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든 행사는 아니지만, 이재명 정부의 대북 기조가 실무 현장과 마주하는 첫 장면이 됐다.
[스탠딩아웃]= 북한 여자축구단이 8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다. 대표팀이 아닌 북한 여자축구 클럽팀이 한국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오는 17일(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뒤, 20일(수)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수원FC 위민과 아시아축구연맹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치른다. 선수 27명과 스태프 12명으로 구성된 명단은 이미 AFC에 접수됐다. 이번 방문은 정부가 기획한 남북 교류 행사가 아니다. 국제 대회 대진과 개최지 결정에 따른 공식 이동이다.
이번 방남은 단순 일정이 아니다. 북한 축구 선수단으로는 2018년 이후 8년 만의 방남이다. 북한 여자축구가 한국에서 경기하는 것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이다. BBC를 비롯한 외신이 이 장면에 주목한 배경도 선명하다. 현재 남북의 공식 접촉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북한은 한국을 더 이상 통일의 상대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한국 경기장으로 들어온다.
출발점은 정치가 아니라 대회 시스템이었다. AFC 대회 규정, 참가 의무, 개최지 선정이라는 행정 절차가 먼저 작동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열린 여러 국제 스포츠 행사를 외면했던 북한이 이번만큼은 선수단 명단을 보냈다. 이를 대화 의지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다만 국제 축구 질서와 팀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방문이라는 현실적인 경로를 택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기조도 이 지점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정부는 출범 이후 흡수통일 반대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내세우며 관계 복원을 말해왔으나, 실제 손에 잡히는 접점은 많지 않았다. 이번 방남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만든 이벤트는 아니다. 다만 정부의 정책 기조가 처음으로 실무 현장과 마주하는 순간이 된다.
정부에게 이번 일정은 성과라기보다 세밀한 관리의 문제다. 이를 정치적 치적으로 과하게 포장하면 북한은 부담을 느껴 거리를 둘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향후 실무 접촉의 근거마저 놓치게 된다. ‘저자세’라는 비판과 ‘기회 상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 핵심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영 구호가 아니다. 선수단의 이동과 경기를 국제 기준에 맞춰 매끄럽게 지원하는 운영 능력이다.
북한은 지금 한국이 급하지 않다. 러시아와 밀착하며 외교적 자산을 키웠고, 핵과 미사일을 협상력으로 삼고 있다. 남북 관계보다 북러 관계에서 더 큰 보상을 얻는다고 판단한다면, 먼저 손을 내밀 이유는 약하다. 이번 방남은 태도의 변화라기보다, 정치적 경색 국면에서도 국제기구의 규범과 대회 질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기 자체도 가볍지 않다. 수원FC 위민은 조별리그에서 내고향에 0-3으로 패한 기억이 있다. 이번 경기는 결승행 티켓이 걸린 설욕전이다. 특히 한국 여자축구의 상징인 지소연의 도전이 눈에 띈다. 지소연은 성인 대표팀 데뷔 이후 북한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은퇴 전 꼭 이겨보고 싶다”는 그의 말은 북한을 향한 한국 여자축구의 오랜 열세를 자기 시대 안에서 끊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일정의 결과는 스코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90분의 경기가 끝난 뒤 남북 사이에 최소한의 실무 접촉이나 대화 채널이 남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막힌 관계 속에서 발생한 이번 사례가 단발성 일정으로 끝날지, 다음 접촉의 근거가 될지는 정부의 절제된 관리력에 달려 있다.
스코어는 경기 당일 밤에 나온다.
이번 방남의 의미는 그보다 늦게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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