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엄마 장례식에 한 푼도 안 냈는데.." 유품 속 통장을 보고 울었다

부모님 장례를 치르고 나면 형제자매 사이에 서운함이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 더 많이 냈는지, 누가 더 고생했는지를 두고 마음이 상해 연락을 끊는 형제도 적지 않습니다.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형제의 마음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은 엄마 장례식에서 한 푼도 내지 않은 언니를 원망했던 한 여동생이 유품을 정리하다 알게 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세 남매와 홀어머니

충남 천안에 사는 윤미경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그녀는 동네 약국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 몇 년 전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며 출가한 두 아들의 손주들을 가끔 봐 주는 것이 요즘 일상입니다.미경 씨는 세 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위로 다섯 살 많은 언니 미자 씨와 세 살 많은 오빠 미호 씨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미경 씨가 중학생일 때 탄광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이복례 씨가 홀로 시장에서 채소를 팔아 세 남매를 키웠습니다.언니 미자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의 봉제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강원도 태백의 광부와 결혼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형부는 일찍 몸이 상해 일을 그만두었고, 언니는 식당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았습니다.세월이 흐르며 자매 사이는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언니는 명절에도 형편이 어렵다며 고향에 잘 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생신 때도 전화 한 통으로 대신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미경 씨는 그런 언니가 늘 서운했습니다.어머니는 아흔이 넘어서도 천안의 작은 집에서 혼자 지내셨습니다. 미경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러 반찬을 챙기고 병원에 모시고 다녔습니다. 오빠도 가끔 생활비를 보탰지만 어머니를 곁에서 돌보는 일은 대부분 미경 씨 몫이었습니다.

장례식장의 빈자리

지난봄, 어머니가 아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미경 씨는 오빠와 함께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장례식장 비용과 장지 비용을 합쳐 1천5백만 원 가까이 들었습니다.언니는 장례 첫날 저녁 늦게 태백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했습니다. 낡은 검은 원피스 차림이었습니다. 언니는 어머니 영정 앞에서 한참을 엎드려 울었습니다. 하지만 장례가 끝날 때까지 장례비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습니다.발인 날 아침, 오빠가 조심스럽게 장례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누나, 장례비는 셋이서 나누면 어떨까?" 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미안하다. 지금 형편이 정말 안 돼서…"친척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맏딸이 어떻게 한 푼도 안 내나." "엄마 살아 계실 때도 제대로 찾아오지도 않더니." 미경 씨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언니를 원망했습니다. 엄마를 돌본 건 나인데, 언니는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장례가 끝나고 언니는 태백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경 씨는 언니를 배웅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자매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미경 씨는 이제 언니와는 남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낡은 장롱

49재를 마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미경 씨는 어머니가 살던 집을 정리하러 갔습니다. 작은 방에는 어머니가 수십 년 동안 쓰던 낡은 장롱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 어머니 특유의 분 냄새가 훅 끼쳐 왔습니다.미경 씨는 옷가지를 하나씩 꺼내 상자에 담았습니다. 어머니가 시장에 나갈 때 입던 꽃무늬 몸뻬, 명절에만 꺼내 입던 한복, 손주들이 사 드린 털조끼가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습니다. 옷 하나하나에 어머니와의 추억이 묻어 있어 정리하는 손이 자꾸만 멈추었습니다.장롱 맨 아래 서랍을 열었을 때, 보자기에 싸인 작은 꾸러미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자기를 풀자 낡은 통장 여러 권과 누렇게 바랜 쪽지 한 장이 나왔습니다. 통장은 모두 어머니 이름으로 된 것이었습니다.미경 씨는 별생각 없이 첫 번째 통장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입금 내역에 찍힌 이름을 보는 순간 손이 굳어 버렸습니다. 매달 같은 날짜에, 같은 이름으로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윤미자."통장을 한 권씩 넘길 때마다 미경 씨의 숨이 가빠졌습니다. 가장 오래된 통장은 20년 전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10만 원, 나중에는 30만 원씩, 언니는 단 한 달도 빠짐없이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쪽지에 적힌 어머니의 글씨

미경 씨는 떨리는 손으로 누렇게 바랜 쪽지를 펼쳤습니다. 어머니의 서툰 글씨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미자가 보낸 돈. 병원비하고 약값으로 씀. 미자가 미경이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함. 미경이가 엄마 챙기느라 고생 많은데 돈까지 보탠다고 하면 미안해한다고."쪽지 아래에는 몇 줄이 더 적혀 있었습니다. "미자는 미경이 대학 보내려고 공장 갔다. 그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죽으면 이 통장 미경이가 보게 될 것이다. 미경아, 언니를 미워하지 마라."미경 씨는 쪽지를 가슴에 안은 채 어머니의 빈방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제야 오래전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대학에 합격하던 해, 언니가 갑자기 서울 공장에 가겠다고 했던 일. 등록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어머니가 끝내 말해 주지 않았던 일.어머니의 병원비와 약값이 생각보다 적게 들었던 이유도 그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미경 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닐 때마다 어머니는 "돈은 엄마가 낼게"라며 늘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 돈이 바로 언니가 보낸 돈이었습니다.장례식장에서 언니가 한 푼도 내지 못한 것은 정말로 남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니는 식당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20년 동안 어머니에게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태백으로 가는 버스

다음 날 아침, 미경 씨는 첫차를 타고 태백으로 향했습니다. 통장 꾸러미와 어머니의 쪽지를 가방에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산들을 바라보며 미경 씨는 언니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언니가 일하는 식당은 태백 시내 골목 끝에 있는 작은 해장국집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앞치마를 두른 언니가 뚝배기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언니는 동생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미경아, 네가 여기 웬일이니?" 미경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방에서 통장 꾸러미를 꺼내 언니 앞에 내밀었습니다. 언니는 통장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엄마가 그걸 아직 갖고 계셨구나."미경 씨는 언니의 거친 손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언니, 왜 말 안 했어. 내가 그동안 언니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알아? 장례식장에서 배웅도 안 했잖아." 언니는 동생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네가 엄마 곁에서 고생하는데, 나는 돈 보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걸 생색낼 수는 없잖아."식당 손님들이 의아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지만 자매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40년 넘게 쌓였던 서운함과 오해가 그 자리에서 눈물과 함께 녹아내렸습니다.

다시 이어진 자매의 인연

그날 밤 미경 씨는 언니의 작은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자매는 어머니의 옛 사진을 펼쳐 놓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장에서 채소를 팔던 어머니, 셋이 한 이불을 덮고 자던 겨울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기억까지 끝없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천안으로 돌아온 미경 씨는 오빠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습니다. 오빠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습니다. 오빠와 미경 씨는 상의 끝에 장례비 가운데 언니 몫으로 거론됐던 금액을 오히려 언니에게 보내 주었습니다.언니는 끝내 그 돈을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미경 씨는 어머니의 쪽지를 사진으로 찍어 언니에게 보내며 한 줄을 덧붙였습니다. "엄마가 언니 미워하지 말라고 했어. 이번엔 내 말 들어." 그제야 언니는 "고맙다"는 짧은 답장을 보내왔습니다.요즘 자매는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영상 통화를 합니다. 지난 추석에는 20년 만에 언니가 천안에 내려와 함께 어머니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자매는 산소 앞에 나란히 앉아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식혜를 올렸습니다.미경 씨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형제가 미울 때는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해요. 저는 그걸 몰라서 언니를 20년이나 오해했어요."

형제자매 사이의 서운함은 대부분 서로의 사정을 모르는 데서 시작됩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평생 후회할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혹시 마음속에 미운 형제가 있다면, 먼저 한번 안부를 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따뜻한 진실이 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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