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사수 OECD 꼴찌”-의사 “인원 아닌 시스템 문제”
“응급의료의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의사의 물리적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
“그것이 의료 시스템의 문제인지, 의사 수 (부족의) 문제인지 생각해봐야 한다.”(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대통령실과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0일 의료개혁 방향을 두고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지만, 입장 차만 확인했다. 양쪽은 ‘의대 정원 증원’은 물론 상급병원 구조 개혁 등 정부의 의료개혁 방식에 대해 시각이 갈렸다. 다만 실손의료보험 개혁 등 일부 쟁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찾기도 했다.
이날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로 연 토론회에는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과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 강희경·하은진 서울의대 교수가 참여했다. 대통령실이 의료개혁과 관련해 공개 토론회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사 수 부족’ 해법은?
양쪽은 의대 증원 필요성을 두고서부터 팽팽히 맞섰다. 장 수석은 “한국보다 인구가 2배 정도인 일본의 의대 정원은 9458명으로, 한국(3058명)보다 3배 많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부동의 꼴찌”라며 “지표상으로 볼 때 절대적인 의사 수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의대 비대위는 한국의 의료서비스 성과를 내세워 반박했다. 강 교수는 “오이시디 평균보다 의사 수가 적다고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다”라며 “(2022년 오이시디 통계 기준) 한국 기대수명(83.6살)은 오이시디 평균에 비해 3살 많다. 의사가 부족했다면 의료서비스를 잘 못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 위기는 기존 의사 재배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신경외과에는 매년 100여명의 전문의가 새로 나오지만, 전문의 취득 후에는 (상급병원 등에) 자리가 없어 (필수의료 진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가(진료비)가 어느 정도 오르지 않으면 고용이 이뤄지지 않는다. (병원들이) 전문의를 고용하게 하는 것에도 정부가 신경써야 한다”고 짚었다.
이에 장 수석은 “한 진료과목 안에서도 세부 전공이 굉장히 분화돼 있다. 기존 의사들은 이미 자기 분야를 선택했는데, 수가를 올려준다고 진료과목이나 세부 전공을 (필수의료 분야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의사 늘면 의료비 증가?
의사 수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건보) 재정 낭비 여부도 쟁점이었다. 의사 단체들은 의사를 늘리면 의료 이용량도 증가해 건보 재정 고갈이 앞당겨진다고 주장해왔다. 강 교수는 의료비 지출의 가파른 증가로 2030년엔 국내총생산(GDP)의 16%가 의료비로 사용된다는 국회예산정책처 추계를 근거로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 지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쪽은 의사 수가 증가해도 의료 이용은 늘지 않는다고 맞섰다. 또 의료개혁에 건보 적립금만이 아닌 국고를 투자해 건보의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고도 했다. 장 수석은 “필수의료 살리기에 (건보 외에도) 국가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게 정부 의료개혁의 원칙”이라며 “건보료율의 급격한 증가는 없을 것이다. 재정에서 (의료개혁에) 필요한 부분을 감당하며 (적정 건보료율을) 유지해가겠다”고 했다.
다만, 실손보험 개혁 등 의료개혁의 일부 과제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하 교수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실손보험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구분된다”며 “(실손보험 의존이 높으면) 경제력이 풍부한 사람만 치료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정경실 단장은 “실손보험이 환자 본인부담 상당 부분을 보장하는 구조가 잘못됐다”며 “과도한 비급여 진료를 막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화 이어질까?
이날 토론회가 향후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한 계기가 될지는 미지수다. 일부 의사들은 ‘의대 증원 백지화’ 없이는 정부와 논의 테이블에 앉는 것에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도의사회는 보도자료를 내어 “장 수석은 복지부 장차관과 함께 의료 농단 주범”이라며 “의료 농단 주범들과 야합하는 이적행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장상윤 수석은 토론회 뒤 기자들과 만나 “진정성 있게 대화를 하고 문제 해결을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토론회 참여 요청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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