상대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라며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국민의힘 미디어법률단은 "개인정보 보호는 민주 체제 존속의 문제"라며, "아무리 보도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허위의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들을 제재해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한 대한민국 국민이자 특정 민원인들의 정보까지 외부에 유출한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내려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 과방위에서 야당 단독으로 의결돼 30일 개최 예정인 '민원 사주 의혹 청문회'에도 류희림 위원장은 나오지 않을 거로 보입니다.

류 위원장은 오늘 입장문을 내고 "국회 다수당이라는 수적 우위와 힘의 논리를 앞세운 일방적인 청문회"라며 "이번 청문회는 경찰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된다"고 불출석 이유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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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waterm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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