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재판에 아이유·이문세?…마지막 공직선거법 재판 속 장면들 [법조 Zoom In/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2022년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 61화입니다.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지난 며칠간 서초동에서는 이 곡이 여러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이문세의 곡 ‘사랑이 지나가면’입니다.
곡 ‘사랑이 지나가면’이 등장한 건 다름아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에서였습니다. 이달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한성진)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결심공판을 열었습니다. 이날 검찰은 이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는데요. 구형 전 최종의견을 밝히며 PPT 화면에 이 곡의 가사 일부를 띄웠습니다. 그러면서 “이 노랫말이 이 대표의 입장과 같아 보인다”고 했죠.
●이재명은 김문기를 몰랐나
검찰의 은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공직선거법 재판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내용을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코너에서 다루는 이유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 역시 대장동 사업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기간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혐의가 적용된 발언은 크게 2가지입니다. 방송에 나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을 “몰랐다”고 한 점, 2021년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개발부지 용도 상향 관련 질문에 “국토부 협박 때문이었다”고 발언한 점입니다. 오늘은 두 발언 중 대장동 사업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몰랐다” 발언 위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2021년, 이 대표는 한 방송에 나와 ‘대장동 사업’ 실무를 맡은 김 전 처장을 아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말한 적이 있죠.
이에 대한 검찰의 시각은 간명합니다. 첫째, 이 대표는 김 전 처장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둘째, 그럼에도 이 대표는 “몰랐다”고 말하면서 대장동 의혹과 거리를 두고 선거에 유리하게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검찰은 이 대표와 김 전 처장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김 전 처장이 이 대표에게 2009년 추석 선물을 보낸 점, 2015년 호주-뉴질랜드 출장에 동행한 점 등을 들어왔습니다.
이 대표 측은 2년가량 진행된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해왔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사진처럼 김 전 처장을 만난 적은 있을지라도 수많은 직원 중 한 명이라 잘 알지 못하며, 당시 즉흥적인 질문과 답이 오가던 방송이라 의혹에 대한 자세한 경황을 설명하지 못하고 “몰랐다”고 표현했다는 취지입니다.
이런 양측의 주장은 결심공판에서까지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정말 이재명은 김문기를 몰랐나?’
‘모른다는 발언은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고의가 있었나?’
이날 이 두 질문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아주 흥미롭게 전개됐습니다. 선고 직전까지 재판부를 조금이라도 더 설득하기 위해 각종 비유법들을 들었는데요. 그 재판 속 장면 장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이유부터 이문세까지
“너 아이유 알아?”
이날 한참 최종 의견을 말하던 검찰의 입에선 이런 문장이 튀어나왔습니다. 검찰이 이 대표 측이 제출한 의견서를 언급하던 중이었습니다.
“이 대표 측이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가수 아이유를 들어, ‘너 아이유 알아?’라는 질문에 ‘아니 몰라’라고 답한 것은 현재 인식상태에 관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입니다.”
이 말을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대표 측은 2021년 대담 방송 때 “몰랐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 발언한 그 순간 이 대표의 판단이었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이 보기엔 대담의 맥락상 “몰랐다”는 발언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고 반박한 겁니다. 그러면서 검찰은 아래와 같은 가상 상황을 가정합니다.
#한 기자가 가수 A에게 질문을 한다.
“같은 소속사 직원인 B 씨와 앨범작업을 하면서 만나거나 전화통화도 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가활동도 함께 했으며 열애설이 보도되고 있는데, B 씨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이때 가수 A는 이렇게 답한다.
“B 씨는 하위 직원으로, 저와 말을 섞거나 어울릴 만한 직급이 아닙니다. 선물도 수백명에게 보낸 것 중 같이 발송된 것인데 제가 어떻게 B 씨를 압니까?”
검찰이 이런 상황을 설정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여기서 가수 A는 이 대표를, 소속사 직원 B 씨는 김 전 처장을, 기자는 방송사 앵커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때 가수 A의 답변은 단순히 B 씨를 모른다는 뜻이 아닌, 그 사람과의 열애·교유 행위를 부인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즉 이 대표의 당시 발언은 ‘김 전 처장과의 관계를 부인’한 것에 가깝다는 취지죠.
이문세의 곡 ‘사랑이 지나가면’도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습니다. 검찰은 “(이 곡의 화자가) 이 대표의 입장과 같다”며 곡에 대한 해석을 내놨습니다.
‘화자에게 깊은 상처가 되는, 그래서 모르는 것으로 하기로 한 특정인과의 과거 경험에 대해 현재 심경을 표현한 곡’
그러면서 “이 대표로서는 김 전 처장과의 교유 행위가 깊은 상처, 즉 불리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김 전 처장과 교유 행위를 했고 이를 다 알고 있었지만 방송에서 ‘모른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李 “궁예 관심법 같은 기소”
검찰 주장에 대해 이 대표 측 변호사는 “궁예의 관심법 같은 기소”라고 비꼬았습니다.
“‘김문기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기소한 것은 ‘내가 네 마음을 다 읽고 있어. 너 거짓말하잖아’라는 식”이라며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엄두도 못 내는 신의 영역을 기소했다”고 말했죠.
이 대표 측의 주장은 정리하면 크게 이렇습니다. 우선 ‘모른다’는 표현은 공직선거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대표가 받고 있는 혐의를 다시 볼까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입니다. 이때 ‘모른다’는 표현은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 것일 뿐 ‘사실’의 영역이라고 볼 수 없어서, 허위인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조차 없다는 주장입니다.
또 기존 대법원 판례를 들며 토론회라는 자리는 ‘공표’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합니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은 “생방송 대담프로그램은 당황스러운 질문도 오가는 자리이니 만큼 답변을 엄격히 적용하게 되면 출연자는 회피성 진술만 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토론 활성화 같은 방송의 목적을 달성할 수나 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이 대표는 검찰에 대해 수위 높은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는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김 전 처장과 함께 찍은 사진은 짜깁기된 것”이라는 주장 등을 통해 검찰이 증거를 위조했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날 최후진술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이 대표는 “검사는 자기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의 정적이라 해서 그 권력을 남용해 증거를 숨기고 조작해서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감옥 보내고 결국 정치적으로 죽인다”면서 “저는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닙니까? 제가 이 나라의 적입니까?”라고 호소했습니다.
●11월 선고 따라 정치적 입지 달라져
양측이 마지막까지 날선 공방을 벌인 이유는 선고 결과에 따라 지게 될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에게 공직선거법 재판은 아주 민감합니다.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을 받고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고 5년간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7년 차기 대선을 노리는 이 대표로서는 더욱 중요하겠죠.
반대로 무죄가 나오면 검찰을 향한 비판 수위가 거세질 전망입니다. 이 재판은 지난 대선 이후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해 줄줄이 기소한 사건(위증교사·대장동·쌍방울 등) 가운데 가장 먼저 법원 판단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법원 판단에서 무죄가 나오게 되면, ‘검찰의 공소권 남용’ ‘정치보복성 수사’라는 이 대표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는 거지요.
우선 이날 검찰은 이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대법원 양형 기준상 최고형입니다. 검찰은 “피고인의 지위 같은 사법적 영역이 아닌 것은 생각하지 않고 죄질, 범행정황, 동종전과 등에 따라 구형한다”면서 여러 이유를 들었습니다. 상대방과의 표차가 0.7%포인트일 정도로 유권자 영향이 컸던 당시 대선 상황, 발언의 전파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적극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한 점 등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선고입니다. 11월 15일 오후 2시 30분에 열리는 선고기일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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