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기다리는 분홍빛 장미들… 가시 찔림은 숙명이었다

조유미 기자 2026. 4. 1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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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가정의 달 앞둔 장미 농장
재배·수확 일일 체험기
지난 7일 경기도의 한 장미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본지 조유미 기자(오른쪽)가 농장주 이수정씨와 함께 꽃을 수확하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장미를 꺾으려는 자, 그 가시도 존중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그러나 실제 가시에 찔리면서 가시를 존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앗, 따가워. 아, 따가워. 아야.”

나도 모르게 외쳐댔다. 농장주 이수정(46)씨가 “가시만 없어도 좀 나을 텐데”라며 “어쩔 수 없다. 16년 차인 나도 찔린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장미 농사’를 짓고 있다. 이씨의 손등과 손가락에는 붉은기가 도는 점 형태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가시에 찔려 생긴 것이다. 상처는 숙명이었다.

가정의 달 5월은 전통적으로 화훼 업계 대목이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 장미를 선물하는 로즈데이(5월 14일), 성년의날(5월 18일) 등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 해 팔리는 절화(折花·가지째 꺾은 꽃) 약 3억7900만송이 가운데 장미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0%로 가장 많다. 하지만 농가 표정은 밝지 않다. 고물가 속에 꽃이 ‘사치품’으로 인식되는 데다, 중동 전쟁 여파로 비료 값과 난방비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의 장미 농장 ‘하엘 장미’를 찾아 농가 이야기를 들으며 재배와 수확 과정을 체험했다.

수확 시기가 된 장미. 이 농장에서는 매일 1000송이의 장미를 수확한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농장주 이수정씨가 장미 줄기를 아래로 꺾는 '절곡' 작업을 하고 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토록 힘든 잡초 뽑기

1000평(약 3305㎡) 규모의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장미 향이 퍼졌다. 이 농가에서는 클라린스·크리스틴 등 총 50여 종의 장미를 재배한다. 노랑·분홍·흰색…. 매일 약 100단, 1000송이의 장미를 수확해 출하한다.

일단 잡초부터 뽑는다고 했다. 장미 줄기 사이로 싹을 틔운 ‘괭이밥’ 등을 솎아내는 일이다. 꽃을 꺾는 줄만 알고 온 터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이씨가 씩 웃었다. “힘든 일 하고 싶다면서요. 수확은 힘들지 않아요. 키워 내는 일이 고되죠.”

이씨는 “잡초는 장미에 치명적인 곰팡이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고, 뿌리 근처에서 공기 순환을 막아 뿌리를 썩게 만든다”며 “이렇게 뽑아도 사흘이면 다시 자란다”고 했다. “잡초 뽑다가 하루가 끝난다니까요.”

허리를 숙이느라 뒷목과 허리가 저렸다. 빽빽하게 얽힌 장미 줄기 사이에 손가락을 넣자니 자꾸 가시에 찔린다. 이씨가 두툼한 용접용 장갑을 건넸다. 찔리는 일은 줄었으나 기어코 장갑을 파고드는 근성 좋은 가시가 적지 않았다. 뻣뻣한 장갑 탓인지 손가락을 움직일 때 자꾸 관절에 힘이 들어갔다. 장미 농장 작업자는 손가락 관절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단다.

조유미 기자(왼쪽)가 농장주 이수정씨와 함께 가지 치기와 잡초 뽑기를 하고 있는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하우스 곳곳에는 장미 뿌리에 물과 ‘양액(물비료)’을 공급하는 가는 호스가 깔려 있었다. 이수정씨는 5개월마다 10여 종의 비료로 직접 양액을 만든다. 그중 하나인 질소 비료의 원료가 최근 중동 사태로 공급 불안을 겪고 있는 ‘요소’다. 장미처럼 꽃을 계속 피워내야 하는 식물은 질소 소모량이 특히 많다. 이씨는 “2개월 뒤면 양액이 다 떨어지는데 비료 값이 뛰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수확이야말로 실력의 척도

장미 수확을 할 차례다. 이씨가 ‘전지(剪枝) 가위’를 건넸다.

“위치가 중요해요. 다음번 꽃대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작업자의 실력은 이때 발휘된다. 장미는 꽃대가 굵을수록 비싼 값에 팔린다. 물과 영양을 안정적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지를 너무 위에서 자르면 가늘고 약한 가지가 올라오고, 너무 아래에서 자르면 새 가지가 자라 꽃을 피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한 번 잘라내면 35~60일이 지나야 같은 가지에서 새 꽃을 수확할 수 있다.

통상 조경용으로도 사용하는 전지 가위.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모자를 쓰고 일을 시작했으나 땀이 비 오듯 흘러 결국 벗었다. 사진은 조유미 기자가 꽃대를 자르려는 모습.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장미 뿌리에 물과 '양액(물비료)'을 공급하는 가는 호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불안이 피어올랐다. “‘장미의 눈(생장점)’까지 잘라내면 다음번 꽃대가 올라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가위를 들고 손만 덜덜 떨었다. 그러자 이씨가 “지면에서부터 2㎝ 위를 자른다고 생각하시라”고 했다. 그래도 계속 떨자 그가 “괜찮아요, 자르세요!”라고 했다. 눈을 질끈 감고 잘랐다.

이씨는 수확을 하면서도 멀쩡해 보이는 장미 줄기를 자꾸 아래로 꺾었다. ‘부모 가지’라고 부르는 일부 줄기를 눕혀 꽃 생산용인 ‘자식 가지’에 영양분이 몰릴 수 있도록 하는 작업(절곡)이다. 그는 “개체 건강에 따라 다르지만 한 뿌리에 꽃대가 6개 정도 자라면 농사 잘 짓는 것”이라고 했다. 10개면? 돈 잘 버는 것이란다.

◇꽃 소비는 줄고 있지만…

하우스 안은 후덥지근했다. 장미 생육을 위한 적정 온도는 22~27도다. 이 때문에 매년 9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는 때에 따라 난방을 한다. 이날 하우스 내부 기온은 26도였다. 이씨가 “우리는 전기 난방을 써 그나마 낫지만 기름을 쓰는 농가는 중동 사태 이후 연료비가 올라 걱정이 많다”고 했다. 난방 설비를 갖춘 전국 화훼 재배 면적 1994ha(헥타르·1㏊는 1만㎡) 중 절반 이상인 약 1037ha(2024년 기준)가 경유·등유 등을 난방원으로 쓴다. 업계 관계자는 “기름을 태우는 ‘등유 온풍기’를 전기 난방과 함께 쓰는 농가도 적지 않다”고 했다.

“힘들다”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땀이 비 오듯 흐르며 수시로 목이 말랐다. 이씨는 별도의 작업자 없이 남편과 둘이 일을 한다. 그에게 “어떻게 아이 둘을 키우며 일을 하시느냐” 묻자, 그가 망설이며 “땀 흘린 만큼 수확할 수 있으니 몸 힘든 건 괜찮은데 환경이 바뀌어서…”라고 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꽃 소비는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1만3432원으로 최고치(2만870원)를 기록했던 2005년 대비 35.6% 감소했다. 반면 자재값·전기료 등은 올랐다. 이 농장에서는 많을 때 전기료만 한 달에 1000만원 나온다. 상황이 이러니 의욕은 꺾인다. 2005년 1만2859곳이었던 전국 화훼 농가는 2024년 7079곳으로 줄었다.

수입산 장미도 골치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통되는 수입산과 국내산의 비율은 3대7이다. 특히 국회 비준을 앞둔 에콰도르와의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 때문에 절화 농가 시름이 깊다. 발효되면 에콰도르산 장미·국화·카네이션 등에 붙던 25% 관세가 순차적으로 폐지된다. 서용일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 회장은 “10년 전 콜롬비아와 FTA를 체결할 땐 ‘지구 반대편에서 꽃을 수입하겠느냐’고들 했지만 지난해만 봐도 장미 수입량이 2015년 대비 50배 이상 뛰었다”고 했다.

장미 뿌리를 뽑아내는 '뿌리갈이' 중인 조유미 기자(왼쪽).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열탈진, 눈앞이 새하얘졌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웠다. 장미 뿌리를 뽑던 참이었다. 같은 자리에 더 튼튼한 품종의 장미를 새로 심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를 ‘뿌리 갈이’라고 한다. 중심부의 굵은 뿌리를 잘라낸 뒤 온 힘을 다해 당겨야 우두둑 소리를 내며 간신히 뽑혔다.

땀을 많이 흘린 탓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이번엔 속이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났다. “나갔다 오겠다”며 입구 방향으로 50m쯤 걸었을까. 시야가 점차 좁아지더니 눈앞이 새하얘졌다. 문턱을 코앞에 두고 주저앉았다. 이씨는 “열탈진 같다”고 했다. 40도 이상의 고온에서 주로 발생하는 열사병과 달리, 열탈진이나 열실신은 그보다 낮은 기온에서 땀을 많이 흘렸을 때 발생한다. 탈수 증상과 함께 뇌로 충분한 양의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다.

마무리 작업으로 내부 바닥에 떨어진 줄기와 잎 쓸기. 약 54개 통로를 쓸어야 한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이씨가 “하우스 내부 습도가 높고 작업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물을 마시고 바람을 충분히 쐬라”고 했다. 사방이 비닐로 막혀 바람이 들지 않는 환경, 뙤약볕과 지면열을 동시에 견뎌야 하는 작업 특성상 겨울을 제외하면 늘 ‘열(熱)과의 전쟁’이다. 지난해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 응급실에 실려 간 사람만 53명, 이 중 2명은 사망했다. 병원에 가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을 합하면 증상을 겪는 이는 훨씬 많을 것이다.

내부 바닥의 가지 등을 빗자루로 쓸어 정리하고 나오는 길. “건강 조심하시라”고 하니 이씨가 “너무 더우면 얇고 쭈글쭈글한 ‘찌글이 꽃’이 많이 난다”며 제 몸보다 꽃을 더 걱정했다. 그가 말했다. “저희에게 꽃은 하루하루 쌓인 시간이거든요. 힘들긴 해도요, 꽃은 결국 누군가를 웃게 하려고 피는 거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버틸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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