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가 줄어드니, 지방만 희생양
“지방 균형 발전 위해 조세제도 전면적인 개편 필요” 목소리도
“올해 총 32조원 규모의 세수 펑크가 발생할 수 있나.”(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대로 가면 그렇다.”(최상묵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 9월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에서 오간 문답이다. 지난해 ‘세수 펑크(세수결손)’ 56조원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2년째 엄청난 세수결손이 발생하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법인세, 양도소득세 등에서 세수결손이 급증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불용통보, 지자체에 카톡 메시지로 보내
세수 펑크로 인한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지방정부로 떠넘겨졌다. 국회에서 2023년 예산을 결산하는 과정에서 기재부가 국세수입과 연동되는 보통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18조6000억원을 불용 처리했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예산 관련 결정은 당연히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나, 재정당국은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자체에 불용통보만 했다. 심지어 지자체에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로 보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가재정법을 어기고, 헌법상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무시했다는 논란까지 제기된 만큼 야당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말 국회 기재위에서 “세수결손 대응방안으로 지방교부세 미지급으로 대응하자고 의견을 낸 곳이 기재부의 어느 국인가”라고 질의시간 7분 내내 똑같은 질문만 던졌다.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2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국회가 의결한 예산에 기준해 전 17개 시·도와 228개 시·군·구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서 그다음 해에 예산을 쓰고 있는데 9월에 교부금을 내려보내지 않은 것”이라며 “행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불용결정을 한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한 해 전에 국회에서 결정된 예산이 그해에 중앙에서 내려오지 않자 지방정부는 각종 사업 진행에 중대한 차질을 빚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예산이 잡혀 있는데 중앙정부에서 마음대로 주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에 어긋난 행위”라고 지적했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지방정부가 안정적으로 예산을 운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교부세부터 먼저 건드리는 불용처리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내년도 예산에서도 세수 펑크의 부담은 오롯이 지방에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국세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법인세 등을 완화하면서 생긴 결손이, 그리고 세수를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 재정당국의 무능력이 지방재정의 부담으로 전가된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지방 지자체가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온갖 인맥을 동원해야 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수도권에 비해 숫자가 적은 비수도권 의원들은 예산확보전에서도 밀리게 된다.
기초지자체·광역지자체 의원을 거친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올해 이미 지방정부는 긴축재정에 들어갔고, 많은 사업이 축소되거나 주민 숙원사업이 없어졌다”면서 “더 심각한 사실은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약 고리인 지방재정부터 위험에 빠뜨려
윤석열 정부의 소극적 재정정책과 감세정책은 가장 약한 고리인 지방정부의 재정부터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높지만, 지방에는 자립도가 10% 미만인 지자체도 많다. 법인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의도적인 감세로 중앙정부의 재정이 악화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부터 도미노식으로 불경기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격이다. 임미애 의원은 “지방에서는 가장 큰 돈줄이 중앙에서 내려오는 예산인데, 이를 깎아버리면 이중삼중으로 지방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면서 “정부가 재정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방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지금은 정부가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에서도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앞두고 종부세, 금투세, 상속세 완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다. 국세인 종부세가 완화되면 중앙에서 내려가는 지방 지원 예산이 자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완화를 주장하고 있고, 진성준 정책위 의장이 반대를 주장하고 있어 당 내부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종부세 폐지를 주장해온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금투세나 상속세 완화로 재정수입의 총 파이가 줄어들면 지방 예산 역시 n분의 1로 줄어들 수 있으나 이런 식이라면 모든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서 “하지만 종부세는 그 세목이 합리적인지를 따져 물어야 하는 또 다른 토론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세금을 거두면 안 된다는 게 종부세 폐지 주장의 밑바탕이라는 것이다.
지방으로서는 종부세 완화 또는 폐지가 재정에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지방세인 재산세로만 재정을 꾸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병천 소장은 “지금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8년 강남 지역 등의 재산세 50%를 해당 지역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서울 전역에서 나눠 쓸 수 있게 한 사례를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종부세를 폐지하고 지방세인 재산세를 ‘오세훈식 공동과세’로 전국에서 사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 조세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을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지방분권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재정 뒷받침”이라면서 “지방재정의 총량도 중요하지만 지방의 재정 자율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재정 통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 공동대표는 “국가재정과 지방재정의 조세 재정정책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