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시작해 사업에 도달하다, 주류 사업가 김남일 원장

의사가 술을 즐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놀라운 건, 주류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수입사 ‘스페이스컴퍼니코리아’의 대표가 가정의학과 의사라는 사실이다.단순히 술이 좋아 취미로 시작했다고 하기엔, 김남일 원장의 사업 성과가 심상치 않다.
ⓒ Den
김남일
스마트가정의학과의원 원장
(주)스페이스컴퍼니코리아 대표

인터뷰에 앞서, 직업에 대해 먼저 묻고 싶다

부산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한다. 동시에 주류 수입사를 운영하며 세계 각종 주류를 수입하고, 위스키와 코냑을 주로 판매하는 보틀 숍과 몰트 바도 운영한다.

‘본캐’와 ‘부캐’를 구분하기 무색할 정도로 두 분야 모두 규모가 큰 직업이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의사 생활은 어느 정도 정해진 패턴을 반복하는 삶이다. 개원의 5년 차인 어느 날, 삶을 돌이켜봤다. 바쁜 일상에 쫓겨 열심히 살아왔는데, 막상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에서 위안을 얻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본 여행에서 우연히 한 몰트 바에 들렀다. 그 바는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곳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바 주인의 술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깊었고, 흔치 않은 주류도 놓치지 않고 전시되어 있었다. 단순히 술만 마시는 것을 넘어 분위기와 문화까지 접하는 곳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꼭 맛보고 싶은 주류를 한두 잔씩 음미할 수 있는, 그런 바가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몰트 바를 시작했다.

의사라는 본업과 전혀 다른 일을 갑자기 시작했다

딱히 깊이 고민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웃음) 처음엔 그냥 작은 바에서 손님들하고 가볍게 이야기 나누면서 나도 마셔보고 싶은 술을 맛보려는 생각이었다.

장 퓨 오다쥬 ‘한복’ 에디션. 김남일 원장이 라벨을 직접 고안했다. ⓒ Den

지금은 주류 수입사를 이끄는 대표가 됐으니 가볍게 시작했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여기까지 도달한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몰트 바를 오픈한 건 2019년이다. 시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막상 운영하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졌다. 생각보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술 종류가 너무 적었다. 처음 시작할 당시에 위스키 주종은 그나마 몇몇 있었지만, 코냑은 정말 유명한 소수 브랜드를 제외하곤 찾아볼 수 없었다. 수입되길 막연히 기다렸는데, 아무도 코냑을 수입할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수입하기 위해 무작정 주류 브랜드사에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설득한 끝에 한 브랜드의 주류를 수입하게 됐다.

브랜드사와 소통은 됐는데, 막상 무역업에 대한 경험이 없어 무역업을 처음부터 독학할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회사 이름으로 첫 주류를 수입했다. 별다른 홍보 방법이 없어 SNS에만 포스팅했는데, 술이 수입되기만을 기다린 마니아가 많았는지 주류가 반입되기도 전 예약 판매만으로 품절이 됐다. 첫 수입의 성과에 만족하자 욕심이 생겼고, 차차 거래 브랜드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말은 쉽지만, 그 안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위스키나 코냑은 와인과 달리 한두 잔만 마신 뒤 보관할 수 있다. 그래서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빠른 시간에 여러 주종을 접할 수 있다. 물론 평소에도 주류 맛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에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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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외의 삶을 살면서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걸 느낀다. 삶의 대부분을 진료실에서만 보내면 병원 일에 신경이 집중되어 스트레스가 커진다.

삶의 영역, 생활 공간을 확장할수록 마음도 넓어지는 것 같다.

명확히 다른 두 가지 삶을 사는 셈이다.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는지, 일상이 궁금하다

일단, 의사의 삶은 딱히 얘기할 게 없다.(웃음) 대부분 의사가 그렇듯, 평일 오후 6시까지 병원 진료를 본다. 퇴근 후부터는 주류 관련 업무를 시작한다. 수입사 사무실이나 보틀 숍, 몰트 바로 이동해 일하는데, 최근엔 수입사 업무가 많아 보틀 숍과 몰트 바에 방문하는 횟수는 다소 줄었다. 주말에는 최대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두 일이 각각 방해가 되지 않도록 병원에선 온전히 진료와 관련된 일만 한다. 주류 관련 일은 퇴근 이후에 집중적으로 하고 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전혀 다른 업종인데, 두 일이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나?

내 경우엔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진료실에서 오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적의 말만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몰트 바에선 병원과는 전혀 다른 일상의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과 정서를 나누다 보니 이게 오히려 나에겐 힐링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병원 밖의 삶을 살다 보니 마음의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원에서도 환자와 진료 관련 이야기와 더불어 일상도 함께 나누고 공감했는데, 오히려 환자들도 진료에 더 만족했다. 여러모로 긍정적 시너지가 일어난다고 느낀다.

김남일 원장이 운영하는 보틀샵 ‘스페이스샵’ ⓒ Den

취미를 직업으로 가진 셈인데,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나?

국내에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주류를 들여와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 있다. 내 판단과 선택이 증명될 때 가장 짜릿하다.

부캐의 삶에서 상업적 가치가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글쎄, 상업적 가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부캐가 꼭 상업적일 필요는 없지 않나. 기본적으로 부캐라는 것은 ‘본인 만족’에서 시작한다. 본인이 만족하는 선에서 기준을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부캐’라고 정한 삶에서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인이 정한 부캐, 취미의 본질이 ‘내가 만족하는 것’이라면 대중의 니즈를 맞출 필요가 없다. 금전적 이득은 적지만 본인이 만족한 것만으로도 목적을 이룬 것이다. 나는 몰트 바를 처음 계획하면서 나뿐 아니라 고객의 만족도 원했기 때문에 상업적 부분도 고려했고, 취미를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상업적 가치에 매몰되면 본질을 잊기 쉽다. 본인이 부캐의 삶에 어떤 가치를 두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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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에게 주어진 객관적 시간은 같지만, 주관적 시간은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잠깐의 자투리 시간이라도 활용한다. 시간이 없을 땐 밥을 먹으며 회의를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있다면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사용할 수 있다.

두 가지 삶을 병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나?

의사분들 중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수입사에서 시음회를 진행하다 보면 의사들도 많이 찾아온다. 수입사 일을 할 때는 가급적 의사라는 직업을 밝히지 않는데, 또 어떻게 알고 오는 사람이 생긴다.(웃음) 오셔서는 어떻게 주류 수입을 시작하게 됐는지 등 의사로서 질문을 많이 한다. 행사의 본질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 최대한 행사가 끝난 후에 설명을 드리는 편이다.

부캐의 삶을 살고자 하는 독자에게 조언을 하자면?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일상이 지겹고 힘들어 탈출구가 필요한 건 아닌지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료를 보는 게 힘들어 하루 시간을 내 골프를 치러 가는 사람이라면, 골프가 진정 열정을 가질 만한 취미가 되긴 어렵다. 취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긍정적인 마음이 동기가 되어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계속하다 점점 좋아져 열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또 이런 사람도 처음부터 큰돈을 투자해 취미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건 성급한 결정일 수 있다. 공간을 마련하는 건 여러모로 큰 투자다. 어느 정도 직간접적 경험을 많이 해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있나?

최근 들어 위스키는 일반인도 많이 즐기는데, 코냑은 아직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코냑 시장 자체가 상업화가 더디고, 브랜드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좋은 주류를 많이 수입해 우리나라에서 코냑 시장의 선구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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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전 고민할 것들

➀ 공간의 목적을 명확히 하라

취미만을 위한 공간인지, 상업적 공간인지 명확히 정하고 구하는 게 좋다. 본인의 취미만을 위한 공간이라면 선택의 고려 사항이 많이 줄어든다. 상업 공간이라면 공간에 목적을 부여해 인테리어도 해야 한다.

➁ 직간접 경험을 많이 해보라

추상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간까지 마련하는 건 성급한 선택일 수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최대한 많이 경험하면서 공간이 꼭 필요한지 결정하는 게 좋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6월호
에디터 정지환(stop@mcircle.biz)
사진 송승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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