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검사의 스페셜리스트, 홈인스펙터 인터뷰
목조주택 리모델링,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하라
질병 치료는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하듯, 집도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관찰과 과학적인 추적, 수많은 경험으로 무장한 인스펙터가
나이든 집의 문제를 짚고 거주자의 안녕을 도모한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경력의 홈인스펙터, 김준걸 대표의 사무실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검사 장비들과 그의 전문 분야를 가리키는 인스펙션 자격이 나열되어 있다. 빌더로 시작해 세계 최대 검사 전문가 협회의 최고 전문가 자격에까지 오른 그에게서 인스펙터라는 직무와 리모델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인스펙터라는 직무가 낯선 분들에게소개를 하자면
인스펙터는 그 단어(Inspector) 뜻대로 건축물을 검사하는 것이 일인 사람이다. 조금 더 좁게는 인터나치(InterNACHI)라는 세계 최대 건축 검사 전문가 협회 소속으로 데크, 외장재, 지붕, 골조, 전기, 단열, 방수 등 수많은 분야를 넘나들며 건축물의 모든 것을 검사하는 전문가를 가리킨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2만여 명이 CPI(Certified Professional Inspector) 자격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자기 자랑 같아 민망하지만, 1천회 이상 검사 수행 이력 등 CPI 자격자 중 2%의 최상위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CMI(Certified Master Inspector) 자격도 갖추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자를 찾아내는 사람’으로기억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식으로 하자만 찾는 것은 아니다. 신축을 진행하면서도, 리모델링 전에도 인스펙션을 한다. 신축의 경우에는 공정 단계별로 문제점을 체크하고, 리모델링은 공사 계획에 있어 예산 편성 우선 순위 정리를 위해 진행한다. 미국에서는 감정과는 별개로 주택을 매매하거나 대출을 받을 때도 인스펙터가 활동한다. 그 집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인스펙터는 윤리적 책임이 아주 무겁고 직업적 소명의식도 무척 강한 편이다.
‘감리’와 인스펙션은 구분되는 역할인가
목표에서 완전히 구분된다. 감리는 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건물이 지어질 땅에 맞게, 건축법에 맞게, 허가받은 도면에 맞게 지어졌는지 확인하는 것이 감리다. 허가도면이 곧 품질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고, 또 감리를 본다는 게 건축물 성능 향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스펙션은 건축물이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게 지어지고 있는지 품질을 본다. 물론, 사람마다 ‘품질’의 기준과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가 다를 수 있다.
인스펙터의 ‘우선순위’라는 게 궁금하다
‘구·수·단·미’라는 표현을 강조한다. 구조, 수분, 단열, 미관이다. ‘구조’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누수나 습기, 결로와 같은 ‘수분’ 관계, 에너지 성능과 관련이 깊은 ‘단열’, 마지막이 ‘미관’이다. 물론, 이 단계를 역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구·수·단·미 단계를 한 단계씩 역행할 때마다 비용이 두 배씩 늘어야 ‘문제없이’ 집을 지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처마 비용이 100만원이 든다고 하자. 디자인을 이유로 수분 처리에 영향을 주는 처마를 없애고 싶다는 건축주가 있다. 그런 경우 처마 없이 집을 ‘문제없게’ 짓기 위해서는 4배(미관→단열, 단열→수분)인 400만원(또는 그 가치만큼의 기술력)쯤이 든다. 처마가 처리할 수 있었던 빗물처리나 차양 등의 기능을 대체 수단을 통해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스펙션 과정은 어떻게 되나.
주택 신축을 위한 사전 인스펙션과 리모델링 전 검사는 보통 시공사를 통해 신청이 이뤄진다. 하지만, 일반 단독주택의 하자 검사는 건축주로부터 단독 의뢰가 늘어나는 추세다. 신축을 위한 인스펙션 신청이 들어오면 건축주 대상으로 일주일 정도 교육을 진행한다. 인스펙션의 개념과 건축 과정을 인식하고 있어야 결과를 받아들이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볼 수 있는 것은 다 본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명함에 붙어 있는 수많은 인스펙션 항목은 우리가 체크하는 항목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검사는 한 5~8시간 정도 걸리고, 풀 스펙 보고서는 작성과 검토에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
리모델링은 인스펙션 과정이 다른가
결이 조금 다르다. 리모델링 공사 견적을 내기 전에 현장에 간다. 그리고 살아온 집을 고치는 경우 지금까지 건축주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이사를 와야 하는 건축주라면 어디에서 살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인스펙션을 진행한 후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가능하면 해야 하는 것], [나중에 해도 되지만 지금 같이하면 시공비를 아낄 수 있는 것]으로 목록화해서 의뢰인에 결과를 제공한다. 모든 것을 다 고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리모델링 인스펙션을 할 때는주택을 뜯어봐야 하나
그렇지 않다. 표준검사기법(SOP)이 있어서 비침습적 검사로 진행한다. 인스펙션에 쓰이는 수많은 장비가 ‘어떻게 하면 건물을 훼손하지 않고 문제를 파악할 수 있을까?’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이기도 하다.
목조주택을 인스펙션할 때 어떤 문제가가장 많이 발견되나
욕실 방수 문제가 가장 크고 또 자주 발견된다. 특히 2층 이상의 욕실 바닥은 구조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니까 중요도도 무척 높다. 그다음이 낮게 형성된 기초와 기단부다. 기초를 지면으로부터 너무 낮게 하는 경우 적게는 외장재 오염, 크게는 구조재 손상까지 이어진다.
지붕을 타고 흐르는 물을 처리하는 선홈통 문제도 자주 보인다. 3m당 6㎜ 정도로 경사(구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되지 않아서, 또 낙엽 등으로 막혀 물 빠짐이 좋지 못해서 넘치고 그게 벽체에 대한 누수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닥의 스팬 테이블에서 문제가 발견되기도 한다. 바닥 조이스트 부재를 아예 잘못 선택했거나 길이를 너무 긴 것을 선택했거나, 간격을 너무 넓게 한 경우다. 북미에서는 이렇게 되면 바닥 처짐이 눈에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방통을 시공하니까 그게 눈으로 바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콘크리트 방통과 바닥 사이가 뜨면서 층간 소음이 심해진다. 이 문제는 설계와 구조에 따라 부재를 보강하는 게 아니라,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부재를 선택하는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단열재 압축 문제도 흔하다. 스터드와 스터드 사이에 단열재를 취부하는데, 종종 코너 벽체 등에 스터드를 2중, 3중으로 걸치거나 전기선, 배관이 지나가면서 공간이 좁아져 단열재가 의도치 않게 압축되곤 한다. 이렇게 압축되는 단열재는 상대적으로 단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목조주택의 문제는 우리나라와 다른양상을 보이나
기본적으로 북미는 착공 동수부터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보니 공사 공정과 인력도 세부적으로 나뉜다. 골조 파트에서도 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하는 게 아니라 벽체 전문, 계단 전문, 합판 전문 등이 모두 따로 온다. 그러다 보니 개별적인 시공 품질은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큰 공정 안에서 서로 유기적인 소통이 안 돼 생기는 공사 미스가 종종 보일 때가 있다.
또 북미는 목조건축 역사가 길어 문화재 취급을 받아도 될 정도로 오래된 목조주택이 많다. 북미도 목조건축이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라 오래된 목조주택은 당시의 자재와 기술이 지금의 기준과 맞지 않는 것이 많아 문제가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자가 수리 전통이 긴 미국에서 비전문가인 건축주들이 조금씩 스스로 고치고 덧대며 생기는 문제들도 종종 있다.
목조주택 리모델링 검사를 하다 보면과거 우리나라 목조주택의 문제점들도 보일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당시 빌더들의 잘못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는 어렵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북미식 경량목구조, 즉 ‘선진 건축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검토하고 돌아보려는 과정이 부족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법규나 건축 기술을 인용했지만, 기후가 크게 달랐다. 우리는 미국 동부와 기후가 그나마 비슷하다고 여겨지는데, 한국에 목조기술을 배워서 적용했던 분들은 북미 서부의 빌딩 코드(시공 매뉴얼)를 사용했다. 이는 특히 습한 여름철과 냉방이 겹치며 벽체 수분 관리에 있어서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서부) 기준으로 정확히 지었지만, 그 때문에 외부 기밀성이나 기능성 자재들, 내부 방습층 등의 시공을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반대로 쓰게 된 셈이다. 그때 지어진 주택의 하자들은 자재를 덜 쓰거나 빌더의 기술력이 약해서라기보다는 그런 데서 기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스펙션도 우리나라라는 특수성을반영하나
인스펙션의 많은 부분은 미국에서 정립된 기준을 기반으로 하지만, 한국 주거 문화와 기후를 접목한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인스펙션을 하고 있고 또 지속적으로 연구 및 교류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인스펙션 현장이 있다면
하자로 2년 넘게 고생한 의뢰인이 기억난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려고 했다는 집이었는데, 현장에 가보니 집이 흔들리고 냄새가 났다. 연이은 하자로 어렵게 모신 부모님은 다시 떨어져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건축주의 가족관계도 삐걱거렸다. 대부분 건축주는 자신의 평생 재산으로 집을 짓는 것이니만큼 그 심적 고통도 작지 않았을 것이다. 인스펙션 하면서 완벽히는 아니지만, 지낼 수 있을 만큼 솔루션을 제안했다. 추후 의뢰인으로부터 ‘치유 받았다’며 깊은 감사의 말을 들었다, 그때 인스펙션이라는 일이 단순히 집을 진단하는 것 이상으로 집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현장에서는 ‘김 검사’로불린다고
검사(檢査)를 하는 사람이니 검사라고 불리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법률가인 검사(檢事)가 연상되어 기분이 미묘하다. 그런데 검사라는 두 단어에는 공통으로 검(檢)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니 연관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닐 것 같다(웃음). 대외적으로 대표, 교수, 인스펙터 등등 여러 호칭으로 불리는데 ‘김 검사’라는 호칭이 가장 친근하게 느껴지곤 한다.
‘검사’인 만큼 현장에서는 마냥 환영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스펙터는 역설적인 직역이기도 하다. 인스펙터의 목적은 ‘찾는 것’이다. 큰 사고나 하자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를 많이 찾아내면 직업인으로서 자부심도 느낀다. 하지만, 그 순간 의뢰인은 골치가 아프고, 문제를 찾아낼수록 더 아프다. 의뢰인 머리에는 여러 가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 ‘얼마나 돈이 들어갈까’하고. 어떤 의뢰인은 내가 문제를 지적해주는 게 좋으면서도 겁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시공사가 오히려 인스펙터를 찾기도 한다. 건축주는 비전문가다 보니 시공사의 합리적이고 정확한 시공을 충분히 이해 못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인스펙터가 일종의 방파제나 변호사의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래서 인스펙터는 건축물을 보는 역량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도 무척 중요하다.
인스펙터로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요즘은 우리도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인스펙터라는 직역은 낯선 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스펙터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얄궂은 역할을 한다. 지적할 때마다 비용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건축물이 만드는 긍정적인 힘을 알고, 그런 과정이 건축물뿐 아니라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앞으로 인스펙션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준걸 대표
THE KIM 인스펙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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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신기영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4년 4월호 / Vol.302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