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보라. 우이신설선 개찰구에 설치된 장치인데, 마치 공항 보안검사대 같이 생겼다. 지하철도 금속탐지를 하나 싶지만, 이건 지하철 요금을 태그 없이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태그리스 게이트’라고 한다.
아무튼 뭔가 굉장한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기계일 거 같은데. 유튜브 댓글로 “우이신설선에 교통카드를 안 찍어도 되는 신형 게이트가 생겼다던데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한눈에도 신상으로 보이는 이 기계의 정식 명칭은 ‘비접촉식 개집표기’인데, 말 그대로 접촉하지 않고 대중교통 요금을 결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가리킨다.
이런 상도 받았다니 이거 엄청난 기술을 썼을 거 같지만, 사실 알고보면 무선이어폰 덕에 익숙해진 블루투스 기술이 쓰인 거라고.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매일 지하철이나 버스 탈 때 보는 이런 모양의 결제 단말기는 NFC(Near Field Communication), 즉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로, 인식 범위가 최대 20cm 정도에 불과해서 타고 내릴 때 승객이 교통카드를 일일이 단말기에 갖다 대야 한다.
반면 태그리스 결제는 블루투스를 이용해 10m 내외까지 신호를 인식할 수 있어서 따로 카드를 태그 할 필요 없이 이 사이로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서울시 관계자]
"이제 사전에 카드나 모바일 앱을 꺼내서 멈춰서는 준비 절차가 없기 때문에 영유아를 동반한 승객이나 아니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양손에 무겁게 짐을 들고 계시는 이용객들도 불편함 없이 지하철 탑승이 가능한 게 가장 큰 장점이고요."
이게 진짜 얼마나 편리한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 직접 우이신설선 성신여대역에 나가봤다. 일단 평소 쓰는 모바일 티머니를 확인한 뒤 이렇게 당당하게 게이트를 통과했는데 어라, 결제가 안된다.
알고보니 이걸 쓰려면 모바일 티머니 앱에서 카드를 골라 태그리스 결제 설정을 누른 뒤 앱의 위치 액세스 권한을 허용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태그리스 게이트를 통과해봤는데, 이번엔 초록불과 함께 가볍게 승차 처리가 되었다. 혹시 몰라 열 번 넘게 반복해서 왔다갔다 돌아다녀 봤는데 모두 정확히 인식했다.
근데 앞에서 블루투스가 10m까지 인식을 한다고 했는데, 혹시 결제 설정을 해놓으면 멀리 지나가기만 해도 저절로 결제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서 개찰구 주위를 왔다 갔다 하고, 앞에서 핸드폰을 이리저리 갖다 대 보았지만, 결제는 되지 않았다. 정확도는 합격.
이렇게 편하고 좋은 기계가 생겼으니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개찰구 지나는 시간도 줄고,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역의 혼잡도도 줄고, 좋지 않을까. 근데 역에서 30분을 지켜본 결과 딱 한 사람을 제외하면, 승객들 대부분이 다른 역처럼 그냥 카드를 찍고 지나갔다.
이용률이 저조한 건 통계로도 확인되는데, 태그리스가 2023년 9월부터 상용화된 우이신설선과 2022년부터 도입된 경기도 광역버스 모두 지난해 태그리스 월이용률이 0.20%밖에 안된다.
이렇게 이용률이 낮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제일 큰 게 호환성 문제였다. 태그리스 게이트가 설치된 지하철은 서울에선 우이신설선 12개역을 빼면, 나머지는 전부 인천지역인데 인천지하철 1호선 3개역과 2호선 전역사, 서울지하철 7호선 인천구간에서만 적용된다. 이렇게 적용되는 역이 적다보니 환승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
[서울시 관계자]
"예를 들어서 서울시 지하철에서 태그리스가 도입이 되더라도 그게 내려서 다른 버스에 환승할 때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서 태그하고 이런 형태가 되면 완벽하게 태그리스 시스템이 지원된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이신설선 정릉역에서 탑승한 뒤 환승해서 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리는 경우라면, 탈 때는 태그리스인데 내릴 때는 다시 태그를 해야 한다는 얘기.
게다가 우이신설선은 ‘티머니’가, 경기도 광역버스는 ‘이동의 즐거움’에서 운영하는 탓에 두 앱 간 호환이 안되고 당연히 환승 할인도 받을 수 없다.
환승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호환성도 문제다. 대중교통 주이용 연령층인 20대의 65%가 아이폰을 사용하는데, 애플은 특유의 폐쇄적인 정책으로 BLE나 UWB(Ultra-wideband) 같은 기술들의 적용이 막혀 있고, 이 때문에 아이폰으로는 온전히 태그리스를 이용할 수 없다.
요즘에도 잊을만하면, 애플이 티머니와 협업한다는 소문이 들려와 희망고문만 계속되고 있다.
이래저래 아직은 활용도가 높진 않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편리해 보이는 기술이니만큼, 잘 보완이 이뤄져서 모든 역에서 태그리스가 쓰이면 정말 좋을 거 같긴 하다.
[유소영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교통물류체계연구실장]
"국가 차원에서 움직이려고 하면 표준화도 돼야 되고 호환이나 이런 부분들을 조절을 해야 되는 상황이고 그것들을 지자체도 인지하고 있고요. 운영 기관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협의체에서 계속 얘기도 나누고 방법들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