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 졸업, 억대 연봉 받다가 모든걸 포기하고 한국 가수 도전한 자의 최후

미국 애틀란타에서 태어난 에릭남은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보스턴 칼리지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성실하고 활발한 학생으로 이름을 알렸고, 아시안 아메리칸으로는 드물게 학생회장까지 맡았다.

졸업 전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 뉴욕 본사에 합격했고, 당시 제시된 연봉은 한국 돈으로 약 1억 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억대연봉의 제안을 보류하고 1년을 유예했다.

성공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 선택의 끝에서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잠깐, 그의 과거로 돌아가보자.

에릭남은 학창 시절, 상류층 백인들이 대부분인 학교에서 자랐다.

반 안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는 외모로 인해 놀림을 당했고, 어떤 친구들은 대놓고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

그때마다 애써 밝게 웃고 넘겼지만, 그 모든 감정을 혼자 삭이며 버텨야 했다.

그 힘든 시절, 에릭남은 주눅들기보다 리더가 되는 길을 택했다.

반장, 학생회장을 거치며 그곳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다.

무대 경험은 모두 학교에서부터였다. 댄스 동아리, 음악 프로젝트 같은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대학 시절, 미국 내 아시안 청년들을 위한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1,000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직접 사회를 봤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자신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노래할 때 가장 진심을 느낀다는 것을.

그 무렵 한국에서 열린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2’에 도전했고, 최종 Top5까지 오르며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이미 안정적인 커리어, 억대 연봉,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대를 택했다. 단지 그곳이 자신에게 더 진짜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데뷔 이후에도 현실은 쉽지 않았다.
15개월 동안 그를 찾는 방송은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리포터로 일했고, 다른 가수들의 코러스와 가이드 보컬도 맡았다.

우울증과 번아웃이 찾아왔고, 한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바람과, 부모님에 대한 믿음이 그를 다시 세웠다.

이후 에릭남은 예능에서 재치 있는 진행으로 주목받았고, 해외 스타들과의 인터뷰로 인지도를 높였다.

그러나 음악을 향한 마음을 접지 않았다.직접 곡을 쓰기 시작했고, 북미와 유럽 투어를 거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첫 영어 앨범은 그 도전의 연장선이었다.

수년 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노래하던 시절과는 달랐다.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자신의 언어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에릭남의 아버지는 “무엇이 되라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성공이란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가르쳤고, 에릭남은 그 말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도 틈틈이 봉사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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