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음식이라 하면 대개 채소나 과일, 통곡물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BBC와 영국의 영양 전문가 집단이 공동으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음식’ 순위는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엎었다. 특히 아몬드가 1위, 의외로 돼지기름(lard)이 8위에 오르며, ‘지방=나쁘다’는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평가 기준을 보여줬다.
이번 순위는 단순한 칼로리나 당 함량이 아닌, 영양 밀도, 흡수 효율, 실제 건강에 미치는 기능성 작용 등을 기반으로 선정됐으며, 음식이 체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반영된 결과다. 그렇다면 아몬드는 왜 1위였고, 돼지기름이 의외의 상위권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1. 아몬드 1위: ‘지방’이 아니라 ‘지방의 질’이 중요했다
아몬드가 1위에 오른 데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과학적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단일불포화지방산의 비율이다. 아몬드는 견과류 중에서도 특히 심혈관 보호 효과가 입증된 오메가-9 지방산(올레산)이 풍부하다. 이는 혈중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HDL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또한 아몬드는 비타민 E, 마그네슘, 식물성 단백질, 섬유질까지 두루 갖춘 ‘영양 밀도’가 뛰어난 식품이다. 미국심장학회,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등에서도 아몬드를 하루 23알 이내로 섭취할 경우 심장병, 제2형 당뇨, 대사증후군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연구를 발표해왔다.
특히 아몬드는 천천히 소화되면서 포만감을 오래 유지시키고, 혈당 스파이크를 줄여주는 기능성 간식이라는 점에서 간식으로서의 이상적 기준에도 부합한다. 단순히 ‘좋은 성분이 많다’가 아니라, 흡수되는 방식, 대사 과정에서의 안정성, 다양한 건강 지표에 긍정적인 작용이 1위 선정의 배경이 됐다.

2. 돼지기름 8위: 포화지방이 항상 해로운 건 아니다?
이 순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 항목은 단연 ‘돼지기름’이었다. 오랜 시간 포화지방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건강을 해치는 식재료로 낙인찍혔던 돼지기름이 왜 상위권에 오른 걸까?
BBC와 협력한 뉴트리션 데이터 분석팀은 ‘돼지기름의 지방산 조성’을 재평가했다.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돼지기름이 100% 포화지방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약 45%가 단일불포화지방산(올레산)으로, 올리브유와 매우 유사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심장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방 형태로 간주된다.
또한, 돼지기름은 높은 연기점과 안정적인 조리 특성을 가지므로, 고온 조리에 적합하고 산화에 덜 민감하다는 점에서 트랜스지방을 형성할 우려가 낮다. 이는 버터, 마가린, 식물성 쇼트닝보다 오히려 조리 안전성이 높은 경우로 볼 수 있다.
물론 돼지기름은 과다 섭취 시 체중 증가와 혈중 지질 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BBC 선정 기준은 ‘적정량, 적정 맥락에서의 영양 가치’에 집중했고, 그 결과 기능적 식재료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3. 선정 기준의 변화: 단일 영양소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BBC가 발표한 건강식 순위에서 주목할 점은, 기존처럼 ‘지방은 무조건 피하자’, ‘칼로리가 낮아야 좋다’는 단선적인 기준이 아니라, 음식이 인체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시스템을 건드리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예컨대, 같은 열량을 갖더라도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음식은 낮게 평가되었고, 복합 탄수화물이나 저항성 전분을 포함한 식품은 높게 평가됐다. 또한 체내 염증 반응을 유도하지 않고,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식품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러한 방식은 식단을 평가할 때 ‘영양 성분표를 넘어서,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현대적 접근으로, 앞으로의 식품 선택 기준에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

4. 그 외 주목할 만한 상위권 식품들
이 순위에는 아몬드, 돼지기름 외에도 의외의 식품들이 포진돼 있다. 예를 들어 차조기 잎, 연어, 시금치, 치아씨드, 해조류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복합적인 미량 영양소와 항산화 물질, 장기 기능 개선 효과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상위권에 오른 식품들의 공통점은 ‘단일 영양소에 치우치지 않고, 복합적인 생리 기능을 가진 자연식품’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음식이란 ‘몸에 좋은 성분 몇 가지를 담은 정제된 식품’이 아니라, 다양한 성분이 균형을 이루는 본연의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