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의료인·활동가 인터뷰…“5살 다리 잃고, 아빠 죽음 봐”

최우리 기자 2024. 10. 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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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전쟁 1년
가자지구 활동 의료인·활동가 인터뷰
지난해 10월9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한 소년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잿더미로 변해버린 자동차와 건물 잔해 사이를 걷고 있는 모습. 오는 7일로 가자전쟁은 1년을 맞는다. 가자/EPA 연합뉴스

“부상당한 아동, 살아남은 가족 없음.”(WCNSF·Wounded Child No Surviving Family)

나카지마 유코 국경없는의사회 일본 이사회 대표(응급의학과·마취과 전문의)는 가자전쟁 초기였던 지난해 11월 약 3주 동안 가자 남부 도시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일하면서 이 용어가 써진 서류를 자주 목격했다. 전에는 없던 약어를 의료진이 새로 만들어 쓸 만큼 생존 가족이 없는, 그리고 다친 아동이 많았다. 당시 병원 수용 인원(300~400개 병상)의 3배가 넘는 환자를 돌봤다. 게다가 병원의 전기는 자주 끊겼고, 인공호흡기와 심전도 검사 기계도 단 한대뿐이었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수술을 진행했다. “하체 절단 수술이 필요했던 10살 소녀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수술 동의를 해줄 가족이 없는 아이들을 자주 봤다. 그때마다 ‘우리가 이 생명을 구한다고 해도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현재 가자지구 병원 36곳 중 20곳이 운영이 중단됐다.

한겨레는 9월 한달 동안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 발발 뒤 가자지구에서 활동했던 세이브더칠드런과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료인과 활동가 8명을 대상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지난 1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목격한 참상을 증언했다. 남수단, 탄자니아, 예멘, 이라크, 우크라이나 등의 현장 경험이 있었다는 ‘구호 베테랑’들에게도 지난 1년 동안의 가자는 “역대 최악의”(세이브더칠드런, 피터 월시) 현장이었고 “뜨거운 돌 위에 떨어진 물 한방울과 같은”(국경없는의사회, 카트린 글라츠 브루바크)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굉장한 투쟁이다. 육체적 생존뿐 아니라 정신적·정서적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한 매일이 전투처럼 느껴진다.”(세이브더칠드런, 야스민 수스)

‘가자의 목격자들’은 사람이 바로 죽어나가는 폭격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쟁으로 모든 사회 인프라와 공공 시스템이 무너진 가자지구에서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팔레스타인인인 세이브더칠드런의 미디어 책임자 야스민 수스는 “폭격 이후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어) 삼촌과 조카가 인공 투석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세상을 떠났다. 친척인 60대 할머니는 극심한 공포와 불안, 스트레스와 영양 부족으로 갑자기 심장이 멈췄다. 이들의 죽음은 폭발 때문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 동안 가자에서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참혹한 환경이 계속 이어졌고, 이들 역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었다.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이 거리의 썩은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세이브더칠드런, 베키 플랫), “학교는 파괴되었고, 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교육을 제공할 여력은커녕 자녀를 보호할 방법도 모른다”(야스민 수스), “노인과 장애가 있는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집을 떠날 수조차 없다. 부모가 없는 5~6살 소녀가 혼자 지내면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보다 큰 물병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흔하게 본다”(세이브더칠드런, 레이철 커밍스), “집에 폭탄이 떨어진 5살 소년이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다. 자신도 한쪽 다리를 잃고 한쪽 다리는 부분적으로 마비됐다. 누구와도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매우 몸이 말랐던 그 아이가 기억난다”(카트린 글라츠 브루바크)고 증언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사샤 마이어스는 아내와 세명의 자녀, 부모님을 모두 잃고 아들 한명만 남았다는 한 남성의 절규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마이어스는 “가자에 머무는 동안 가슴 아프고 끔찍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 남성의 깊은 상실감,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괴로웠다. 가자의 이야기는 영원히 내게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바크는 “12살가량 된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간호사가 놓으려는 정맥주사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이 아버지가 옆에 있었지만 그 역시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아이 아버지가 ‘우리가 온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라고 말했을 때에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구호단체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아, 이들 역시 가자지구에서 버티기 어려웠다. 구호 업무 현장 팀장 역할을 했던 커밍스는 지난 5월 인도주의적 지원 물품 반입 경로였던 이집트와 접경한 가자지구 남단 라파흐 검문소가 폐쇄되며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지원 물품) 공급 경로가 크게 제한돼 주민들에게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또 직원들도 안전과 보안 문제로 이동이 어렵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에서 필요한 일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근무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심한 부상을 입은 아이들에게 적절한 진통제를 주지 못해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며 치료를 할 때였다”고 플랫은 말했다.

구호단체들은 “트라우마를 우려해” 구호지원 업무 담당자가 보통 한두달가량 근무한 뒤 교대하도록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그 기간조차도 매우 위험한 순간들을 자주 접해야 했다고 했다. 나카지마는 “가자지구에 있는 동안 계속 드론(무인기)과 공습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는 겨우 3주였지만 가자 주민들은 탈출할 곳도 없이 항상 이 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자에 있는 동안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했다. 월시는 지난 2월11일 이스라엘이 라파흐에서 이스라엘 인질 구출 작전을 벌인 날, 구호대원들이 있는 건물과 매우 가까운 모스크 위로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3층 건물에 있는 15개 방의 창문이 모두 떨어져 우리 모두 ‘유리 샤워’를 했다. 우리들은 (치료받고 있던) 아이들, 가족들과 함께 폭격이 멈추기만을 기다리며 3시간 동안 복도 바닥에 얼굴을 묻고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가자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8명 전원이 “휴전”을 꼽았다. 교육의 중단은 가자 지역사회에 매우 장기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을 남길 것이 분명하고, 모든 가자 주민들의 삶을 복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휴전이 되어야 가능하다.

“가자지구가 재건되려면 적어도 한 세대가 걸릴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물과 식량, 좋은 위생 조건과 쉼터, 물리적·심리적 건강 관리이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영구적 휴전이다.”(피터 월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모든 것이 필요하다. 인구수도 줄어 이를 회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국경없는의사회 팔레스타인 의사, 무함마드 아부 무가이시브)

“가자지구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공포만이 유일하게 지속되는 세상에서는 어떤 아이도 커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야스민 수스)

“가자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본국으로 돌아가면 가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하고 자신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같은 ‘사람’일 뿐이다.”(나카지마 유코)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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