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애니 시장 흔든 ‘다크 문’…그 중심은 ‘엔하이픈 유니버스’ [K-팝 서사의 시대]
엔하이픈 세계관을 애니메이션 속에 접목
모든 권리는 하이브에…‘케데헌’식 유출 막아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공룡인 애니플렉스(Aniplex)가 엔하이픈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웹툰 ‘다크 문’을 제작한 하이브와 손 잡고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을 선보였다. [하이브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ned/20260516112824820vdpl.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붉은 달’이 떠오른다. 늙지 않는 소년들, 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영원을 살아야 하기에 끝없이 상실을 반복한다.
K-팝 그룹 엔하이픈(ENHYPEN)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뱀파이어 소재의 웹툰 ‘다크 문(DARK MOON)’. 이 이야기는 K-팝 아이돌의 세계관을 확장한 ‘흔한’ 서사물 중 하나로 보일 수 있으나, 애초 아이돌 ‘부속 콘텐츠’와 결이 다르다. 팬서비스용 외전이 아닌, 완결된 장르 문법을 가진 고딕 판타지다.
이 세계에서 소년들은 뱀파이어이자 늑대인간이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다. 웹툰은 인간 소녀 수하를 둘러싼 운명과 금기, 구원과 파멸 구조의 학원 판타지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하지만 이 안엔 엔하이픈이 데뷔 초기부터 반복해 온 감정의 흐름을 담았다. ▷경계 위의 청춘 ▷불안정한 소속감 ▷끝없이 변해가는 존재의 공포 ▷밤과 성장통의 이미지 등이다.
뱀파이어 서사 속 주인공의 정서는 묘하게도 K-팝 아이돌의 성장 서사와 닮았다. ‘다크문’의 뱀파이어들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너무 오래 살아남았기에 상실에 익숙해진 소년들이다. 이는 ‘보더(BORDER)’, ‘디멘션(DIMENSION)’ 시리즈를 지나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청춘’을 노래해 온 엔하이픈의 정서와 포개진다.
이 서사에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공룡인 애니플렉스(Aniplex)가 움직였다. 한국의 K-팝 기획사가 만든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다. 지난 1월, 일본 지상파 채널인 도쿄 MX(TOKYO MX)와 아베마(ABEMA)를 통해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이 공개됐다.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한 애니메이션 ‘다크문 달의 제단’ 옥외광고 [하이브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ned/20260516112825086pazy.jpg)
제작을 맡은 쿠로사키 시즈카 애니플렉스 프로듀서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웹툰을 봤을 때 하이브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 K-팝 아티스트 엔하이픈을 모티브로 한 스토리라는 것도 몰랐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시즈카는 “로맨틱하고 장엄한 세계관에 매료됐는데, 알고 보니 음악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는 하이브가 2차원(2D) 콘텐츠를 진지하게 대하며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하이브처럼 음악과 스토리,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은 앞으로 애니메이션 산업에 매우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브와 애니플렉스의 만남은 한일 엔터테인먼트 협업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 애니플렉스가 한국 웹툰 플랫폼이 아닌 K-팝 기획사의 IP와 손잡은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앞서 애니플렉스는 한국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바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이 한국 웹툰 IP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면, ‘다크문’은 K-팝 세계관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안으로 진입 시도를 한 사례다.
뿐만 아니라 K-콘텐츠 산업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IP 주권’ 확보의 해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하이브가 단순 제작사가 아니라 세계관과 캐릭터의 원천 권리를 가진 ‘IP 홀더’라는 점에서 IP 주권을 제대로 지켰다.
글로벌 플랫폼 크런치롤(Crunchyroll)에서는 평점 4.8점.
아베마 인기 애니메이션 데일리 랭킹 13위, ‘마이아니메리스트’ 10위.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진행한 애니메이션 ‘다크문 달의 제단’ 옥외광고 [하이브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ned/20260516112825457imhx.jpg)
애니메이션 공개 이후 반응이 뜨거웠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 엔하이픈의 팬덤은 물론 순수 애니메이션 팬들이 유입됐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이 아티스트 팬덤을 넘어 ‘독립 IP’로서 강력한 유입 창구 역할을 하며, 대중에게 이야기 자체로 다가섰다는 것이다.
시즈카 프로듀서는 한국 웹툰 IP의 강점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스토리’를 꼽았다. 그는 “플롯과 캐릭터 묘사, 에피소드 구성, 독자의 감정을 끌어내는 방법 등 요소들이 폭넓은 연령층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돼 있다”며 “일본 만화가 긴 연재 속에서 캐릭터를 축적해 간다면, 한국 웹툰은 초반부터 감정 몰입의 밀도가 굉장히 높다”고 분석했다.
애니플렉스에선 이에 한국 웹툰이 가진 ‘히트를 설계하는 스토리 디자인 역량’이 일본의 숙련된 제작 기술과 결합할 때 시너지를 낼 것으로 봤다.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서브컬처 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애니메이션협회에 따르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2014년 1조 6400억 엔(약 106억 달러)에서 2023년 3조 3465억 엔(약 213억 달러)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소니그룹은 전 세계 사용자 1억2000만 명, 유료 구독자 1700만 명에 달하는 애니플렉스와 크런치롤을 양축으로 글로벌 IP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시장의 리더인 애니플렉스가 하이브와 손을 잡은 것은 ‘다크 문’ 웹툰이 가진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다크 문’을 제작한 하이브의 박태호 넥스트엔터테인먼트 사업 대표는 “애니플렉스는 ‘다크문’ IP가 지닌 서사적 완결성과 트랜스미디어로서의 확장 가능성을 보고 매우 강력한 협업 의지를 보여줬다”며 “K-팝 아티스트와 연동된 독창적인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을 기존 애니메이션 시장에는 없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평가한 것이 일본 파트너들이 ‘다크 문’에 주목한 이유”라고 말했다.
‘다크문’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명가로 향하기 전부터 글로벌 웹툰 시장에서 탄탄한 팬덤을 만들며, 시장성을 검증받았다. 시즈카 프로듀서는 “K-컬처 콘텐츠는 보편성과 글로벌한 확장성이 높다. 특유의 보편적이고 국경을 넘기 쉬운 드라마성은 애니메이션화될 때 큰 장점”이라며 “한국 IP만이 가능한 강점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지는 표현력이 결합될 때, 전 세계의 팬들에게 전달되는 새로운 체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룹 엔하이픈 [빌리프랩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ned/20260516112825724lltq.jpg)
하이브는 ‘다크 문’을 애니메이션화하며 ‘트로이카(TROYCA)’와 같은 일본의 실력파 제작사, 시가 쇼코 감독, 토야 키쿠노스케 등 인기 성우진과 함께하며 현지의 ‘정통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따랐다.
박태호 하이브 NEB 대표는 “단순히 편견을 넘기 위해 정통 문법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원작의 재미를 가장 잘 전달할 방법을 찾다 보니 최고의 인프라가 합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결과도 좋았다. 애니메이션 공개 직후 일본 라인망가에서 원작 웹툰 ‘다크 문: 달의 제단’은 종합 2위, 판타지 SF 장르 1위를 차지하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북미와 유럽,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원작 웹툰이 차트 톱3에 재진입, IP 전체의 생명력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애니메이션 평가 사이트인 ‘마이아니메리스트(MyAnimeList)’에서도 화제성 지표인 트렌딩 차트 7위에 올랐다. 까다로운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의 기준을 충족시켰다는 의미다.
애니메이션 방영이 안긴 의미 있는 성취는 아티스트 팬덤과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의 ‘상호 유입’이다. 엔하이픈의 팬들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통해 아티스트의 서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고, 순수 애니메이션 팬들은 작품의 OST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엔하이픈이라는 K-팝 스타에게 ‘입덕’하고 있다.
시즈카 프로듀서는 “애니메이션이 방송을 시작한 이후, 그동안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던 엔하이픈의 팬들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애니메이션 팬이 엔하이픈의 곡이나 뮤직비디오에 관심을 갖는 움직임을 많이 보이고 있다”며 “아티스트 팬과 애니메이션 팬이라는 서로 다른 커뮤니티 사이에서 양방향 유입이 일어나며 ‘IP 가치의 증폭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애니플렉스(Aniplex)가 엔하이픈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웹툰 ‘다크 문’을 제작한 하이브와 손 잡고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을 선보였다. [하이브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ned/20260516112825984gpws.png)
엔하이픈은 애니메이션 공개와 맞물려 복귀하고, 스페셜 앨범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를 통해 웹툰 스토리를 음반으로 만들었다. 기존 K-팝 음반이 아티스트의 음악과 비주얼을 소장하는 도구였다면, 이 음반은 작품 속 세계관을 소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음악 팬덤과 웹툰, 애니메이션 독자들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교차 소비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박태호 대표는 “앨범명인 ‘메모라빌리아(수집품)’의 의미처럼, 팬들에게 스토리 속 중요한 단서를 직접 손에 쥐는 듯한 강력한 서사적 몰입감을 주고자 했다”며 “아티스트의 활동 주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앨범이 갖는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에, IP의 생명력과 시장의 수요를 장기적으로 견인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도는 실물 앨범을 단순한 기록 매체에서 ‘총체적인 경험의 장’으로 확장하며, K-팝 비즈니스가 음악을 넘어 확장된 IP 산업으로 도약하는 데 유의미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적 가치는 수익 구조와 권리관계에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누적 5억 뷰를 돌파하며 가치를 1조 원 이상으로 평가받았다. 그럼에도 원천 IP 권리는 소니픽처스와 넷플릭스가 보유해 장기적인 수익은 해외 플랫폼이 모두 가져갔다. 이에 국내 콘텐츠 업계에선 ‘IP 유출’ 논란이 본격화됐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성공한 작품이 나와도 수익이 해외 플랫폼에 귀속되는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코트라 워싱턴 D.C. IP센터 보고서에서도 ‘케데헌’의 사례를 “제작사 소니는 안정성을, 넷플릭스는 장기 IP 권리를 가져간 거래 구조”로 분석하고, “한국 기업이 원천 IP 확보를 넘어 라이선싱·브랜딩·문화 저작권 관리·공정 수익 배분 구조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이브의 ‘다크 문’ 모델은 기존의 제작 방식과는 다르다. IP 기획부터 웹툰, OST, 머천다이즈 등 원천 권리 전반을 하이브가 소유한다. 애니플렉스는 애니메이션 제작과 콘텐츠 공개 등 확장 과정의 강력한 파트너로 함께 했고, 하이브가 ‘원작자(IP Holder)’로서 중심축을 맡아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했다.
박태호 대표는 “하이브가 권리를 위탁하고 수익만 분배받는 방식 대신 직접 스토리 IP 홀더가 되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IP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 때문”이라며 “IP 권리를 확보해야만 팬 경험 설계에 대한 완전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만 더 좋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다크문 달의 제단 사전상영회 무대인사에서 엔하이픈과 성우들 [하이브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6/ned/20260516112826299izar.jpg)
스토리 IP를 통해 확장하는 다양한 신규 먹거리의 수익 역시 하이브의 생태계 안으로 귀속된다. 엔하이픈이 부른 다크 문 스페셜 앨범을 비롯해 롯데월드 테마파크 협업, 무신사(나이트볼) 패션 아이템 등 360도 전방위 OSMU(원 소스 멀티 유즈) 수익이다.
애니플렉스에선 하이브와의 협업을 “자극이자 성장의 기회”라고 말했다. 시즈카 프로듀서는 “아티스트라는 강력한 실물 콘텐츠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세계관 표현력이 높은 가상 콘텐츠가 결합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애니플렉스로서도 새로운 도전”이라며 “국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팬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향후의 애니메이션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귀중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인 팝 컬처로 성장했지만 시장의 속도나 수요의 변화에 비해 프로듀싱 측면의 글로벌 시각이 아직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며 “앞으로도 하이브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과 음악의 가능성을 더욱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이브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크런치롤과 협업, 고도의 현지화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 영어 더빙판에 영국식 악센트를 적용한 것이다.
박태호 대표는 “개별 팬의 몰입도를 깊게 하는 동시에 슈퍼팬 인구 자체를 확장하는 두 엔진이 동시에 가동되는 구조”라며 “K-팝이 만든 원천 IP가 일본의 제작 시스템을 빌려 전 세계 80여 개 지역으로 송출,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점유해야 할 가장 영리한 포지션”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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