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혜미리예채파’, 나영석의 협상 vs 이태경의 협상[스경연예연구소]

흔히 MT나 여행을 가 친구와 가족, 지인들끼리 할 수 있는 작은 게임. 이러한 영역을 처음으로 ‘방송의 영역’에 가져온 것이 나영석PD였다. 2007년 시작한 KBS2 ‘1박2일’은 처음에는 단순한 여행 예능이었지만 ‘복불복 게임’으로 대표되는 나PD의 치밀한 설계로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 시리즈가 됐다.
그의 게임사랑은 그대로 이어져 ‘신서유기’ ‘출장 십오야’ 등에도 ‘초성게임’ ‘음악 처음 듣고 맞추기’ ‘빈칸 채우기’ ‘사진이나 그림 보고 이름 맞추기’가 등장했다. 이를 MZ세대 특히 여성출연자로 한정해 론칭한 tvN ‘뿅뿅 지구오락실’ 역시 두터운 팬덤을 만들었다.
최근 이와 유사한 스타일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지난 12일 방송을 시작한 ENA ‘혜미리예채파’다. ‘놀라운 토요일’의 연출자 이태경PD가 김태호PD의 제작사 TEO로 이적해 처음 선보인 이 예능은, 겉을 봤을 때는 여행을 빙자한 힐링 예능이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게임 예능’이었다.

멤버들은 경기도의 모처 아무것도 없는 집으로 들어가 세간을 채워간다. 모든 세간살이와 생필품은 ‘캐시’를 통해 살 수 있는데 이 캐시는 오로지 제작진이 주관하는 게임에서 이겨 획득할 수 있다. 세간이 없는 것의 불편함을 체험하는 멤버들은 그만큼 게임에 절실해진다. 이 게임에서 이기려는 이들의 열기를 보는 것이 ‘혜미리예채파’의 줄기다.
하지만 화제성에 비해 시청률에서는 아쉬움이 따랐다. 대망의 첫 회가 0.3%, 2회가 0.5%(닐슨코리아 집계)였다. 아직은 신생채널인 ENA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스타PD와 대세 스타들의 조합치고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텅 빈 공간에 멤버들이 세간을 채워간다는 설정은 힐링의 측면에서는 좋다. 갈수록 세간이 그득해지며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능적으로 봤을 때는 악수다.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면 절박함에서 나오는 재미는 줄어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혜미리예채파’ 이태경PD의 협상과 나영석PD의 협상방식 차이가 드러난다. 나PD의 협상은 기본적으로 ‘-(빼기)’ 협상이다. 항상 그의 예능에는 풀코스가 먼저 등장한다. 가장 좋은 상황,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음식부터 시작이다. 여기에서 게임에 이기면 이를 지키게 되고, 지면 잃는다. 풍족한 시작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나PD 게임의 예능적 재미는 여기서 시작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태경PD의 협상은 ‘+(더하기)’ 협상이다. 텅 빈, 가장 안 좋은 상황을 보여주고 이를 메우기 위해 게임을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세간은 흐뭇한 결과이긴 하지만 풍족함 이후의 재미를 보장하기 어렵다. 어렵게 얻은 것을 도로 뺏기도 쉽지 않다. 제작진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혜미리예채파’ 2회에서는 아침 미션으로 ‘캐시 차감’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에 가졌던 돈을 게임에서 지면 도로 뺏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세간을 더하는 방식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나PD의 예능에서 캐릭터들은 실제 편의가 사라지기에 최선을 다했다. 모든 걸 뺏겼다면 판을 뒤집어 큰 거래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PD의 에능에서는 세간이 채워진 후에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 ‘야생’의 약육강식이 빠진 전원생활은 탄산이 빠진 사이다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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