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운 여친'에게 이별 통보 후 당한 7시간 '공포의 스토킹'
경찰, '부실 대응' 의문에 "현장 상황 고려한 조치" 개선 약속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도대체 몇 번을 신고해야 스토킹 피해자로 인정해 주는 겁니까? 남성이라고 미온적으로 대처한 게 아니라면, 더 납득이 안 가요."
최근 전 여자친구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은 A 씨(20대) 호소다. 그는 지난달 24일 오후 1시 30분쯤부터 난생 처음 겪는 공포를 마주했다.
당일 낮 이별한 전 여자친구 B 씨(20대)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소재 A 씨 주거지를 찾아오면서다. 장장 7시간에 걸친 어처구니 없는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제가 스토킹 피해자인데…제 집에서 제가 나가라고요?"
B 씨가 처음 주거지를 찾았을 당시 A 씨는 "저러다 말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넘겼다. 그런데 어느새부터 B 씨 언행이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A 씨는 "여행 과정에서 전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 이별을 고했는데, '짐만 챙겨 가겠다. 얘기 좀 하자'며 계속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약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쿵쾅'대는 소리는 이내 A 씨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4년여 동안 교제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결국 A 씨는 문을 열어 주며 B 씨가 요구한 짐을 챙겨 줬다. 다만 B 씨는 "아직 짐이 남아 있다. 내가 챙겨 나가겠다"고 말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B 씨는 짐을 다 챙기고도 A 씨 주거지를 나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얘기 좀 하면 안 되냐" "오해가 있다"는 등 말을 하며 계속 버텼다.
A 씨는 주저 없이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A 씨 주거지로 출동해 그와 B 씨를 분리해 진술을 청취했다.
그런데 경찰은 B 씨가 아닌, A 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제 집인데, 왜 나가야 하느냐"는 A 씨 질문에 경찰은 그저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고 한다.
A 씨는 "경찰이 피해자인 저보다 여자를 보호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며 "우선 경찰이 하자는 대로 하긴 했으나 너무 억울했다"고 호소했다.
이후 경찰은 B 씨를 A 씨 주거지에서 데리고 나와 경고 조치를 취했다. A 씨에게는 피해자 등 권리 안내서를 교부했다.
112 신고 '3번' 이후 피해 벗어나…경찰 '부실 대응' 의문
A 씨는 경찰 사건 처리 과정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더 있다는 입장이다. 2차 신고 당시에도 1차 신고 때와 마찬가지로 B 씨에게 경고 조치만 이뤄졌기 때문이다.
A 씨가 112에 B 씨를 신고한 건 총 3번이다. 오후 3시 46분, 오후 5시 36분, 오후 8시 29분 각각 1번씩이다.
이 중 2차 신고는 B 씨가 경찰 경고를 무시한 채 A 씨 주거지 계단에 숨어 있다 A 씨에게 직접 들키면서 이뤄졌다.
A 씨는 "B 씨 행동이 무섭다고 느껴져 친구까지 불러 집 주변 음식점에 몸을 피해 있었다"며 "이후 집을 잠시 들렀는데, 계단에서 B 씨를 마주했다"고 전했다.
당시가 오후 5시 36분이었다. A 씨는 B 씨에게도 2차 신고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B 씨는 "집에 가겠다"고 했고, A 씨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반면 B 씨는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다 A 씨 신고를 받고 순찰에 나선 경찰에 발각됐다. 하지만 이때도 경찰은 B 씨에게 경고 조치만 취하고 귀가시켰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재차 스토킹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A 씨 주장이다. B 씨가 2차 신고 후에도 A 씨 주거지 1층 현관에 앉아 있는 등 행위를 이어가면서다.
결국 B 씨는 또 다시 A 씨에게 발각돼 A 씨 주거지 주변에서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3차 신고 시각인 오후 8시 29분 후였다.
A 씨는 "1차 신고 때 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진술을 청취한 점, 3번째 신고가 이뤄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대응을 한 점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여태 살아 오면서 가장 큰 공포를 느꼈다"며 "제가 남자라서 미온적으로 대응한 게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경찰 "'현장 상황' 등 고려한 조치"…유사 사례 방지 약속
경찰은 A 씨 주거지에서 B 씨로부터 A 씨를 분리해 외부로 데리고 나온 건 '현장 상황'과 '스토킹 범죄 대응 매뉴얼'에 따른 조치라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출동 경찰관이 협조적인 사람, 쉽게 분리 조치가 가능한 사람을 먼저 분리시킨 것 같다"며 "누가 집 주인인지까지 판단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 씨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출동 경찰관이 A 씨에게 불편을 끼치기 위해 일부러 A 씨를 데리고 나온 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스토킹 범죄 대응 매뉴얼은 △스토킹 개념 및 특성 △신고 접수 및 초동 조치 △수사 및 피해자 보호·지원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경찰이 스토킹 신고 접수 후 현장 도착 시 피해자와 스토킹 행위자를 반드시 분리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스토킹 범죄 대응 매뉴얼상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장 경찰관 판단"이라며 "현장 상황을 고려한 조치를 내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은 3차 신고가 이뤄진 뒤에야 B 씨를 현행범 체포한 점 역시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2차 신고 때 물리적인 행위가 있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졌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B 씨가 다른 곳에서 발견돼 경고만 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현장 상황이 너무 다양해 대응도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다"며 "사건 연속성 등을 면밀히 고려하는 등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kk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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