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혁준 율촌 변호사 “기업 사건은 ‘패키지형 복합 분쟁’… 신뢰가 중요”
기업 소송이 민사·형사·여론전이 얽힌 ‘복합 분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과거엔 계약 해석이나 대금 지급을 둘러싼 단일 소송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사회 가처분에서 시작된 갈등이 형사 고발과 금융당국 조사, 주주 행동으로 확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혁준(사법연수원 36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를 “패키지형 복합 분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제 기업 사건은 법리와 증거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며 “시장 반응과 규제 흐름, 평판 리스크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19년간 법관으로 재직한 뒤 지난 3월 율촌에 합류했다. 법원에서 기업·국제거래·건설 사건을 담당했고, 서울고등법원 형사재판부에서는 자본시장·횡령·배임 사건 등을 맡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문관으로 파견 근무한 경험도 있다.
그는 법관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한 대형 건설사를 상대로 제기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꼽았다. 해외 사업 손실을 뒤늦게 회계에 반영한 것이 분식회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주주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권 변호사는 “1심에서는 회사 측이 승소했지만 항소심 진행 중 양측이 합의했다”며 “기업 사건에서는 소송 결과만큼이나 기업 이미지와 시장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율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권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최근 기업 분쟁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한 사건이 여러 갈래로 동시에 확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액주주가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하면서 형사 고발을 병행하고, 금융당국 조사와 언론 보도까지 이어지는 식이다. 과거에는 소송 하나로 끝났던 문제가 지금은 민사·형사·금융·평판 이슈가 함께 얽혀 움직인다. 그만큼 입체적인 대응 전략이 중요해졌다.”
―복합 분쟁에서 가장 먼저 세워야 할 전략은.
“‘코어 스토리(Core story)’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재판에서는 결국 일관성과 상식이 핵심이다. 민사와 형사에서 설명이 달라지면 법원 입장에서는 신뢰하기 어렵다. 거짓이 아니더라도 논리가 흔들리거나 상식에 맞지 않으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재판부 역시 결국 상식의 관점에서 사건을 본다.”
―경영 판단과 배임은 어디서 갈리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배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당시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했다면 결과만으로 배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사후적으로 설명만으로 방어하기는 쉽지 않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

―이사회가 자본거래 과정에서 남겨야 할 기록은 무엇인가.
“최근 상법 개정 논의처럼 이사의 책임 범위가 주주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과 임원 입장에서는 기록 관리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예전처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는 결과만 남겨서는 부족하다. 어떤 근거와 자료를 토대로 논의했는지, 내부에서 어떤 반대 의견이 있었는지 등을 투명하게 남겨야 한다. 특히 합병·분할·자기주식 처분처럼 주식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객관적 분석 자료를 갖춰둘 필요가 있다.”
―내부통제는 무엇으로 입증해야 하나.
“규정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작동 여부다. 내부 규정에 따라 실제 징계나 조치가 이뤄졌는지, 통제가 현장에서 작동했다는 기록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다만 사후적으로 억지로 만든 자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법원은 시기와 경위,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국회 파견 경험은 기업 사건을 보는 시각에 어떤 영향을 줬나.
“법원 밖의 시선에서 법원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법원 안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이 밖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국회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곳이다. 의원과 정부, 기업, 지역사회의 입장을 함께 접하면서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됐다.”
―기업은 입법 리스크에 언제부터 대응해야 하나.
“빠를수록 좋다. 법안이 법사위나 본회의 단계까지 올라가면 대응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 정부가 제도 검토를 시작하거나 상임위 소위 단계에서 논의가 이뤄질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 다만 ‘부적절한 로비’라는 오해를 피하려면 데이터와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투명하게 설명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최근에는 국회나 정부 내부에서도 불투명한 접촉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법관 출신 변호사로서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인가.
“판결 결과에 대한 예측도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결국 과거 사례와 데이터를 토대로 한 확률의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재판부가 납득할 수 있는 주장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같은 사실과 증거라도 어떤 논리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설득력은 달라질 수 있다.”
―율촌을 선택한 이유는.
“협업 문화가 강한 로펌이라고 판단했다. 송무그룹 내부뿐 아니라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도 긴밀하게 협업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의 기업 사건은 한 사람이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민사와 형사, 행정, 자본시장 이슈가 동시에 움직이는 만큼 여러 전문가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 19년간의 재판 경험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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