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는 스타가 되길 원치 않는다 [뉴스룸에서]
감정이입한 사람들이 서사 만들어
해피엔딩 위해서 관심 덜어줄 때

늑구는 동물원 철조망 아래 흙바닥을 파낼 때 무슨 감정에 지배당했을까. 짐작건대 공포였을 테다. 늑구와 가족이 사는 동물원인 오월드의 이관종 원장은 "다른 늑대가 아파서 격리 칸에 옮겨 넣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사육장 안에 들어오자 늑구가 겁을 먹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두 살짜리 수컷 늑대는 자연이 아닌 사람 손에 키워져 야생성을 잃었다지만 본능적으로 인간을 잠재적 포식자로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침범하자 두려움에 잠식돼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9일간 이어진 늑구의 탈출극은 큼지막한 이슈 사이에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전쟁과 정쟁, 민생경제의 어려움 등 온통 우울하고 답 없는 뉴스에 지친 이들은 늑대의 행방을 다룬 속보는 꼬박꼬박 챙겨봤다. 지역민의 안전만큼 늑구의 건강도 걱정했다.
동물원 우리를 벗어난 늑구는 하루하루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뒤를 쫓는 100명 넘는 경찰 기동대와 특공대 대원, 길목마다 설치된 덫과 먹이틀, 열화상 카메라로 늑대의 체온을 감지하려던 드론들. 그리고 원초적 생존 본능을 발휘하며 추격자들이 쳐놓은 포획망을 피해 신출귀몰했던 늑대. 인간의 감시를 받으며 옴짝달싹 못하고 무기력하게 갇혀 지내야 했던 늑대는 동물원을 탈출한 뒤 자유를 향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늑구의 서사는 늑구 홀로 써내려 간 게 아니었다. 그의 처지에 감정이입한 사람들이 공저자였다. 우리는 저마다의 철창 안에서 감시받으며 산다. 탈출한 늑구에게서, 사람들은 애써 눌러온 자신의 마음을 봤다. 괴로운 출근길에 핸들을 틀어 교외로 무작정 떠나버리고 싶은 직장인, 자신을 평가하는 면접관 앞에서 번번이 마음이 움츠러들었던 청년, 일과 육아 모두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쳐 간신히 버티고 있는 부모. 이들은 늑구의 행동을 자신의 경험 안에서 해석하려 했다. 이 같은 시선을 담은 각종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과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늑구는 포획돼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왔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오월드가 재개장하면 보러가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고, 동물원은 늑구에게 이름표 등 표식을 달아 관람객이 늑대 무리 사이에서 이 특별한 동물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대전관광공사에는 늑구 굿즈(기획 상품)와 캐릭터, '늑구의 모험' 동화책, 늑구 발바닥 빵, 한정판 티셔츠 등을 만들어달라는 시민들의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늑구에게 새드엔딩이 될지 모른다. '시선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며 탈출했다가 잡혀온 늑대가 더 큰 관심을 받으며 스타가 되길 원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이름표를 붙인 늑구가 이전보다 더 많은 시선에 포위되거나 이야기가 상품으로 만들어져 소비되는 건 그를 응원했던 사람들이 바랐던 결론도 아닐 테다.
늑구는 결국 동물원 주변을 맴돌다 붙잡혔다. 엄마와 아빠, 여동생이 있는 공간에서 끝내 멀리 달아나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늑구가 유독 돋보이는 동물원의 볼거리로 소비되지 않고 가족 곁에서 이전보다 자유롭고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모두에게 해피엔딩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늑구에게 쏠렸던 관심을 조금 거두는 것 아닐까.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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