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판매량이 겨우 57대뿐인데.." 아직도 안 사라진 게 신기한 국산 대형 세단

한때 회장님 차로 불리며 성공한 중장년층의 자존심이었던 기아의 최상위 플래그십 세단 K9이 판매 절벽을 맞이했다.

2026년 7월 한 달간 국내 시장에서 출고된 차량은 고작 57대에 불과해, 하루에 두 대도 채 팔리지 않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브랜드의 기함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해진 가운데, 우수한 상품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외면받으며 단종설의 중심에 선 결정적 이유들을 면밀히 짚어본다.

기아 K9은 지난 2012년 탄생한 이후 2018년 2세대 모델이 출시되면서 연간 1만 대 판매를 노리는 등 합리적인 대형 럭셔리 세단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낙폭은 가파르기만 했다.

2022년 6,585대였던 연간 판매량은 2023년 3,898대로 반토막이 났고, 2024년과 2025년에는 1,500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급기야 2024년 11월 월간 99대로 첫 두 자릿수 굴욕을 맛본 데 이어, 2026년 7월에는 57대라는 역대 최악의 기록을 쓰며 공장 가동 비용조차 건지기 버거운 처지로 전락했다.

판매 부진이 차량의 결함이나 상품성 부족 때문은 결코 아니다.

오너들과 전문가들은 K9이 가격을 뛰어넘는 숨겨진 명차라고 입을 모은다.

전장 5,140mm, 휠베이스 3,105mm의 웅장한 차체는 제네시스 G80을 압도하며 G90에 필적하는 광활한 실내를 제공한다.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를 연상시키는 2열 VIP 시트와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빚어내는 승차감은 구름 위를 떠가는 듯 부드럽다.

31억 3.8L 자연흡기 엔진과 3.7L 터보 엔진이 내뿜는 묵직한 주행 성능 역시 훌륭하지만, 문제는 이 차를 굳이 선택해야 할 명분이 시장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K9의 몰락을 가속화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끝내 탑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기아가 주력 차종마다 1.6 터보 하이브리드를 적극 투입해 대성공을 거둔 것과 달리, K9은 여전히 10여 년 전 설계를 기반으로 한 대배기량 내연기관만 고집했다.

3.8 가솔린 모델의 복합 연비는 리터당 8.8~9km에 불과하고 도심 실연비는 5~6km대까지 떨어진다.

고유가 기조와 법인차의 ESG·친환경 평가 잣대가 엄격해진 시대에, 기름을 물 마시듯 먹는 순수 대배기량 세단은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K9의 비극은 현대차그룹 내부의 애매한 가격 포지셔닝에서도 비롯됐다.

2026년형 K9의 가격은 5,949만 원에서 최고 8,582만 원으로, 이는 대한민국 프리미엄 세단의 절대강자 제네시스 G80의 가격대와 정확히 겹친다.

비슷한 예산을 든 소비자는 기아 엠블럼 대신 독립 럭셔리 브랜드 G80의 세련된 디자인을 택했다.

반면 실용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차체 5미터가 넘는 신형 그랜저 하이브리드 풀옵션으로 대거 이탈했다.

프리미엄의 상징성과 대중성을 모두 양측에 빼앗기며 틈바구니에 갇힌 셈이다.

광명 오토랜드의 K9 생산 라인 정리가 본격화되면서, 2012년 탄생했던 기아의 대형 플래그십은 1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후속 전동화 세단 계획도 요원한 상태다.

하지만 월 판매량 57대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별개로, 지금은 마니아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조건으로 K9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단종을 앞두고 대대적인 재고 소진 프로모션과 파격적인 할인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G80 깡통 모델 가격으로 3.8 V6의 부드러움과 쇼퍼드리븐의 최고급 의전 사양을 누릴 수 있는, 비운의 플래그십이 남긴 마지막 실속 있는 선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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