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공립 도서관의 유일한 한국인 라이브러리언, 유희권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교포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 그 네 번째로 소개해 드릴 분은,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25년째 근무 중인 한국인 유희권 선생님입니다. 그의 인생과 이민 생활, 앞으로의 꿈을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제 이름은 유희권(Yoo, Hee-Gwone)입니다. 뉴저지주의 올드 타판(Old Tappan)이라는 작은 타운에 살고 있고, 직장은 뉴욕 맨해튼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한 곳인 뉴욕 공립 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입니다. 올해로 25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의 유일한 한국인 라이브러리언, 유희권 씨 ⓒ유희권

Q.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삶을 정착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3년에 저는 러시아학을, 아내는 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함께 뉴욕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후, 본국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998년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지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학업의 방향을 실용 학문이라 할 수 있는 도서관학으로 전환하여 뉴욕시립대학 대학원(Library Information Science)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마쳤고,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인턴십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 ⓒ조은정

Q.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특히 언어 장벽을 극복했던 노하우가 있다면요?

제가 뉴욕에 도착한 이후 30년 이상 지속하는 루틴이 바로 뉴욕 타임스(이하 NYT) 구독입니다. 인터넷이 없었던 예전에는 세상 모든 정보가 신문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NYT는 영어를 습득하기 위한 최고의 도구였을 뿐 아니라 한 분야에만 머물기 쉬운 시야를 세계적으로 넓히는 창이었습니다. 최신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지요. 러시안 스페셜리스트이자 라이브러리언인 저는 NYT를 통해 세상 모든 문화를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 열람실 ⓒ조은정
뉴욕 공립 도서관 열람실 ⓒ조은정

Q. 누구나 방문하고 싶어 하는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한국분이라니 참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이자 유일한 근무자인데, 어떠한 자부심을 느끼는지요?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인턴십을 하던 시기 슬라브 및 발트 지역(Slavic & Baltic Division) 부서 담당 큐레이터 에드워드 캐스넥(Edward Kasinec)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추천으로 졸업 후 정직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고요.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분은 제게 러시아 관련 서적은 물론 그곳의 문화, 예술, 철학을 가르쳐 주며 대학에서 공부한 것보다 더 깊고 넓은 학문적 차원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시안 부서에 계셨던 한국인 근무자 한 분이 2003년경 은퇴하신 후로는 이곳 중앙 연구 도서관, 특히 러시안 부서가 생긴 1899년 이래 제가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학자나 정치인들이 뉴욕 공립 도서관을 견학할 때 늘 도서관 안내를 도맡아 합니다. 참 신나는 일인데요, 한국어로 자신 있게 뉴욕을 소개하고, 그에 관한 문화와 역사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제가 근무하는 뉴욕 공립 도서관의 시스템을 자부심을 갖고 안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러시아의 에르미타쥐 극장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뉴욕 공립 도서관이 소장한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컬렉션을 발표하는 유희권 씨 ⓒ유희권

Q.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2010년 5월 어느 날, 제가 일하고 있던 부서에 한 러시아 학자가 찾아와 도서관 3층 로비에 진열된 동상의 제작자 이름이 잘못 표기되어 있으니 정확한 이름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Water Nymph(물의 요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던 동상은 “프랑스 작가로 추정된다”는 라벨과 함께 수십 년간 한자리에서 수많은 방문객을 맞이했었습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 동상은 1878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은 러시아 장인 취조프(Matvei Afanasevich Chizhov, 1838-1916)의 작품이었습니다.

레녹스(Lenox) 도서관(뉴욕 공립 도서관의 전신) 창시자의 조카가 파리 여행 중에 구매하여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록이 상실되고 동상은 마모되어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채 오랜 세월 전시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찾은 결정적 증거는, 동상의 받침 뒤편에 희미하게 새겨진 작가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어 정확한 이름표를 붙여주었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현재는 작가 ‘취조프’와 함께 <резвушка(frolicsome girl, 연못 위에 뛰노는 뮤즈)>라는 분명한 타이틀을 기재한 상태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는 방문객들은 드디어 정확한 이름이 밝혀진 동상의 발등을 어루만지며 행복을 기원하기도 합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을 방문한 교수에게 뮤즈 동상의 발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설명하는 유희권 씨 ⓒ유희권

두 번째 에피소드는 소설 <롤리타(Lorita, 1957)>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Vladimirovich Nabokov, 1899-1977)의 아들인 드미트리 나보코프(1934-2012)가 아버지의 유물을 도서관에 팔기 위해 1989년 방문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도서관의 버그 컬렉션 큐레이터인 로드니 필립(Rodney Phillips)은, 나보코프가 말년을 보냈던 스위스 몽트뢰(Montreux)를 두 차례 방문하여 그의 유산과 유물을 사들였습니다. 도서관에서 러시아 컬렉션의 스페셜리스트로 일하고 있던 저는 궁금했습니다. 왜 나보코프는 미국 코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스위스 몽트뢰로 가서 말년을 보냈고, 결국 그 땅에 묻혔는지 말입니다.

2019년 5월 제가 몽트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호텔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나보코프가 묵었던 호텔(Fairmont Le Montreux Palace)의 6층 스위트룸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마치 나보코프의 ‘한탄’을 들어볼 수 있을 것처럼 긴장되기도, 흥분되기도 하던 순간이었습니다. 호텔 로비로 다시 돌아와서 호텔 매니저랑 대화를 나눴는데, 이 호텔을 방문하는 많은 러시아인들이 “그 많은 나보코프의 유작과 자료들은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매니저는 자기도 나보코프의 유작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난처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자료들은 제가 일하고 있는 뉴욕 공립 도서관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니, 매니저가 놀라면서, 이제부터는 투숙객들에게 정확하게 답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7년을 보냈던 스위스 몽트뢰의 그란즈 호텔 6층 스위트룸 앞에 걸린 사진들 ⓒ유희권

왜 나보코프는 이곳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을까요? 나보코프의 전기 작가는 “아마도 그가 러시아를 떠나기 전 살았던 고향을 그리워하여 고향과 흡사한 이곳 스위스의 몽트뢰를 그의 마지막 장소로 택하지 않았을까?”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보코프가 천연의 알프스산맥이 지척에 있고, 앞쪽으로는 르망 호수(Lake Geneva)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으며, 마을을 휘감고 도는 꽃길(Chemin Fleuri) 위에는 야자수가 심겨 있는 이 지상 낙원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매일 출퇴근을 하시면서 전 세계에서 뉴욕 공립 도서관을 찾아 끊임없이 몰려오는 방문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뉴욕은 가장 여행해 보고 싶은 도시로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요?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나 건축물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월등한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뮤지컬이 공연되는 브로드웨이도 있고, 화려한 타임스스퀘어와 빈티지한 소호를 꼽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인종이 다 같이 어우러져 살면서 삶과 문화의 ‘다양성’을 이루어 낸 도시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 열람실 입구에 새겨진 존 밀턴(John Milton)의 경구 ⓒ유희권

이는 프랑스인들이 갖고 있던 ‘톨레랑스(tolérance)’이기도 합니다. 톨레랑스는 먼 옛날 강성한 제국을 이룬 로마인들의 ’보편성‘이기도 하며, 수천 년간 내려온 기독교인들의 인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뉴욕을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일하는 뉴욕 공립 도서관도 ‘People’s Palace’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지에 거주하는 뉴요커는 물론이고 유럽인, 아시아인, 중동인 등 다양한 인종과 기독교인, 불교인, 힌두교인, 유대인 등 여러 종교인 모두에게 열려 있어 매일 개관부터 폐관까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도서관을 방문합니다. 그 수로 따지면 1년에 대략 2,500만 명 정도입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아,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단순하지만 당연한 행복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 ⓒ조은정
뉴욕 공립 도서관 ⓒ조은정

Q. 이직 한 번 없이 한 직장을 25년간 근무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책 속에 묻혀 사는 상당히 지루한 직업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일 뉴욕 공립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기대감으로 들뜹니다. 책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료를 통해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라이브러리언의 열정을 느낍니다. 저는 그 열정을 따라 고서들이 소장되어 있고, 명작을 만들어낸 작가들이 활동했던 건물과 장소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의 시인 호레이스(Horace)가 말한 ‘카르페 디엠’ 아닐까요?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오늘을 선택하고 다음 날을 가능한 한 적게 신뢰하라)! Seize the day!”

뉴욕 공립 도서관의 굿즈 ⓒ조은정

Q.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박학다식함과 뛰어난 언변에 저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데요, 라이브러리언으로 일하시면서도 뉴저지주의 한인 커뮤니티 센터에서 무료로 유럽 역사 강의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지금껏 지속하고 계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이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은퇴 후에 하려고 계획했는데, 현직에 있을 때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 바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논하고 잘 몰랐던 문화를 더듬어 찾으며, 이를 통해 깨달은 바를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전달하는 일에 매우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길 위의 인문학: 행복을 찾아서’라는 강의 제목으로 지금껏 제가 여행했던 도시들과 건물, 작품, 그곳에 살았던 인물들에 관해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실감 나는 이야기를 전하면 수강생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강의를 마칠 때 수강생들의 힘찬 박수 소리를 들으면 그들도 저와 같이 강의를 즐겼다는 확신이 들어 뿌듯하고 행복하고요.

뉴욕과 뉴저지주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예술인들에게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의 희귀 작품을 설명하는 유희권 씨 ⓒ유희권

Q. 집에 멋진 서재를 꾸며 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가족의 반대는 없으셨을까요? 집 안의 도서관은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집 안에 꾸민 ‘작은 도서관’은 아내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Conference, Virtual Study, Group Meeting, Job Interview 등의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자녀들도 서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략 2천여 권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 중 1/3은 한국어, 1/3은 영어, 그리고 나머지는 러시아어 서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중설계』에서 “내 삶의 세 가지 기둥은 침묵과 전례, 그리고 책뿐이었지. 책의 목소리는 때로는 귀를 피곤하게 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 머리를 가득 채우는 그것의 음색을 항상 좋아했지. 왜냐하면 그것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들의 한탄이거든…”이라고 고백하는 플라시드 신부의 대사가 곧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해도 좋을 듯합니다.

유희권 씨의 서재 ⓒ유희권

Q. 여행지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과 앞으로 가실 곳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또,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지만, 때로는 학회 콘퍼런스 혹은 도서관 관련 프로젝트로 혼자 러시아, 핀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아프리카 남쪽의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다가오는 6월에는 아내와 같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갈 계획입니다. 그곳에서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의 자취와 포르투갈의 흥망성쇠가 담긴 역사를 즐겨보려고 합니다.

제 여행지 선택 기준은 이렇습니다. 먼저 인류사의 고전을 만들어준 이탈리아 도시 여행이 우선입니다. 참고로 그리스 여행은 후순위인데요, 그리스의 철학과 사상을 로마인들이 흡수하고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계몽과 자유, 민주주의의 사상을 인류에게 가져온 프랑스의 여러 도시들, 그리고 오늘날 세계 공용어 영어의 근원지가 되는 영국의 도시들, 이어서 독일,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그 후 러시아를 포함한 북유럽 순으로 여행하려고 합니다. 즉 인류 문화사의 흐름에 따른 여행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러시아 국립 미술관 방문 중 유희권 씨가 촬영한 취조프의 흉상 ⓒ유희권

여행하는 목적은 플라시드 신부가 고백했던 것처럼 ”자유로운 인간들의 한탄“을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벽 뒤에서, 또는 무덤에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에 깃든 장인 정신과 그곳에 살았던 인물들의 감춰진 이야기와 사상과 철학이 후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거대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풍경도 좋지만, 인류의 행적이 남아 있는 도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7년을 보냈던 스위스 몽트뢰의 그란즈 호텔 ⓒ유희권

예를 들면,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위대한 그림을 보면서 조각의 거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1508-1512), 훗날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바티칸에 왔다가 천장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를 보았을까, 아니면 그냥 지나쳤을까? 등을 상상해 봅니다.

2015년 이탈리아 베니스에 갔을 때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바로 공동묘지였습니다. 베니스를 이루는 수많은 섬 가운데 하나인 산 미카엘 섬(Isola di San Michele)은 공동묘지로 사용됩니다. 그곳에는 발레 루시(Ballets Russes, 러시아의 발레단, 1909-1929)를 창단한 러시아 발레 거장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 1872-1929)가 잠들어 있습니다. 디아길레프는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음악을 공부했지만 피아노에 소질이 없어 실망이 컸다고 합니다. 친구의 소개로 여러 예술인과 어울리다가 잡지 <Mir Iskusstva>(1899-1904)를 창간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고, 그 후 아티스트를 위한 전시회를 러시아와 파리에서 연이어 기획하면서 일약 ‘임프레사리오(impresario)’로 예술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무덤 앞에서 ⓒ유희권

러시아의 발레가 진부하다고 느꼈던 세르게이는 당시 유명한 발레리나들을 데리고 파리로 가 발레 루시를 창단했고, 파블로 피카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니진스키 등의 화가, 음악인들이 그와 함께 일하게 됩니다. 세르게이의 막대한 영향 아래 발레 루시에서 일했던 무용가와 예술인들은 그의 사후 파리와 몬테카를로, 그리고 뉴욕으로 흩어져 새로운 발레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만큼 러시아 문화사에서 디아길레프는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에는 그와 관련된 자료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러시안 스페셜리스트로서 자연스럽게 그의 유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베니스에 묻힌 그를 찾아가 자유로운 영혼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여행의 목적지도 그의 무덤으로 정했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 ⓒ조은정

Q. 앞으로 계획하신 삶이 있나요?

저는 앞으로 10여 년을,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러시안 스페셜리스트로 도서관과 이용자들을 위해 일하고, 여행하면서 느낀 행복을 글과 강의를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 삶과 자취가 제가 속한 커뮤니티에 ‘반향’이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조은정
ⓒ조은정

사진 제공 | 유희권
인터뷰·사진 |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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