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⑧‘원조 타격왕’ 백인천 타율 0.412 ‘오해와 진실’

『나는 ‘프로야구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팀을 이끌었다. 시즌이 끝났을 때 타율이 4할1푼2리(0.412)였다. 사람들은 ‘경이롭다. 그저 놀랍다’거나 ‘한국야구의 수준이 낮아서 일본프로야구를 경험한 선수가 기록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식으로 얘기가 분분했다.』 <2015년 발행 자서전 ‘백인천의 노력자애’ 162페이지>
장명부의 한 시즌 30승,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 선동열의 0점대 평균자책점 그리고 백인천의 4할 타율….
우리가 KBO리그 ‘불멸의 기록’을 논할 때 흔히 언급하는 기록들이다. 어쩌면 KBO리그 초창기였기에 가능했던 기록, 그래서 앞으로도 좀처럼 깨기지 어려운 기록인지 모른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8번째 주제는 KBO 역사상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평가받는 1982년 MBC 청룡 백인천 감독 겸 선수가 작성한 4할 타율 이야기다.
MBC 청룡과 LG 트윈스로 이어지는 구단 역사에서 모두 7차례 타격왕을 배출했는데, 백인천은 그중 최초의 타격왕이다. 그는 어떻게 불멸의 4할 타율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기록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 개막전 영웅은 이종도였지만…백인천도 멀티히트로 역사적 출발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정말…. 우리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기는데, 빨리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겼으면 원한이 없었을 텐데….”
백인천 감독은 1982년 3월 27일 연장 10회말 이종도의 거짓말 같은 역전 만루홈런으로 승리한 뒤 승장 인터뷰를 하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새까만 후배들 앞에서, 전국민이 지켜보는 방송 앞에서, 불혹의 남자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 눈물은 일본에서 차별을 이겨내며 타격왕에 올랐던 한 맺힌 지난 세월에 대한 설움, 내 나라 내 땅에 마침내 프로야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이 뒤엉킨 결정체였으리라.

MBC 청룡이 KBO 최초 승리팀이 된 그날, 최고의 영웅은 단연 이종도였다. 하지만 ‘감독 겸 선수’ 백인천도 첫날부터 일본프로야구(NPB) 타격왕 출신다운 날카로운 방망이를 자랑했다.
포수 유승안에게 4번타자 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5번타자로 선발출장한 백인천은 2회말 1사 후 첫 타석을 맞이했다. 1회초 2점, 2회초 3점을 내줘 0-5로 뒤진 상황. 그러나 삼성 선발투수 황규봉의 바깥쪽 힘있는 공에 막혀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일본프로야구 타격왕 출신도 별 볼 일 없네.”
기대가 컸던 MBC 팬들은 실망감에, 경계심이 컸던 삼성 팬들은 안도감에 모두 성급하게 웅성거렸다.
1-5로 뒤진 4회말. 백인천은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선두타자 유승안이 볼넷을 골라 나간 뒤였다. 백인천은 여기서 깨끗한 좌전 안타로 1루주자를 3루까지 진출시켰다.
이는 자신의 KBO리그 데뷔 첫 안타였다. 일본프로야구 1831안타까지 포함하면 자신의 프로 무대(한일 통산) 1832번째 안타. 그리고 이 안타는 ‘불멸의 4할’로 가는 첫 걸음이었다.
이어 이종도의 2루수 앞 땅볼 때 3루주자 유승안이 홈을 파고 들면서 MBC가 2-5로 따라붙었다.
3-7로 뒤진 6회말 3번째 타석. 선두타자로 등장한 백인천은 호투하던 삼성 선발투수 황규봉을 상대로 좌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날렸다. MBC 청룡과 LG 트윈스를 통틀어 구단 역사상 1호 홈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홈런이다.
백인천의 홈런으로 스코어가 4-7로 좁혀졌고, 7회말 유승안의 극적인 3점홈런이 터지면서 7-7 동점이 됐다.
백인천은 그 이후 타격할 기회가 없었다. 바뀐 투수 이선희를 상대로 남은 3타석에서 모두 볼넷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장 10회말 2사 1·3루에서 고의볼넷을 얻어내면서 이종도의 역사적인 끝내기 역전 만루홈런의 징검다리가 됐다.
MBC 청룡은 11-7로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뒀고, 백인천은 KBO 데뷔전에서 6타석 3타수 2안타 3볼넷 1홈런 1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MBC 청룡도, 백인천도 역사적인 KBO 최초 경기에서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 시즌타율 4할 아래는 단 2경기…나머지는 모두 4할대 이상
백인천은 3월 28일 서울운동장야구장(동대문구장)에서 시즌 두 번째 경기에 나섰다. 상대팀은 OB 베어스. 상대 선발투수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다 OB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꿈을 접고 귀국한 박철순이었다. 밀워키 산하 더블A에서 트리플A 승격이 예정돼 있던 상태였다.
“미국파 박철순이냐, 일본파 백인천이냐.”
호사가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맞대결이 펼쳐졌다. 1회말 2사 1·2루. MBC 5번타자로 선발출장한 백인천은 첫 타석에서 1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이날 MBC는 선발투수 이광권(2.1이닝 1실점) 이후 하기룡(5.2이닝 5실점 1자책점), 정순명(1이닝 3실점)이 이어 던졌지만 박철순의 완투에 밀려 2-9로 졌다. 백인천은 3타수 1안타를 작성하면서 시즌 개막 후 2경기 타율 0.500(6타수 3안타)을 기록하게 됐다.

그런데 이어진 경기에서 타율이 3할대로 내려앉았다. 3월 31일 광주 해태전에서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해 0.333(9타수 3안타). 이어 4월 4일 청주 OB전에서 3타수 1안타로 0.333(12타수 4안타)을 유지했다(원년에는 경기가 띄엄띄엄 편성됐다).
시즌 전체 타율 추이를 볼 때 이 두 경기를 마친 뒤 타율이 그해 4할에 미치지 못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백인천은 다음날 곧바로 4할에 복귀했다. 시즌 5번째 경기인 4월 5일 청주 OB전에서 3타수 3안타를 몰아쳤다. 시즌 타율을 0.467(15타수 7안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그해 시즌 종료까지 단 한 번도 4할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44번째 경기(동대문 삼성전)에서 4타수 1안타로 마치면서 0.401까지 떨어졌을 때. 하지만 그 이후 다시 반등했고, 시즌 막판까지 줄곧 4할 1푼대와 4할2푼대를 오가는 고공비행을 펼쳤다.
페넌트레이스 1경기를 남겨둔 시점의 타율은 0.409.
10월 14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정규시즌 최종전(삼성)에서 5타수 0안타를 기록해도 시즌 타율은 0.401(252타수 101안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상 4할은 확정된 상태였다.

“오늘은 이제 쉬시죠.”
유백만 코치가 시즌 최종전에 앞서 백인천 감독 겸 선수에게 출장을 만류했다. MBC는 이날 경기에 이기나 패하나 한국시리즈에 못 나가는 상황이었다. 백인천이 출장해서 안타 몇 개 더 치나 못 치나 4할 타율과 타격왕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백인천은 출장을 강행했다. 그리고는 보란듯이 3타수 2안타를 쳤다. 삼성 선발투수 성낙수를 상대로 2회 첫 타석에서 좌전안타로 나갔고, 4회에는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6회 세번째 타석에서 우전안타를 터뜨렸다.
이날 경기에서 MBC는 9회말 대타 최정기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2-1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승리한 뒤 공교롭게도 시즌 최종전에서도 끝내기 홈런으로 이겼다. 장소도 동대문구장으로 같았고, 상대팀도 삼성으로 같았다.
백인천의 시즌 최종 타율은 0.412. 이렇게 해서 KBO 역사상 가장 높은 타율이자 유일한 4할 타율이 탄생했다.

◆ MLB, NPB에서도 이제 4할은 난공불락
백인천이 1982년 4할 타율을 작성한 뒤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42년 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도전했지만 누구도 4할 고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도 좀처럼 깨지지 힘든 '난공불락'의 기록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우리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된 NPB에서도 4할 타자를 지금까지 단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일본 역대 한 시즌 개인 최고 타율은 1986년 한신 타이거즈의 외국인선수 랜디 배스가 기록한 0.389이다.
전설적인 스즈키 이치로는 오릭스 시절이던 2000년 0.387, 1994년 0.385로 역대 2, 3위에 올랐다. 재일교포 장훈은 1970년 도에이 시절 0.383로 당시 일본 최고 타율 신기록을 작성했지만 후배들로 인해 현재 역대 4위로 밀려난 상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6명의 타자가 35차례 4할 타율을 달성한 바 있지만, 모두 1800년대와 1900년대 초반에 작성된 것이었다. 1941년 0.406을 기록한 테드 윌리엄스(보스턴 레드삭스)가 MLB 마지막 4할 타자로 남아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KBO리그는 물론 NPB와 MLB도 시즌 도중에 종종 4할을 기대하게 만드는 타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항상 시즌이 끝나면 3할대로 떨어진다. 그만큼 현대야구에서는 4할을 치기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 감독이라 스스로 타율 관리를 했다? 오해와 진실
일부에서는 “원년이었기 때문”, “일본프로야구 타격왕도 경험해봤기 봤기 때문”, “감독 겸 선수라 스스로 관리했기 때문” 등등 그럴 듯한 논리를 내세우며 백인천의 원년 4할 기록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주장은 맞지만, 일부 주장은 잘못됐다.
우선 “원년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특히 원년의 '적은 경기수'에 대한 주장은 타당한 부분이다. 1982년엔 팀당 80경기를 하던 시절이다. 오늘날처럼 144경기 체제에서는 4할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KBO리그에서 백인천보다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한 시점까지 4할을 유지한 선수는 3명 있었다. 팀 경기수를 기준으로 보면 1994년 해태 이종범(104경기), 2012년 한화 김태균(89경기), 2021년 kt 강백호(82경기)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해당 시즌에 이종범은 최종 0.393으로 마감했고, 김태균은 0.363, 강백호는 0.347로 시즌을 마쳤다.
“NPB에서 타격왕을 해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196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81년까지 20년간 NPB에서 활약했고, 1975년 퍼시픽리그 타격왕(0.319)까지 거머쥐었던 백인천은 KBO리그 투수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백인천으로선 일본의 수준 높은 투수들을 상대하다 국내 투수들을 만났으니 공략이 훨씬 쉬울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이 대전에서 박철순 투수의 너클볼을 받아쳐 홈런을 날린 적이 있어요. 너클볼이라면 우린 당시 듣도 보도 못한 마구라 다 헛스윙하는 공이었는데 말이죠. 나중에 감독님 말씀이 박철순 투구폼을 보면 테이크백을 할 때 엉덩이 뒤로 그립이 보인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당시 미국에서 야구를 배워 온 최고 투수 박철순 투수도 그런데 감독님이 국내 다른 투수들 습관을 캐치한 건 두말할 필요가 없죠.”

독립구단 연천미라클 김인식 감독의 이야기다. 체력과 타격기술에서도 앞서 있었지만 일본에서 터득한 상대 투수의 습관을 알아차리는 수싸움의 기술에서부터 이기고 들어갔다는 뜻이다.
또 하나. “감독 겸 선수라 스스로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쪽은 대체로 원년에 백인천이 팀의 80경기 중 71경기에만 출장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깊이 있게 본다면 이런 주장을 하긴 어렵다.
백인천은 그해 KBO 1호 몰수게임 패배 때문에 사실상 6경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건(?)은 8월 26일 대구 삼성전에서 발생했다. 삼성이 5-2로 앞선 4회말 1사 1·2루. 삼성 정현발의 유격수 앞 땅볼 때 삼성 1루주자 배대웅이 더블플레이를 방해하기 위해 2루에 슬라이딩을 하면서 MBC 2루수 김인식의 배를 걷어찼다. 그라운드에 넘어져 뒹굴던 김인식이 일어나자마자 친구 배대웅의 머리를 장난치듯 때렸다. 쇼맨십의 달인이었던 김인식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때 심판이 손찌검을 했다며 김인식을 퇴장시켰다. 그러자 백인천 감독이 “피해자만 퇴장을 주고 가해자는 왜 퇴장을 주지 않느냐”며 선수단을 덕아웃으로 철수시켜 항의를 이어갔다. 심판진은 결국 시간 초과로 MBC의 몰수게임 패배를 선언했다.
KBO는 백인천 감독에게 출장정지 5경기 징계를 내렸다. 여기에 5회 이전에 몰수게임이 선언됐기 때문에 야구규칙에 따라 스코어는 9-0으로 정하고 개인기록은 모두 무효로 처리했다. 그래서 백인천은 몰수게임 날 기록한 2타수 1안타도 허공에 날리고, 경기수도 1개를 날려버린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백인천의 그해 결장 경기는 사실상 3경기에 불과했다. 그 3경기 상대 선발투수는 4월 25일 롯데 노상수, 6월 3일 삼성 권영호, 8월 15일 OB 계형철. 백인천이 4할 타율을 위해 굳이 결장해야 할 만한 투수들도 아니었고, 그럴 만한 시점도 아니었다. 또한 당시엔 선발투수 예고제가 없던 시절이라 누가 선발로 나오는지 알지도 못하고 라인업을 짰던 시절이다.
백인천은 오히려 몰수게임 징계가 끝난 뒤 복귀해 남은 전경기(14경기)를 뛰었다. 시즌 막판 타율 관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껄끄러운 투수를 일부러 회피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근거없는 추측일 뿐이다.
1982년 최고 투수는 단연 OB 박철순. 그런데 백인천은 그해 박철순을 상대로 0.412(17타수 7안타)를 기록했다.
그해 다승 10위 투수 중 같은 팀 하기룡을 제외하면 OB 박철순 박상열, 삼성 권영호 이선희 황규봉 성낙수, 롯데 노상수, 해태 김성한 김용남 9명. 이들을 상대로 백인천은 0.376(109타수 41안타)을 기록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투수가 백인천을 피하고 싶지, 백인천이 피해가고 싶은 투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감독이었기 때문에 4할이 더 쉬웠던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선수는 자신만 생각하면 되지만 감독은 타자부터 투수까지 팀 전체를 놓고 신경 쓸 게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그러면서도 4할을 쳤으니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해야죠.”
김인식 감독은 ‘감독이었기 때문에 타율을 관리할 수 있었다’는 항간의 얘기에 손사래를 쳤다.
개막전 만루홈런의 사나이 이종도는 현재 대한유소년야구연맹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백인천 감독이 첫해 감독만 하지 않고 선수로도 활약한 덕분에 MBC 청룡 선수들의 프로화도 더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백인천 감독님은 그때 마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단거리 달리기나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항상 선두에 섰어요. 그걸 보고 우리 선수들도 반성을 많이 했죠. 체력도 대단했지만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도 놀랐어요. 그 시절 우리 선수들은 잘 먹지도 못했거든요. 먹어도 대충 빨리 먹고. 그런데 감독님은 천천히 엄청나게 장시간 식사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선수들도 ‘프로는 역시 먹는 것부터 잘 먹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훈련하는 루틴이나 원정 갔을 때 생활하는 것 등등 타격기술뿐만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 해야 할 마음가짐과 행동 등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보고 배웠다는 게 MBC 청룡 선수들로서는 행운이었죠.”


◆백인천 초대 타격왕과 LG 트윈스 역대 타격왕
백인천은 이로써 KBO 역사상 최초의 타격왕이 됐다. 4할도 4할이지만 MBC 청룡~LG 트윈스로 이어지는 구단에서 KBO리그 최초의 타격왕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LG는 백인천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6명이 7차례 타격왕을 거머쥐었다. MBC 시절엔 1982년 백인천이 첫 테이프를 끊은 뒤 1988년 ‘미스터 청룡’ 김상훈이 0.354로 타격왕에 올라 2명의 타격왕을 배출했다.
LG 트윈스 시대로 넘어와서는 2001년 양준혁(0.355)이 첫 타격왕을 차지했고, 2005년 이병규(0.337)와 2009년 박용택(0.372), 2013년 이병규(0.348), 2018년 김현수(0.348)가 타격왕에 오른 바 있다. 이들 중 2차례 수상은 이병규뿐이다.
백인천은 1982년 걸음마 단계에 있던 한국야구에 나침반이 됐다. 나아가 MBC 청룡과 LG 트윈스 역사에서 최초의 타격왕이라는 불멸의 타이틀을 얻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시 4할 타자가 나올 수 있을까.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타자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야구의 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이자 야구광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한 대답이다. 과거에는 투수들 수준 격차가 컸지만 현대야구에서는 선수층이 두꺼워지면서 과거에 비해 마운드 평준화가 이뤄졌다. 평범한 투수와 수준 낮은 투수가 많았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만만한 투수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4할 타율은 더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백인천은 여전히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4할을 친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영원히 마지막 4할 타자로 남을지도 모른다.
[엘팬알백] ⑨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