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을 3조원에 일시불로 납입''할만큼 한국을 무한신뢰한다는 이 나라

페루의 ‘3조 원급 일시 계약’이 던진 신호

최근 페루가 한국산 기갑 전력을 대규모로 도입하기로 하면서 국제 방산 시장의 시선이 남미로 옮겨갔다. 단순 구매가 아니라 1차 계약만 약 3조 원 규모로 묶였고, 결제 방식 역시 ‘일시불’에 가까운 형태로 알려지면서 상징성이 더 커졌다. 방산 거래에서 대형 계약은 흔히 분할 납부와 단계별 인도, 정치적 변동에 따른 조건 재협상이 따라붙기 마련인데, 페루의 선택은 시작부터 속도를 내는 방식이었다. 이 장면은 “한국 무기가 싸서 샀다”는 단순한 설명으로는 정리되지 않는다. 페루가 한국을 택한 이유는 장비 성능표 한 장이 아니라, 전력 구조를 어디에 맞출 것인지라는 장기 설계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페루는 K2 전차와 장갑차 등 기갑 체계를 축으로 육군 전력을 재정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2040년까지 한국과 장기적이고 사실상 독점적인 공급 협력 관계를 추진한다는 구상이 거론되면서, 이번 계약은 ‘한 번 사고 끝’이 아니라 ‘한 나라의 기갑 생태계를 한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읽힌다. 전차와 장갑차를 도입하면 훈련과 정비, 탄약과 부품, 전술 교리와 운용 인력의 양성까지 하나의 묶음으로 따라온다. 페루가 초기에 큰돈을 한 번에 걸었다는 건 그 묶음 전체를 한국 체계로 고정하는 결심에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

전력 교체의 본질은 ‘장비’가 아니라 ‘체계 표준화’

기갑 전력은 플랫폼 몇 대를 들여오는 것으로 전투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차는 수십 년을 쓰는 장기 자산이고, 한 번 선택한 체계는 부품과 정비 장비, 교육 과정, 탄약 규격, 심지어 작전 계획의 전제까지 묶어 바꾼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은 전력 교체에서 가장 큰 리스크를 ‘표준의 파편화’로 본다. 나라별로 엔진이 다르고 변속기가 다르고 사격 통제 체계가 다르면, 평시에는 비용이 늘고 유사시에는 가동률이 급락한다. 페루가 이번 계약을 단순 도입이 아니라 단계적 추가 도입과 장기 협력까지 엮어 추진하는 이유는, 기갑 전력의 표준을 한 번에 정리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페루의 선택이 시장에서 크게 읽히는 지점은 “한국 체계 중심으로 재편”이라는 방향성 때문이다. 군의 조달은 종종 정권 교체나 예산 편성 변화에 흔들리지만, 표준화를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훈련 체계와 정비 창, 부품 재고, 교육 교관까지 한 방향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페루가 2040년까지의 협력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단기 전력 공백을 메우는 접근이 아니라, 장기 운용을 전제로 시스템을 고정하는 접근임을 보여준다. 이때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표준화를 맡길 파트너가 누구인가에 대한 계산 결과로 드러난다.

여러 나라 조립형 무기에서 생긴 ‘납기 지연의 학습효과’

페루가 한국에 집중한 배경으로 반복해서 거론되는 것은 공급 구조의 단순성이다. 국제 방산 시장에서는 차체는 A국, 포탑은 B국, 엔진은 C국, 변속기는 D국에서 조달해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 흔하다. 이런 구성은 외형상으로는 ‘검증된 부품 조합’처럼 보이지만, 실제 운용 단계에서 부품 수급과 규제, 수출 승인, 부품 단종과 개량 버전 전환 같은 변수가 겹치면 납기 지연이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평시에도 한 부품이 막히면 인도가 늦어지고, 위기 상황에서는 특정 국가의 정치 판단이 곧 부품 공급 중단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전차의 성능보다 가동률이 문제로 떠오르는 사례가 반복됐다.

반면 한국은 설계와 제작, 핵심 부품 공급, 후속 군수 지원까지 한 국가가 패키지로 통제할 수 있는 비중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구조는 구매국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가 명확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납기 예측성과 운용 안정성은 방산에서 성능만큼이나 큰 가치로 취급된다. 페루가 대형 계약을 단번에 체결한 배경에는, 여러 나라를 거치는 조달 체계에서 겪을 수 있는 변수와 지연을 줄이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페루가 산 것은 전차 몇 대가 아니라, 납기와 운용을 보장하는 공급 방식 그 자체다.

K2 파워팩이 ‘장기 가동률’의 언어로 평가된 이유

전차 수출에서 가장 민감한 부품 중 하나가 파워팩이다. 엔진과 변속기는 단순 부품이 아니라 전차의 기동 성능과 유지 비용, 작전 지속성에 직결된다. 고출력 엔진과 변속기를 동시에 자체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제한적이며, 이 영역에서의 통제권은 수출 협상력과 후속지원 능력으로 연결된다. 페루가 K2 전차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파워팩과 관련한 신뢰가 중요한 변수로 작동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차는 사격 성능이 뛰어나도 고장과 정비가 잦으면 전력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특히 산악과 고지대, 열대와 건조 지형이 섞인 환경에서는 냉각과 내구, 정비 주기 같은 요소가 실전 가동률을 좌우한다.

페루가 중시한 포인트는 “최고 속도” 같은 단일 수치가 아니라, 오랜 기간 운용했을 때 유지 관리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가까웠다. 한국은 실전과 훈련 운용을 통해 정비 경험과 부품 교체 주기, 운용 데이터가 축적돼 왔고, 이 데이터는 구매국이 장기 비용을 계산할 때 근거로 쓰인다. 파워팩의 경쟁력은 결국 장기 운용 비용과 가동률로 귀결된다. 페루의 계약이 성능 비교를 넘어 장기 파트너십으로 확장되는 이유는, 이런 핵심 부품까지 포함한 유지 체계를 함께 가져가겠다는 판단과 맞물려 있다.

기술 이전과 정비 체계 패키지가 만든 ‘의존이 아닌 동맹’

대규모 무기 도입에서 구매국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기술 의존이다. 장비를 들여왔는데 정비를 못 하면 전력은 곧 멈추고, 부품 가격은 올라가며, 공급국의 정치적 판단에 군의 가동률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최근 방산 시장에서는 단순 판매보다 정비 체계 구축, 군수 창 설립, 교육과 훈련, 일부 기술 이전을 포함한 패키지가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페루가 한국을 선택한 배경에도 이런 패키지 제공 능력이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구매국 입장에서는 “장비를 사서 끝”이 아니라 “자국에서 굴릴 수 있게 만드는 과정”까지 계약의 일부로 묶어야 리스크가 줄어든다.

또한 장기 협력 구상이 나오면, 계약은 자연스럽게 개량과 업그레이드의 프레임으로 넘어간다. 전차는 센서와 통신, 전자장비의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어, 도입 이후에도 체계 개량이 필수에 가깝다. 이때 공급국이 소프트웨어와 부품, 성능 개량 로드맵을 안정적으로 제시하면 구매국은 전력 설계를 장기적으로 고정할 수 있다. 페루가 2040년까지의 협력을 거론하는 것은, 단순히 물량을 늘리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업그레이드와 후속 지원까지 포함한 장기 운용 프레임을 한국과 묶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래서 이번 계약은 ‘구매’라기보다, 페루 육군의 기갑 전력 운영 방식 자체를 한국식 체계로 재구성하는 거래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미가 한국 방산을 새 기준으로 삼는 흐름을 굳히자

페루의 3조 원급 대형 계약은 한국 무기 한두 품목의 수출 성과를 넘어, 공급 구조와 후속지원, 핵심 부품 통제, 표준화 전략까지 포함한 ‘운용 가능한 전력 패키지’가 국제 시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확산되고 있다. 다국적 조립형 조달이 납기와 부품 수급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누적된 시장에서, 한국처럼 단일 국가 체계로 설계 생산 군수 지원을 묶어 제공하는 모델은 구매국의 리스크를 낮추는 선택지로 부상한다. 페루가 장기 독점 협력까지 검토하는 흐름은 전차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의 표준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에 대한 결단이며 그 결단이 ‘일시불’이라는 강한 메시지로 표현됐다. 이제 이 흐름이 단발성 사건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장기 운용과 개량까지 포함한 신뢰의 기록을 더 두껍게 쌓아 남미 시장에서 한국 방산의 기준을 굳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