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500여 명 24시간 총파업 "사장 선임 다시 하라"
"이사들과 무자격 지원자들, '개구멍' 통해 이사회 열어"
KBS 사측"불법행위 민·형사상 책임면할 수 없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KBS 이사회가 차기 사장 후보 임명제청 절차를 진행한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1일 총파업을 진행했다. 7년 만의 집단행동에 나선 KBS본부는 이날 쟁의권을 얻은 이래 첫 '파업'에 나섰고, 앞으로 투쟁 수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이하 'KBS본부')는 이날 '무능경영 심판, 공영방송 KBS 사수를 위한 쟁의행위 투쟁 지침'에 따라 야간 당직, 교대 및 시차근무자, 조출자 등 예외 없이 0시부터 24시까지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총파업 여파로 KBS의 일부 뉴스 프로그램은 재방송으로 대체되거나 축소 편성됐다.
전국에서 모인 KBS본부 조합원 500여 명은 이날 KBS 이사회의 사장 후보 면접이 진행되는 본관 회의실로 통하는 길목 곳곳에 자리했다. 사측은 이를 막기 위한 청경 등을 대거 투입했고, 회의실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진입로를 통제했다.
여권 KBS 이사들은 이날 9시45분 시작이 예정된 이사회보다 2시간 전 출근해 이사회장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KBS 박장범 앵커, 박민 사장, 김성진 방송뉴스주간까지 3명의 후보자에 대해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각 위치의 KBS본부 조합원들은 “단협(단체협약) 쟁취 결사투쟁 사장선임 다시하라” 등의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이어갔다.
이사회 시작을 앞둔 오전 9시경 KBS 본관 앞에선 92개 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의 'KBS 사장 불법선출 중단 및 위법적 이사회 퇴진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권영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위원장과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등 언론계 원로, 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언론 단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관계자들이 “무자격 이사들의 시민참여 배제한 위법한 사장선임은 원천무효”라 촉구했다.
오후 6시께 후보자 면접을 마친 KBS 이사회가 표결을 앞둔 시점에는, 소위 '민주광장'으로 불리는 KBS 본관 로비에 이 시각까지 각 현장을 지키고 있던 KBS본부 구성원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조애진 KBS본부 수석부본부장은 “가방을 가방이라 하지 못하고 명품을 명품이라 못하는 것이 끝끝내 옳다고 주장하는 박장범, 5공 시절로 되돌리려는 박장범 앵커가 끝끝내 본인이 옳다고, 부끄럽지 않다고 한 모양”이라고 했다.
조 수석은 “오늘 단 한 명도 제대로 당당하게 걸어서 이 길을 지나가지 못했다. 쪽문, 골목만 골라서 간신히 입장하고 아직도 퇴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6~7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2500원(월 수신료)으로 가정 꾸리고 프로그램 만들고 뉴스 만드는 사람들의 운명이라면, 숙제라면 기꺼이 이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는 현장의 취재기자들에게 “불법, 위법, 얼룩진 사장 선임 과정에 기자님들 참 괴로우셨을 것 같다. 얘기 안 되는 경영계획 포부를 듣고 있자니 괴로우셨을 것 같다”며 “그 기사를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제 마음도 찢어졌다”고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박상현 KBS본부장은 “이사들은 물론 무자격자인 지원자들까지 아침 일찍, 혹은 소위 '개구멍' 통해 이사회를 열고 면접을 봤다. 무엇이 두려웠는지 저희가 알 것 같다”며 “우리가 하고자 하는 질문, 그것을 답할 수 없었던 자신들 처지가 두렵고 겁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박 본부장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옆에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힘내서, 단협을 쟁취하고 공정방송을 실현하는 승리를 얻을 때까지 함께 하자”고 했다.
KBS 본부의 대규모 집단 행동은 지난 2017년 총파업 이래 7년 만이다. 이들은 앞선 사측과의 단체협약 교섭 결렬에 이어 노동위원회 조정 중지 결정을 받았고, 7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92.76%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전체 조합원 2085명 가운데 84.12%에 해당되는 1754명이 참여한 투표였다. KBS노동조합의 쟁의행위 투표 또한 89% 찬성(투표율 74%, 재적 대비 66%)으로 가결됐으나, 해당 노조는 별도 행동에 나서는 대신 “개혁적인 사장의 선출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KBS같이(가치)노조의 경우 3인 후보 면접을 앞둔 22일 “2027년까지 회사를 이끌고 가야 할 자리에 이런 졸렬한 인물들만 모인 것이 수치스럽고 비통하다”며 “지난 1년간 회사를 망친 박민, 박장범, 김성진 세 후보는 염치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자진 사퇴하라”고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선 박장범 앵커를 “저널리즘을 포기한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변호하는 듯한 저 언급으로 KBS 전체를 조롱의 대상으로 빠뜨렸다”며 “'남조선중앙TV'라는 멸칭이 과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박민 사장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이사회 의결을 얻어낸 조직개편안도 주요 뇌관으로 남아 있다. 사실상의 시사교양국 폐지와 기술본부 축소 통폐합이 골자인 조직개편안에 최근 제작1본부 팀장 16명, 기술본부 팀장 53명이 연이어 보직사퇴했다.
차기 사장으로 임명제청된 박장범 앵커는 면접에서 “여기 계신 이사님들께서 통과시켜주신 안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존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조직 개편의 목적이 과연 뭔지, 이걸 위해서 이런 조직개편을 하는 건 좀 잘못됐다라고 생각이 되는 몇가지 사항이 있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해 여지를 남겼다.
이날 KBS 이사 11인 중 여권 이사 7인은 야권 이사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을 진행했고, 1차 투표 만에 과반 득표한 박장범 앵커를 사장 후보자로 임명제청했다. 사장 선임 절차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표결에 불참한 야권 이사 4인은 24일 이사회 의결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전현직 야권 이사 5인이 '2인 방송통신위원회'의 KBS 이사 추천이 위법하다며 제기한 임명 효력정지 가처분 및 취소 소송도 남아 있기에, 법원 판단의 시점과 내용이 KBS 앞날을 가를 수 있다.
한편 KBS 사측은 22일 사내 게시판에 총파업 관련 입장으로 “수신료 분리고지 재정위기 상황에서 파업은 KBS를 위태롭게 한다”며 “이런 시기에 파업 상황에 놓이는 것은 국민 정서와 반대되는 것으로 공영방송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과 함께 수신료 분리고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노조법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이 면책되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일체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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