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 제국 무너뜨린 '작은 손'들의 연대

‘세계사 속의 다윗과 골리앗’ 얘기를 들으면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점이 하나 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약자의 편에 서서 거인과 맞서 투쟁한 ‘다윗’들을 기억하되, 역사를 선악 구도로 나눠 어느 쪽이 정의롭고 어느 쪽이 불의냐를 가리려 들 필요는 없다는 거야. 오늘은 그리 정의롭지도 희생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매우 탐욕스웠지만, 터무니없는 열세를 딛고 거대한 상대를 거꾸러뜨려 역사를 바꾼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이름은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그 후로도 상당 기간 스페인 사람들은 오늘날의 카리브해 연안의 섬들을 수중에 넣었을 뿐,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에는 발을 디디지 못했어. 탐험을 통해 오늘날 멕시코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제국이 존재함을 알게 된 쿠바 총독 벨라스케스는 에르난 코르테스로 하여금 탐험에 나서게 한다. 1519년 2월10일 출항 직전, 코르테스의 연설이야. “제군들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나는 제군들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며,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바다를 횡단했던 그 누구보다도 제군들을 부유하게 만들 것이다(〈탐험과 항해의 세계사 6〉 레이철 A. 케스틀러 그랙 지음).”
인류 역사를 끌고 온 가장 큰 축은 단연 욕망이야. 그리고 여러 욕망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황금’에 대한 욕망이었겠지. 코르테스 역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부하들의 욕망을 자신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데에 능숙했다. 하지만 그는 원주민들에게 ‘보물’을 강요하고, 원하는 만큼 가져오지 않으면 손을 잘라버리거나 개의 먹이로 던져줬던 콜럼버스와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사람이기도 했어.
유카탄반도 근처의 큰 섬 코수멜에 도착했을 때 코르테스의 부하 알바라도가 섬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을 벌이는 사고를 친다. 이때 코르테스는 알바라도를 잡아다 부대원들 앞에 세워두고 꾸짖은 후 원주민들을 찾아 약탈품을 돌려주고 선물까지 안기며 환심을 샀어. 적대적 부족과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강화가 맺어진 뒤에는 신의를 지키고자 노력했고, 원주민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애썼지.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 타바스코 부족과 화해한 뒤 코르테스는 여자 노예들을 선물로 받는데 그중 ‘말린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인디오 여성이 있었어. 그녀는 코르테스의 연인이자 통역이 되어 그의 원정을 돕는다. 이때 스페인 사람들은 말린체를 도냐 마리나(세례명)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도냐’는 ‘돈키호테’의 ‘돈’과 같은 존칭이었어. 코르테스 원정대는 그들과 친선을 맺은 부족의 지배자들에게도 ‘돈’ 칭호를 꼬박꼬박 붙여주었다. 원정대 대부분이 (심지어 코르테스까지도) ‘돈’ 칭호를 붙이기 어려운 신분이었는데도 말이야.
코르테스 원정대는 곧 그들의 도상에 버티고 선 대제국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아즈텍 제국. 흔히 코르테스 원정대를 평화로운(?) 인디언 문명을 지워버린 악당들로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아즈텍 제국은 주변의 약소 부족들에게 어마어마한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었어.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하고도 대규모의 인신공양 의식으로 약소 부족들을 포로로 잡아와 학살하고 잡아먹었으니까.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을 갈라 심장과 내장을 꺼내 우상 앞에서 불태우고 그 연기를 우상 앞에 바칩니다(〈코르테스의 멕시코제국 정복기 1〉 에르난 코르테스 지음).”
또 다른 공로자, 틀락스칼텍 부족
코르테스는 스페인 부하들과 인디오 부족 동맹군들과 함께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한다. 처음에는 아즈텍 황제 몬테수마의 환대를 받았지만 결국 아즈텍인들의 대규모 저항에 직면하게 되지. 한때 어마어마한 아즈텍의 보물을 움켜쥐고 환호했던 스페인인들은 용맹한 아즈텍 전사들의 총공세 앞에 참담한 피해를 당한다. 테노치티틀란을 빠져나오면서 태반의 무기와 장비를 상실했고 스페인 원정대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지. 코르테스가 목놓아 울었다고 할 만큼의 참패였어. 이게 ‘슬픔의 밤’ 사건이야. 남은 병력은 스페인군 400여 명. 하지만 그래도 그 곁을 떠나지 않은 틀락스칼텍 부족 동맹군 1000여 명과 함께였어.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지만 아즈텍 군은 곧 이들을 따라잡았어.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불사신 같은(‘슬픔의 밤’ 당시 아즈텍 전사들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회고)” 아즈텍 전사들은 살기등등했다. 반면 스페인인들은 지치고 굶주려 있었어. “죽은 말을 껍질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치울(코르테스의 보고서)” 정도로.
이 절체절명 위기를 맞아 이전 전투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고 손가락 두 개를 못 쓰게 된 코르테스는 스물세 마리 남은 말 중 하나에 올라타고 필사적인 돌격을 감행한다. 아즈텍 군대가 지휘관의 향배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아즈텍의 장군기만을 향해 내달았어. 사람의 파도에 뛰어드는 기마병 단 23기. “하느님의 보살피심에 힘입어 그날 적군 대장 가운데 한 명을 죽일 수 있었고, 그는 적진에서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어서 그가 죽자 저들은 공격을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코르테스의 보고).” 코르테스의 돌격에 죽임을 당한 이는 아즈텍 군 사령관 시우아코아틀이었어. 이 돌격은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바꿨단다. 코르테스가 아즈텍 사령관의 깃발을 치켜세우자 아즈텍 대군이 급격하게 전의를 상실해버렸으니까. 이게 1520년 7월7일 벌어진 오툼바 전투야.
이 전투에서 또 하나의 공로자는 스페인 동맹군 틀락스칼텍 부족이었어. 아즈텍인들은 틀락스칼텍을 점령하여 제국의 일부로 만들고는, 그 부족 사람들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삼았으며, 그들의 인육(人肉)으로 부족한 단백질을 채웠어. 틀락스칼텍 사람들이 코르테스의 충실한 동맹군이 된 이유지. 그런데 오툼바 전투 후 벌어진 일은 틀락스칼텍 사람들이 코르테스와 함께 했던 또 다른 이유를 짐작게 한다. 천신만고 끝에 승리했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던 코르테스의 부하들이 동맹군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자신들의 목숨이라도 구하자고 아우성쳤을 때 코르테스가 이렇게 부르짖었거든.
“명예로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전쟁에 끌어들인 동맹군을 아즈텍의 복수 앞에 내팽개쳐두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너희는 너희의 사령관을 여기에 내버려둬라. 나는 패배자들과 비겁자들보다는 소수의 용감한 영혼과 함께하며 더 강해진다.” 이후 코르테스는 동맹군과 힘을 합쳐 중미의 대제국 아즈텍을 몰락시키는 역사를 일군다. 코르테스는 틀락스칼텍 사람들에게 ‘영원한 동맹’을 서약하는데 놀랍게도 이 약속은 수백 년 동안 지켜져 훗날 멕시코가 독립할 때까지 틀락스칼텍은 일종의 자치령 같은 지위를 누렸단다.
에르난 코르테스가 수백만 인구의 대제국을 무너뜨리는 역사적 이변을 일으킬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야. 군 무장의 우월함, 원주민 태반을 죽여버린 천연두의 파도, 아즈텍의 내부 모순 등등. 그에 더하여 코르테스의 독특한 면모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구나. 에르난 코르테스는 탐욕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때로 잔인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릴 줄 알았고, 잔인함을 발휘할 때와 손을 내밀 때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사람이었다는 뜻이야. 결국 아즈텍이라는 거인을 무너뜨린 것은 코르테스와 수백 명의 스페인 사람들만이 아니라, 코르테스가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수만 명에 이르는 작은 손들의 연합이었단다.
김형민(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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